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깊은 감동, 이만식 교수의 조각시 산책 21
비친 자리
다 그늘이라 하지만
사연이 쌓이면
그림자라 하네.
ㅡ 달그림자 / 이하
The traces of light,
they say, are just reflections,
but when stories pile up
they turn into true shadows.
ㅡ Moon's shadow
by Lee ha
♧ 조각시 에세이
휘영청 밝은 달밤에 자신의 그림자를 본 적이 있는가? 요즘은 도시 불빛이 밝다 보니 보지 못하는 둘이 있다. 은하수와 달그림자다.
곧 보름이다. 도시에 산다면 달빛이 잘 내리는 곳으로 가서 내 그림자를 밟아보자. 함께 갔다면 그림자끼리 손잡아 보자. 아주 선명한 그림자는 기대 마시라. 달이 대낮의 사람 그림자 정도로 짙게 하려면 30만여 개가 필요하단다.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물주가 흙으로 인간이 만든 뒤 남은 흙을 공중에 획 던지니 덩어리는 달이 되고 부스러기는 동물이 된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인가 빛에 의해 뒷면에 드리워진 형체를 대개 그늘이라 하지만 인간과 동물 그리고 달만은 유사한 DNA라서 그런지 그림자라고 부르지 않나 했다. 시인의 상상력은 탄핵 남발에도 제외다.
요즘은 스마트폰 사진이 발달하여 달그림자가 되어주는 옥토끼가 달의 분화구와 저지대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냥 맨눈으로 보면 어릴 적 보았던 달토끼 모습은 여전하다. 불교 설화에서 굶주림에 아사 직전인 노인을 위해 몸을 공양한 토끼가 가상하여 달에 살도록 해주었다는 이야기는 동양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다. 중국에서는 불사약을 훔쳐 먹은 항아(嫦娥)가 달의 여신이 되고 옥토끼가 심부름으로 불사약 방아를 찧으나 한국과 일본은 복을 주는 떡방아다.
우리의 달은 착하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는 너무 착해서 희생이 전제된 기원과 보상이라 애닯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그렇지 않다. 순결의 상징이지만 사냥 또한 즐겨하리만큼 당차고 때로 무섭다. 누구나 잘 아는 별자리인 큰곰, 작은곰, 오리온 자리는 모두 아르테미스의 거친 행동 때문에 벌어진 결과다.
달은 사람의 인자를 지녀서인지 사연이 많다. 정작 자신의 사연보다 인간의 사연을 조건 없이 들어준다.
필자의 시조 중에 미발표 신작 '저놈의 달'이 있다. '(첫 수 생략) 늦은 밤 노름판에 일당 밑천 떨어지고 / 개평마저 잃은 새벽 울타리에 처박힌 달 / 마누라 복장 쳐대도 방아 찧던 웬수 달'
그랬다. 달은 인간의 감정을 죄다 품고 있다. 칠정(七情)인 기쁨(喜)·노여움(怒)·슬픔(哀)·즐거움(樂)·사랑(愛)·미움(惡)·욕심(欲)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예술가 치고 달을 묘사하지 않은 작가는 없을 거다.
로맨티시즘 풍경화의 선두 주자였던 프리드리히는 보기 드물게 '바다 월출'을 그렸고, 후기 인상주의 대표 작가인 빈센트 반 고흐는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 그림 속에 큼지막한 초승달을 그려 넣었다.
동화 <플랜더스의 개>에서 소년이 보고 싶었던 그림이 루벤스가 그린 '십자가 예수' 그림인데 그는 <달빛에 비친 풍경> 등 달을 꽤 많이 그렸다.
그림쇼는 달빛 묘사에 뛰어났고 현대 미술에 와서도 마그리트와 달리는 초현실주의로 달을 담았다.
한국화나 동양화에서의 달은 서양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을 것이다. 겸재 정선의 한가위 달맞이 그림이나 단원 김홍도의 숲속 밝은 달빛이 생생한 소림명월도,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은 남녀가 달밤에 은밀하게 만나는 장면이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구름을 그리면 저절로 달이 드러난다는 의미의 홍운탁월(烘雲托月)의 화법까지 이어지고 있다.
