존, 네이든
* 2018년 8월에 완성해 블로그에 올린 글을 수정하였습니다.
-캐릭터:
존 in <난 연쇄살인범이 아니다(I Am Not A Serial Killer)>(2015, 감독: 빌리 오브라이언)
네이든 in <크리미널 마인드(Criminal Minds)> 시즌2, 12화 (CBS)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싸이코패스psycopath’ 혹은 ‘소시오패스sociopath’. ‘보통’ 사람들과 다른, 특정 성격을 보이는 이들을 지칭하곤 했던 표현이다. 현실에선 흔하지 않지만, 픽션에선 흔하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인 ‘범죄’에 대한, 쉽고 자극적인 설명 중 하나다. 연쇄살인범serial killer ‘싸이코패스’는 오랜 클리셰지만, 그리는 방식과 시선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워 질 수 있고, 현실과 맞닿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허나 받아들이는 사회의 감수성 수준에 따라, 메시지 대신 캐릭터의 ‘비정상성’만 화자 되는 경우도 있다.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2011, 감독: 린 램지)이 개봉했을 당시, 한국에서는 대다수 관객들이 정말 ‘Kevin’ 이야기만 ‘talk about’ 했었으나, 이후 페미니즘 영화로 주목 받으면서 관련 주제의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하여, 새로운 캐릭터들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FBI 프로파일러들의 삶을 그린 <크리미널 마인드> 또한 열 개가 넘는 시즌 동안, 다양한 논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방식을 사용해 살인을 하는 다양한 ‘싸이코패스’들을 등장시켜왔다.
하지만 ‘싸이코패스’와 연쇄살인범은 다르다. 사실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는, 공식적으로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말이다. 개인을 하나의 요소로 정의해버리는 편협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반사회적 성격장애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ASPD’를 지닌 사람, 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특징과 행동을 연결하는 것이 행동을 분석하는 프로파일러가 하는 일 중 하나이지만, 특징이 반드시 행동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ASPD’는 한 사람을 설명하는 여러 특징 중 하나인 것이다.
픽션으로 가져와도 마찬가지다. 평면적인 범죄자가 아닌, 서사를 지닌 입체적이고 ‘평범한’ 인물로 그리지 말란 법은 없다. <난 연쇄살인범이 아니다>(2015)의 존이 바로 그 예다.
존은 ASPD 진단을 받은 십대다. <크리미널 마인드>에 연쇄살인범의 청소년기 삼대 징후(동물 학대, 야뇨증, 방화)로 용의자 범위를 좁히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존은 이 징후들을 모두 갖고 있다. 살인에 대해 관심이 많고, 학교 레포트 주제도 매번 연쇄살인범이다. 마을에 연쇄살인이 벌어지자 현장을 관찰한다. ‘보통’의 소년이라면 수사가 목적이겠지만,, 존은 살인 자체에 관심을 가진다. 살인, 그리고 살인범과 가까워지면서, 욕망이 형태를 이루기 시작한다. 자기 안의 무언가가 깨어나려고 하자, 존은 당황스러워한다.
하지만 존은 노력한다. 지속적으로 심리상담을 받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룰을 정해 실천한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The End of the F***ing World)>(Netfix) 캐릭터 제임스의 초기 태도가 “난 싸이코패스야. 죽여야지!” 였다면, 존의 것은 “내가 소시오패스라고? 누구를 죽이면 안돼.” 였달까. 상담사는 말한다. “너에겐 연쇄살인범의 징후들이 있지만, 넌 좋은 사람이야. 그게 중요한 거야.” 그리고 마지막 순간, 존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존은, 연쇄살인범이 아니다.
<크리미널 마인드> 시즌2의 12화에 등장하는 네이든을 보며 존이 떠올랐다. 존과 비슷한 나이인 그는, 극단적인 섹슈얼 새디스트sexual sadist다. 여자와 자는 상상이 아니라, 여자를 죽이는 상상을 하며 흥분한다. 자신을 착한 아이라고 여기는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 꼭꼭 숨긴다. 하지만 욕망이 겉잡을 수 없어지자, 더 늦기 전 직면하려고 노력한다. FBI 프로파일러 닥터 리드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네이든이 잡지에 실린 여자들의 사진에 폭력적인 낙서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결국 그를 병원에 보내기로 한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날, 작별 인사를 하러 온 네이든은 내내 흔들리는 눈으로 리드를 본다. 리드는 네이든에게 “넌 살인범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상담사가 존에게 말했던 것처럼.
네이든이 결국 해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다. 성당에 가서 긴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자살이다. ‘남들을 살리려면 내가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행히 리드가 알아채고 달려가지만, 네이든은 죽어가면서도, 날 내버려둬요, 라고 말한다. 리드는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네이든이 무사히 병원에 실려가고, “네이든이 나중에 살인을 하면 어쩌죠?” 라고 묻는 리드에게 기디언은 말한다, “그럼 그때 우리가 잡으면 돼.”.
살인범은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잠재적’ 살인자란 없다. 존과 네이든은, 단지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것 뿐이다. 사람을 죽이는 상상을 하는 것 자체는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다. 상상을 하는 것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을 직접적으로 해치지만 않는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상한’-이라니. 얼마나 주관적인 말인가.
마무리는 존의 이야기로 해보려고 한다. 존은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한다. 동급생들은 그를 ‘freak괴물’ 이라고 부른다. 할로윈 파티, 그 주동자 중 하나인 롭은, 이 파티는 ‘normal people 정상인들'을 위한 것이라며 존을 쫓아내려 한다, 존은 말한다, “난, 누군가를 잘라 열어보고 싶어질 때 대신 칭찬을 해줘. 넌 참 좋은 애야 롭.” 롭은 놀라 도망간다. 존 입장에서는 그냥 설명을 해준 것이고, 내겐 정당방위로 보였다. 존은 남들과 다를 뿐, 누군가를 괴롭히지는 않는다. 롭은 별 이유 없이 ‘재미로’ 존을 괴롭혀놓고, 말 몇 마디에 도망가고, 협박 당해서 악몽을 꿨다고 교사에게 일러바친다.
사회 보편적인 기준에 들어맞지는 않지만, 남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존과 네이든, 정상의 탈을 쓰고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롭과 같은 사람들. 진짜 ‘이상한’ 건 누구일까. 까닭 없는 폭력이 ‘normal people’의 당연한 행동이라면, ‘freak’이 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허구의 인물이지만, 두 사람이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스스로를 이겨내려고 노력하면서, 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말이다. 사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자신과 싸우며 살지 않나. 존이, 네이든이,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 그리고 이 특별한 소년들을 연기한 특별한 배우 둘. 네이든을 연기한 안톤 옐친과, 존을 연기한 맥스 레코즈. 이들은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인물 자체에 집중했다. ‘소시오패스 틴에이저’, ‘섹슈얼 사디스트 틴에이저’가 아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 ‘존’ 과 ‘네이든’을 완성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