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al Neuroses Cottage"
-캐릭터: 더크 젠틀리(Dirk Gently)
in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 (Dirk Gently’s Holistic Detective Agency)> 시즌1, 2
(BBC America / Netflix)
* 위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This is completely bizarre! I’ve not seen anything like it before. It feels unique.”
“이거 완전 기괴해! 이런 거는 전에 본 적이 없어. 독특한 거 같애.”
-사무엘 바넷
[collider.com]
더크 젠틀리를 연기한 사무엘 바넷이, 시청자로서 이 쇼를 보고 한 반응이라고 한다. 요소들을 촘촘히 섞고 배치하는 전개 능력도 대단했으나, 이 작품의 매력포인트는, 그 속에서 움직이는 캐릭터에 있다. 다들 완벽과는 거리가 먼데, 끝없이 빠져들게 된다. 여성 캐릭터들은 대상화 되거나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기는 커녕, 마구 행동하며 난리나는 매력을 뿜어낸다. 인물의 역할과 그 사이 관계도 입체적이다. 토드와 파라를 비롯해 바트와 켄, 아만다와 로우디3, 시즌1의 에스테베즈와 짐머필드, 시즌2의 티나와 홉스, 모나, 멍청한 총책임자마저도.
“이 쇼의 재미 중 하나는 캐릭터들 하나하나로 각자의 쇼가 가능하다는 거에요. 쇼가 진행되고 나서야, 그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돼 있는지 깨닫게 되죠. 그들 모두가 서로서로를 향해 엄청나게 움직이고 있어요, 어떤 지점에서 만나기 위해 말이죠.”
-사무엘 바넷
[collider.com]
그리고 무엇보다 더크 젠틀리. 물론 그는 주인공이다. 왜 아니겠나. 제목부터가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다. 하지만 “특수한 상황에 빠진 평범한 남자, 토드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며(사무엘 바넷의 표현)” 더크를 겪다 보면, 제목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다.
“He is barely a detective. 그는 거의 탐정이 아냐.”
“You are surprisingly incapable. How did you survive? 너 정말 놀랍도록 무능력하구나. 어떻게 살아남았어?”
-토드 브로츠먼
“더크는 사물들 사이의 연결을 감지할 수 있고, 대부분 가깝게 맞추는데, 문제는 그가 우주로부터 받은 메시지로 뭘 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는 그냥 행동하고 스스로를 끔찍한 문제로 몰아넣죠, 항상. 만약 토드를 만나지 못했다면, 더크는 아마 첫 화에서 죽었을 거에요.”
-사무엘 바넷
[collider.com]
더크 젠틀리는 자칭 ‘전체론적 탐정 holistic detective’이다. 탐정이지만, 상식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조사하지는 않는다. 증거를 모으지도 않고, 계획을 세우지도 않고, 그냥 ‘느낌’을 따라간다. 열심히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스스로도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다시 말하면, 더크는 결론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도록 ‘설계된’ 탐정이다. 작품에서 말하는 ‘우주’가 뭔지, 일종의 창조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인지, 원작을 읽지 않아 알 수는 없으나, 시즌2까지 본 바로는 그렇다.
더크가 가장 자주 쓰는 말 중 하나는, ‘hunch감’, 더불어 자주 하는 말은, “That’s not how it works. 그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니야.”다. 매우 비효율적인 더크의 ‘헌치’는, 그를 온갖 위험하고 이상한 일들로 몰아넣고, 엉뚱한 길을 뱅뱅 돌고 돌아 마침내 답으로 이끈다. 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주위를 맴돌다가, 어느 순간 이어진다. 그러면 더크는 “I solved the case! 나 사건 해결했어!”라고 외친다. 그 전까지는 시청자의 머릿속도 뒤죽박죽이다.
