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꼍이 곁을 단박에 내주지 않는 까닭은

6월, 뒤란에 찾아든 초여름

by 잼스

해마다 애를 태우는 봄가뭄이지만 올해는 사정이 더 안 좋았어요. 마을 공동 지하수를 이용하기에 이웃들의 눈치를 보며 말라붙은 잔디가 근근이 목 축일만큼만 스프링클러를 돌렸습니다. 그 맘도 몰라주고 햇볕은 여름으로 겅중겅중 뜀을 뛰었습니다.


뒤란은 넉넉한 엄마 손


내가 생각하는 여름은 매실을 터는 날에 시작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전에도 여름의 징후가 오락가락하기는 합니다. 양분 가득한 햇살에 텃밭 쌈채소가 훌쩍 부풀고 길어진 잔디가 발길에 거치적거리면 ‘여름인가?’ 하지요. 그렇지만 통통하게 살 오른 청매실이 땅바닥에 깔아놓은 방수포 위로 후드득 떨어질 때 계절이 오롯이 넘어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싱그러운 연둣빛 계절은 넉넉한 엄마 손처럼 많이 주고 또 퍼줍니다. ‘초여름의 푸른 보약’으로 매실청과 장아찌를 담그고 나면 보리수나무에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익어갑니다. 그냥 먹어도 새콤달콤하지만 그러기엔 양이 많아서 잼을 만들어 두고두고 먹습니다. 감자를 캐서 서늘한 곳에 든든하게 쟁이고 나면 오이와 애호박도 탐스럽게 길쭉해져 있습니다.


집보다 큰 키에 가지를 한껏 펼친 밤나무는 컬리가발 모양의 밤꽃을 빼곡히 얹고 있습니다. 떨떠름한 꽃향기 뒤끝엔 단내가 배어 있고요. 옆에 마주 선 감나무 가지에도 감꽃이 다닥다닥 피었습니다. 제대로 큰 열매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감잎 서른 장의 광합성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감꽃을 솎아주어야 합니다.


나이 먹고 굵어진 나무를 보면 견디며 살아온 세월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그리 많지 않아서 겨울에 퇴비를 주고 웃자란 가지를 쳐주는 정도입니다. 가지치기도 다 큰 어른의 인생에 함부로 개입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스스로 살아내어 열매를 주는 감, 밤, 매실, 보리수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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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식물과 함께 살기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동물 자체가 좋기도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확인하며 삶의 기쁨을 찾습니다. 식물에게 느끼는 감정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꽃 피우고 열매 맺으면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무언의 끄덕임 같아서 행복감에 젖습니다.


사실 과실수에 대해 이런저런 경로로 공부하고 있지만 늘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과, 자두, 배나무는 해충이 잘 꾀는 데다가 채 익기도 전에 떨어지기 일쑤죠. 산수유, 복숭아, 대추나무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열매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석류와 무화과도 그렇네요. 아직 제 능력이 부족합니다.


세 살배기 블루베리가 드디어 열매를 내고 보랏빛으로 익어갑니다. 일 년생 묘목을 사다가 키웠으니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고 힘을 얻습니다. 그렇죠. 능력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의 문제입니다. 단박에 알고 쉽게 식어버리면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조금씩 알아가며 긴 시간을 같이 해야죠.


아, 어쩌면 나를 오래도록 붙잡아 두려는 뒤란의 꿍꿍이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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