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기다림도 봄이다
시골에서 지낸 한 해를 돌아보며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설프지만 그럭저럭 적응해 가는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그동안 잘 알지 못하면서 섣부르게 쓴 글도 있어 민망합니다. 올 2월의 기록을 뒤져보니 한 일이 별로 없네요. 웅크린 채 봄을 기다렸나 봅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달력에 쓰인 입춘을 기다림이라고 읽습니다. 그 길목에 금을 그어 ‘여기서부터는 봄이야’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냉랭한 태도로 아직 저 너머에 있지만 그래도 결국 만나게 될 그리움이니 ‘가슴 애린 일’은 없습니다. 설렘만 간직하고 있으면 됩니다.
투명 비닐을 덮어 언 땅을 녹이고, 퇴비와 석회고토 등을 섞어 뒤집은 다음 밭고랑을 만듭니다. 일 년 농사 계획도 세우고요. 작은 텃밭이지만 잘 정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모종이나 씨앗이 있어도 마땅한 장소가 없어 당황하게 됩니다. 채소를 심는 간격도 염두에 두어야 품종과 가짓수를 적정하게 배분할 수 있습니다.
중순이면 종묘상에 씨감자가 나옵니다. 이를 사다가 반사광선이 들어오는 따뜻한 곳에서 미리 싹을 틔웁니다. 뿌리내림을 좋게 하고 일찍 잘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죠. 하순엔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열무와 완두콩을 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서둘 필요는 없습니다. 늦서리에 마음 아프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가지치기 딱 좋은 시기입니다. 한겨울엔 잘린 가지가 동해를 입을 수 있어서 이른 봄이 좋다고 합니다. 생장이 더딜 때 가지를 정리해야 나중에 잎이 무성해졌을 때 햇빛을 잘 받고 자랍니다. 배롱나무, 대추나무처럼 새로 난 가지에서 꽃과 열매를 생산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잘라줍니다. 가지치기에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잎이 없기에 그들의 절정기 모습을 떠올리며 작업합니다.
전원생활의 아름다운 그림이 벌레를 만나면 단박에 깨집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미국선녀벌레나 깍지벌레 같은 해충은 정말 곤란합니다. 정원이 처참하게 변하기 때문이죠. 연한 가지를 하얗게 뒤덮고 수액을 빨아먹어 나무를 새카맣게 병들게 합니다.
얘네들은 변온동물이라 겨울이 되면 나무에 알을 남기고 죽습니다. 그래서 2월에 들어서면 병해충 방제를 위해 농약을 구석구석 뿌려줍니다. 기름 성분의 기계유유제(機械油乳劑), 생석회와 유황으로 만든 석회유황합제인데요. 살충제지만 저독성이기 때문에 친환경 농약으로 분류됩니다.
기계유유제는 기름성분이 곤충의 숨구멍을 막거나 피부에 침투해서 살충효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복숭아잿빛무늬병, 잎오갈병, 흑성병, 흰가루병, 깍지벌레, 응애 등의 월동병해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해요. 참 병도 다양하죠? 일 년에 한 번, 꽃 피기 한 달 전 동절기에 살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네요.
바람 잦아들고 햇볕 쨍하면 이처럼 좋은 날씨가 없습니다. 코끝을 스치는 청량한 공기에 날벌레 없고 상하지 않아 햇살 한 줄기도 알뜰하게 아껴가며 먹거리를 말립니다. 무청으로 만든 시래기와 무말랭이, 말린 호박과 곶감은 그렇게 만들어졌죠. 겨울이 내준 음식으로 길어진 그리움을 달래 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다시 문이 닫힌다
기다리는 마음까지 봄이었나 봅니다. 어느새 수선화 새순이 올라오고 매화에, 목련에 꽃봉오리가 맺혔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무마다 움튼 순이 보입니다. 열심히 또 한해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몰라본 것이죠. 옷소매 살짝 그러잡는 손길처럼 알아채기엔 너무 수줍게, 그렇게 봄이 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