더크에 대한 글이지만, 파라의 말을 빌리면, ‘더크가 뭔지 나도 모른다.’ 스블라드, 혹은 프로젝트 이카루스- 더크를 부르는 다른 이름들에 대한 설명이 완전히 나오지 않은 채 시즌3 제작이 취소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더크 젠틀리’다. 정체는 몰라도 그가 ‘어떤’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더크가 결국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 ‘느낌’, ‘감정’, 논리적 설득력이 하나도 없는 애매모호한 더크의 상태와 행동들 자체가 이 쇼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아니 세상에. 더크는 매우 쓸데없고 하찮고 정신없다.
더크는 창문에 반쯤 끼어 등장한다. 토드의 집에 몰래 들어오려다 걸린 채, 놀랍도록 아무렇지 않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다. “Hiiii.” 놀라서 침입자를 때리는 토드에 맞서겠다고 되도 않는 무술 동작을 하는데, 위협은 전혀 되지 않는다. 총싸움에 칼을 가져왔다며 순수하게 뿌듯해하는 게 더크다. 일단 일을 저지르는데, 다음에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나름 하는 추리는 다 틀리고, 무턱대고 위험에 뛰어들었다가 패닉에 빠져 누군가 구해줘야만 한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말은 잘 하지만 논리가 괴상하고, 아무튼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엄청나게 긍정적인 것이 장점인가 했더니, 금방 자기혐오에 빠져버린다.
아니 그렇다면 더크 젠틀리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무능력한 민폐 덩어리 비호감이 아닌가? 아니다. 패닉에 빠져도 결국 극복해내고,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눈에 빛이 반짝이고, 뭐 동작이 빠르거나 힘이 센 건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그 순간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아니, 그 전에, 그 ‘무능력’과 ‘무지’ 자체가 바로 더크의 매력이다.
위에서 묘사한, 부정적인 표현들로 요약된 더크의 모습들은, 실제로 화면에서 보면 정말정말 사랑스럽다. 상대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쉴새없이 말을 늘어놓으며 비집고 들어오는 붙임성이라니. 누군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면 무척이나 감동을 받는다. 가끔 재수없고 치사하지만,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 토드를 사건에 끌어들이기 위해 복권을 뺏어 고든 리머의 집에 굉장히 얄미운 몸짓으로 던져놓은 후, 위기에 처해 숨은 상태에서 다급하게, 진심으로 사과를 속삭이는 장면이 그 예다.
더크의 표정은 이모티콘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다채롭고 풍부하다. 온 몸을 흔들며 화들짝 놀라거나, 얄미운 영업용 미소를 짓거나, 세상 멍하게 축 늘어져 있거나, 간절하게 울먹이거나, ‘난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꾹 다물고 상대의 다음 말을 기다리거나, 사건을 연결하느라 열심히 눈알을 굴리거나, 깨달음을 얻었을 때 안면 근육을 확장시키는 등 여기 나열하지 못한 엄청나게 많은 ‘더크스러운’ 표정들이 있다.
더크가 말하는 내용이나 사용하는 단어의 조합을 들으면, 그 사고회로가 그려지면서도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똑똑하다는 뜻은 아니다)’ 궁금해진다. ‘더크 젠틀리 어록’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다. 패트릭이 남긴 편지를 받은 파라가 집을 떠나려 하자 더크는 말린다. 파라가 의아해하며 당신 뭐 아는 게 있냐, 고 묻자 더크는 답한다. “I don’t know anything. Ever. It’s really quite relaxing. 난 아무것도 몰라. 항상. 그래서 꽤 마음이 놓이지.”
그리고 그 표정과 말이 조화를 이루면 오 이런 더크 젠틀리. 독특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무언가가 된다. 고든 리머의 집에 숨어 들어갔다 들킨 더크를 보자. 리머가 무서운 표정으로 “You! 너!” 라고 소리치자, 더크는 되받아친다. “Me! It is. Wait, do I know you? 나요! 나에요! 잠깐, 내가 당신을 알던가요?” 잔뜩 긴장했지만 천연덕스러운 얼굴이다. 리머가 총을 꽉 틀어쥐자, 겁먹고 비명을 지르며 주머니에서 종잇조각을 잔뜩 꺼내 뿌린다. 나중에 그것들이 본인의 명함이었음이 밝혀지고, 토드가 네 ‘명함card’을 줬냐며 어이없어하자, 더크는 강조한다. “No, my cardS, all of them. Self-defense. 아니, 내 명함‘들’, 전부 다. 셀프 디펜스로.”
