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상경기
모처럼 고향 나들이. 도시로 향하는 어깨가 무겁다. 배낭 가득 알밤을 채웠다. 기분 좋은 무게감엔 나누어 먹을 기쁨이 얹혀있다. 찌고 삶고 껍질을 까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런 것까지 맛으로 치는 사람들이 세상엔 많이 있다.
차편은 하루에 다섯 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싸고 편하다. 나 대신 운전할 기사가 있다. 덕분에 휴대폰을 검색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고 심지어 운전 중에 졸기도 한다. 무엇보다 ‘생각’을 할 수 있다. 직접 운전할 때와 달리 달리는 내내 시선도 생각도 자유분방하다.
버스터미널에 내려 지하철로 갈아탄다. 한낮의 승객은 거의 노인들이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눈을 감거나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두꺼운 정적은 두 정거장 지나 갑작스러운 예수와 천국의 등장으로 깨진다. ‘아, 이어폰을 어디에 뒀더라?’ 대중교통이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잠시 후 안내 방송이 나온다. “차내에서 종교활동을 하시면 안 됩니다”. 누군가 신고했나 보다. 포교 아주머니는 개의치 않는다. 저 멀리 어느 남자가 시끄럽다고 소리친다. 아주머니는 “네가 더 시끄럽다”며 받아친다. 급기야 두 사람 사이 몸싸움이 벌어지고 경찰에 전화하고 역에 정차하자 우르르 내린다. “후우~”
배낭을 집에 두고 머리를 깎으러 간다. 이발소는 시골이건 도시건 요즘 보기 드물다. 미용실이 주류다. 다행히 우리 동네엔 한 군데 생존해 있다. 이곳에선 가위와 빗만으로 머리를 다듬는다. 정성스레 손길이 닿아 두상과 어울린다. 기계로 쓱 민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머리를 감길 땐 고개를 숙인다. 눈 위에 수건을 덮지 않는다.
다음은 오래된 친구, 당뇨약 처방을 받으러 간다. 두 달마다 가는 병원은 늘 노인들로 북적인다. 쇠약해지는 인구가 많아지니 의사는 먹고살 걱정 없을 터이다. 그래도 밥그릇 싸움이고 새우등만 터진다. 한 꾸러미 약 봉투를 들고 약국을 나서니 두 달 치 건강을 허락받은 느낌이다. 일단 숙제는 끝냈다.
집으로 돌아와 ‘홍이’를 졸졸 따라다닌다. ‘홍이’는 태어난 지 9년 6개월, 나이 든 샴고양이다. 눈앞에서 벌렁 드러눕거나 웅크려 앉으면, 건드려 주길 바란다고 내 멋대로 생각한다. 참지 못해 쓰다듬고 엉덩이를 두드린다. 내 손을 깨물고 할퀼 때까지. 한참 그렇게 지지고 볶다간 어느새 사라진다. 찾아보면 햇빛 좋은 어딘가에서 졸고 있다.
아내는 나를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 대하듯 한다. 매 끼니 성찬이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이니 맛이 없을 수 없다. 게다가 설거지도 하지 않는다. 식후엔 소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계속 도시에 살았으면 이 모습이었겠구나 싶다. "고마워요. 머무는 동안 내내 잘 먹고 뒹굴다 갑니다. 시골에 오면 다 내가 해줄게."
돌아갈 시간, 다시 지하철을 탄다. 갑자기 발밑으로 휴대폰이 굴러 떨어져 깜짝 놀란다. 한 아이가 휴대전화를 집어던지며 부모에게 투정을 부린다. 차 안의 모든 시선이 확 쏠린다. 야단치던 부모는 다음 역에서 아이를 데리고 후다닥 내린다. 우연인가? 왜 이리 지하철에서 소란이 잦을까?
터미널 역에 다다랐다. 대합실로 가는 길은 백화점 지하와 연결되어 있다. 짙은 향수와 빵 냄새가 배웅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대합실에 모여있다. 모여야만 흩어질 수 있는 곳이다. 흩어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고 모르는 사람 옆에 앉는다.
견디는 시간도 조절되는 것일까? 오금이 저릴 때쯤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부리나케 차를 몰아 시골집에 도착하니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무사히 귀환했다. 이런 기분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시골 생활이 편안해진 것인지, 혼자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진 것인지.
해가 저문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여기저기 둘러본다. 짧은 부재에 변한 건 없다. 그래도 뜰지기는 알아챈다. 애호박은 훌쩍 컸고, 빨개진 고추가 늘었다. 보리싹과 무, 배추도 조금 더 자랐다. 달리아, 란타나, 클레마티스에게 다녀왔다고 얘기한다. ‘저 먼 밖은 어수선하고 난처하고 불안하더라.’
허기가 느껴져 밥을 짓는다. 보리 순을 넣은 애호박 된장찌개에 아내가 바리바리 싸준 밑반찬을 곁들인다. 저녁을 먹으며 TV를 켠다. 낯익은 연예인이 택배기사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산골 집집마다 물건을 배달한다. 그가 묻는다. “가끔 도시가 그립진 않으세요?”
산골 사는 어린애는 광고에 나오는 떡볶이를 눈물로 보채고, 피자가 그리운 어른들은 왕복 세 시간 걸려 시내를 오간다고 고백한다. 마침내 아이를 위한 떡볶이가 출연하고 헌신하는 연예인의 모습이 땀 흐르듯 그려진다. TV를 보는 내 고개가 삐딱해진다. ‘시골 사는 고충도 웃음거리로 쓰이는구나.’
고작 하룻밤 머문 도시는 소나무 껍질처럼 거칠게 느껴졌다. 팍팍한 삶을 잘도 숨기고 있을 뿐, 숫자는 많아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난 이제 시골의 불편이 달가운데, 여전히 도시는 시골이 안쓰러운가 보다. 잘 모르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어떻게 길들여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