달밤에 들을 만한 음악으로는 가요도 많겠지만, 임동혁의 베토벤 '월광 소나타'와 조성진의 드뷔시 '달빛 소나타' 피아노 연주는 달도 숨죽여 감상한다. 그 달빛 내린 창가에서 차 한 잔 우리거나 커피를 내려도 좋다. 아니 와인 잔에 달빛을 담아 스월링해보자.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이 곡은 16세 나이 제자였던
줄리에타 귀챠르디 백작 딸에게 헌정한 소나타였으니 그의 연심이 깃들어 있다는 스토리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아무래도 베토벤 월광 소나타는 무심한 달빛보다는 애잔하면서 고혹적인 여인의 향을 느낀다. 어루는 사랑이 느껴진다. 하지만 베토벤은 이 사랑에 실패했다. 글쎄... 격정적인 3악장으로 먼저 대시했다면 어땠을까? 1악장으로 분위기 잡다가 놓친 거 아닐까? 사실 이 곡의 제목은 베토벤이 붙인 제목은 아니다. 베토벤 사후에 시인 루드비히 렐슈타프가 1악장을 “달빛이 비친 루체른 호수 위에 떠 있는 조각배”에 비유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고즈넉한 달빛이 호수에 내린 듯 교교하게 선율이 흐르면 드뷔시의 제3곡이다. 이 제목 또한 시에 차용한 것이라 알려져 있다. 시는 감성의 수장고다.
달을 소재로 삼은 문학 작품을 모으면 아마 웬만한 대학도서관 정도는 되지 싶다. 문인들은 자신의 언어를 달에 의탁하기를 즐겨 했다. 소위 객관적 상관물로서의 달이다. 달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그리움, 사랑, 고독, 향수, 이상, 소망 등을 함축한다.
특히 그리움은 대표적인 정서로 나타난다. 동서양을 통틀어 황진이의 작품이 압권이다. 한시 번역문으로 소개하면 반달을 노래하기를 '누가 곤륜산 옥을 잘라서, 직녀의 머리빗으로 만들었나, 견우 한번 만나 이별한 후, 슬픔에 젖어 푸른 하늘로 던진 것을(愁擲碧空虛 수척벽공허)'이라 했다.
시 뭉치를 품고 죽은 조원의 첩 이옥봉은 '창가에 달빛 내리니 그리움 한으로 쌓이네. 만약 꿈길에 님께 오고 간 흔적 있다면, 님의 문 앞 돌길, 반은 모래 되었으리(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했다. 남편 친구들 앞에서 시를 쓴다고 내침을 당한 뒤에도 임을 그리워함은 달빛 내리니 더 애절했다. 조선 후기 기녀인 능운은 임 가실 때 달 뜨면 오겠다고 하고 오지 않으니 그 임이 계신 곳이 '산이 높아 뜨는 달 늦는가 보다.(月出郞不來 월출랑불래)' 한다.
너무나 유명한 이조년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를 비롯하여 이황, 이이, 윤선도, 월산대군 등의 학자나 이순신, 김종서 등 장군들의 시조, 이규보, 임제 등의 한시에 이르기까지 달은 다양한 심정을 대변한다. 이백과 두보, 소동파 등 중국의 한시도 마찬가지였다.
현대문학에 반영된 달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 박목월의 '나그네'의 달은 유유자적 그대로이고 이정록의 '그대여 /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표현은 절창이다. 소설로 보자면 역시 달밤 메밀밭이 소금 빛으로 연상되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감각을 앞지를 작품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겨울 밤 달의 묘사는 최명희의 '혼불'이 제격이다. '~ 보기 무서우리 만큼 깊고 검푸른 거울이, 티 하나 없이 말갛게 씻기어 상공에 걸린 겨울 밤하늘, 그 가슴 한 복판에 얼음으로 깎은 흰 달이 부시도록 시리게 박혀 있는 빙월(氷月)이야말로, 달의 정(靜)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달그림자 밟을 때 상기해보자.
ㅡ 에세이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김경미(경동대학교 온사람교양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