그렇게 감정과 상태가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데도, 결국 생각해보면, 아직도 나는 더크가 뭔지 모른다. 시즌1 초반에 ‘아주 멀리멀리서 왔다’고 토드에게 말한 후, 잠시 멈추었다가, “잉글랜드.” 라고 덧붙이는, 김새는 유머 비스무리한 대사가 하나 있었고, 토드의 대사, “You seem like a nice guy… not nice, you seem like a GUY. 넌 좋은 사람처럼 보여… 좋진 않고, 어쨌든 넌 사람처럼 보여.” 가 있었다. 둘 다 단순히 웃음 포인트 일 수도 있겠다. BUT, 더크의 애매모호한 표정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어쩌면 그가 정말 ‘멀리멀리’ 에서 온, 사람이 아닌 존재,라는 떡밥일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다시 BUT, 더크는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는데, 그게 너무나 특출나게 복잡하고 풍부해서 알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고로 떡밥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알 수 없다. 이게 다 더크 젠틀리 때문이다.
시즌1 초반, 더크의 과거가 잠깐 언급 됐다. 토드가 합류하기로 해 신난 더크는 혼자 귀엽게 좋아하며 계단을 내려오다 블랙윙을 마주친다. 더크를 ‘스블라드’ 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회유하는 장군에게, 더크는 돌아가지 않겠다며 간절한 표정으로 눈물까지 글썽인다. 누군가 자신을 초능력자로 여기면 매우 불편해하며 강하게 부정하는 까닭이 짐작되는 장면이다. 토드에게 ‘난 항상 기괴한 일들과 재앙에 둘러싸여 있고, 항상 혼자’라고 쓸쓸하고 담담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항상 순간순간에 충실하며 아무 생각 없어 보였던 그가 깊고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은 시선을 매우 사로잡는다. 곧 평소 상태로 돌아와 총총거리며 돌아다니기에 금방 의식에서 사라지지만, 더크가 그냥 쉽게 열리는 정해진 인생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에너지를 내고 있다는 것을 슬쩍 드러낸다. 이러한 장면들은 더크 젠틀리의 캐릭터적 매력을 더하며, 앞으로 밝혀질 과거에 대한 기대를 시청자의 무의식에 심어 놓는다.
“내겐 더크의 연약함이 진짜 보였어요, 그리고 한 번 보게 되면, 점점 더 보이죠. 더크의 과거가 좀 더 보이기 시작하고요, 왜 더크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왜 그가 지금 하는 일을 하는지도. 나는 그의 연약함, 섬세함, 불안정함을 많이 봐요.”
-사무엘 바넷
[collider.com]
더크의 정체를 알 수 없어 자꾸 생각하다 보니 이런 추측도 생긴다. 설마 ‘더크 젠틀리 Dirk Gently’라는 이름의 의미는 ‘Dirk the Gentle. 젠틀한 더크’인 걸까? 더크는 너무 정과 사랑이 넘치는 생명체라서 기절한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보이프렌드’ 라고 부르는 숲 요괴마저 부드럽게 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로맨틱 라인이 모두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성 정체성과 지향성도 짐작하기 힘들다. 그래서 팬들이 에이섹슈얼이라고 하기도 하고, 토드랑 엮기도 한다.
(이 묘한 ‘퀴어함’에 ‘퀴어베이팅queerbaiting’의 의도는 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제작진은 시즌2에 독자적 매력이 충분한 오픈리 바이섹슈얼 캐릭터와, 애정 표현을 숨기지 않는 게이 커플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에 대해 어떤 군더더기 갈등이나 설명도 달지 않는다.)
