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지 마세요. 그런데 모유 수유는 해야 해요.
내가 출산을 한 아산 병원은 모자 동실로 악명이 높다. 뭐, 유니세프에서 지정한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이라고 하던데, 단언컨대 친근이고 뭐고 간에 아산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것은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적어도 나 같은 제왕절개 산모에게는.
내가 아산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이유는, 내 지병 때문이었다. 나는 지긋지긋한 류머티즘 관절염을 10년째 앓고 있고 계속해서 약물 치료를 받아야 했고, 임신 중엔 갑상선 항진도 발견됐다. 나는 분과 간 협진이 가능한 아산병원에서 출산을 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산병원을 한 달에 두세 번씩 각 과를 돌면서 출산을 기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의 실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 하나. 제왕절개 산모에게 강요되는 모유수유였다.
봉합을 하고 병실로 갔는데, 아기가 나보다 먼저 도착해있었다. 선생님은 이제 바로 모유수유를 해야 된다고 했다. 어, 근데 아까 회복실에서는 저한텐 머리를 들지 말라고 하셨는데요?
"네, 누워서 하셔야 해요."
...
그렇게 누워서 아기를 위에 올려놓고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고개를 들 수 없으니, 아기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엄마가 아기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면 그걸 확인했다. 고개를 들 수 없으니, 아기가 잘 물고 있는지 잘 빨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남편한테 물어봤다. 잘 빨고 있느냐고. 이게 뭐람.
아무튼간에 얼굴과 온몸은 댕댕거리면서 부어가는데, 나는 계속해서 금식을 하는 와중에 아기와 함께 밤을 보내는 모자동실의 밤이 시작되었다. 내가 거동이 어려우니, 남편이 기저귀를 갈아야 했고, 줄곧 나는 아기를 올려놓고 모유수유를 해야 했다. 차트에 기록도 해야 했다. 언제 먹었고요, 언제 뭘 쌌고요.
내 가슴은 아직 젖이 돌지 않는 것 같아서 남편은 우려되는 마음에 선생님에게 질문을 한다.
저, 선생님. 아내가 아직 모유가 나오지 않는데요, 아기가 못 먹는 것 같아요.
"괜찮아요, 아기는 먹고 있는 거랍니다."
네?... 못 먹는 거 같은데 암만 봐도요.
새벽에도 아기가 뒤척이거나 울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는 알 길이 없었다. 병실의 수화기로 신생아실에 전화를 걸면, "아기들은 원래 그럽니다~" 혹은 "그냥 하시면 됩니다~" 하는 정도의 너무나 쿨한 대답들만 되돌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질의하기를 포기했다. 잊고 있었지만, 나는 방금 수술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내 옆에는 바로 아기가 있었다. 갑자기 맞닥뜨린 일들에 취해야 할 안정을 모두 잊은 채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새 생명과의 조우에 기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어버버 하는 사이에 우리는 혹독한 부모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