그리고 더크의 사랑스러움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무엘 바넷의 전형적이고도 독특한 연기다. 그의 얼굴과 몸의 근육 하나하나가 더크를 살려내 구체화한다. 홉스가 ‘전체론적 탐정’이라는 말만 듣고 의미를 알아듣자, 더크는 말한다, “I…. love you?”. 그 묘하고 적절한 말끝과 눈빛과 입술모양은, 사무엘 바넷만이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모든 표정과 제스처와 말투 전부 마찬가지다. 촘촘한 이론적 분석만으로는 안 될 연기다. 그저 운이 좋아 배우와 캐릭터가 잘 어울린 것도 절대 아니다. 사무엘 바넷은 더크 젠틀리라는 캐릭터를, ‘이성적으로 정확히’ 라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풍부하게’ 이해하고 표현한다. 작품 속에서도, 밖에서도, 시청자가 더크를 ‘이해’하는 과정을 돕는다.
“난 더크가 굉장하고, 시야가 넓고, 순수한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다른 모든 캐릭터의 입장에서 보면, 더크는 꽤 미쳤죠, 근데 그는 단지 감정, 직관, 감에 대한 반응이 잔뜩 있는 것 뿐이에요. 어쩔 수 없이, ‘Sherlock’ 같은 거하고 비교를 하자면, 난 이렇게 말할 거에요, 셜록에게 마인드 팔레스 mind palace 가 있다면, 더크에겐 감정적 노이로제의 오두막 emotional neuroses cottage 이 있어요.”
-사무엘 바넷
[collider.com]
더크는 그 강박적으로 민감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감을 잡고, 전체론적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이성적으로는 무능력한 더크에게는, 일을 처리하고 해결하는 데에 필요없다, 방해된다, 고 여겨지는 극도로 예민한 감정, 감성이, 감이고 단서고 증거다. 현실적으로 보면 허황된 이야기일지 몰라도, 픽션이니까 괜찮고, 매력적이고, 굉장하다!
“And I think maybe life is like that, too. Just an endless series of rooms with puzzles in and eventually one of them kills you. ~ What if one more shovel in the dirt is all it would take?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퍼즐이 있는 끝없는 방들 말이야. 그리고 그 중 하나가 갑자기 널 죽일 거야. (~) 만약 한 삽만 더 뜨면 된다면 어쩔래?”
-더크 젠틀리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 사무소>는,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하기엔 한참 부족하다. 마치 주인공 더크 젠틀리처럼, 어떤 유형으로도 분류할 수 없으며, 엄청나게 풍부한 곁가지들 자체가 중요하고, 매력의 핵심을 이루는 쇼다. 이런 보물단지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지나치게 구체적인 묘사와 독특한 논리를 지닌) 더크 말마따나,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나는 간헐적으로 열심히 시즌3를 향해 삽질을 하도록 하겠다.
+ 사무엘 바넷 인터뷰
사실 글을 그냥 마무리할까 하다가 무심코 인터뷰를 해석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이 글을 왜 썼나 싶을 정도로 더크 젠틀리에 대한 모든 것이, 독특하고 매력적인 표현들을 통해 담겨 있었다. 해석하려고 자세히 읽다 보니, 언어가 상당히 감정적이고, 과거에 했던 생각을 그대로 따옴표로 옮기기도 하는 등 뭔가 정신없는데, 표현이 풍부하고 알고리즘이 되게 탄탄하다, 마치 더크처럼. 모든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이, 성의 가득하고 진심어린 말들로 준비되어 있다. 쇼와 캐릭터와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이해의 정도가 굉장하고, 고민도 엄청 많이 했다는 게 느껴진다.
이미 글을 다 쓴 상태에서 보긴 했지만,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인터뷰를 끼워넣었다. 내가 더크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긴 했는데, 어쨌든, 내 글보다 사무엘 바넷 말이 훨씬 괜찮다. 내 글을 읽고 인터뷰를 참고 하지 말고, 인터뷰를 읽고 글을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터뷰 전문 해석은 블로그에만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