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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 오르텅스 블루

짧은 시 깊은 감동, 이만식 교수의 조각시 산책 22

사막 /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ㅡ 사막 / 오르텅스 블루 (류시화 옮김)

Désert

il se sentait si seul
dans ce désert
que parfois
il marchait à reculons
pour voir quelques traces devant lui
ㅡ Hortense Vlou

♧ 짧지만「사막(Désert)」이라는 시를 읽고 나면 마음이 아리다. 이 시는 파리 교통 공단(RATP)이 주최한 시 공모전에서 8,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등을 차지한 작품이다. 지은이 Hortense Vlou는 프랑스의 시인으로, 본명은 프랑수아즈 바랑 나지르(Françoise Varang Nazir)로 알려져 있다.

He felt so lonely
In this desert
That sometimes
He would walk backwards
Just to see tracks in front of him.
- Desert by Hortense Vlou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이 시는 인기 드라마 <도깨비>에 인용되었고, 이해인 수녀의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2011) 산문집에서도 인용되었다. 이해인 수녀는『시 치료: 이론과 실제』(2005.1) 역자(김현희) 서문에 실려 있는 글을 재인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시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이는 류시화 시인이다. 8년 동안 모은 치유시 모음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2005. 3)에 수록하면서다. 류 시인은 게재 허락을 받은 일화를 뒤늦게 그의 페이스북 '아침의 시 107(2016. 1. 13)' 편에 자세히 밝혀 놓았다. 해설자는 류시화 시인이 인도에 머물고 있을 당시부터 간간이 소통했던 터라 이 내용을 당일에 대했다. 의외의 인생사가 시만큼이나 충격이었다.

[ 류시화 시인: ~ (겨우) 어렵게 주소를 구할 수 있었다. 전화도 이메일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주소로 편지를 보내고 한 달을 기다렸으나 답장이 없었다.

파리에 사는 화가 친구에게 부탁해 찾아가게 했다. 겨울이었고, 아침 일찍 주소지에 도착해 빌라 꼭대기 층 벨을 누르자 아시아계 남자가 문을 열었다. 오르텅스 블루의 전남편이었다.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자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오르텅스가 말했다.
“당신을 알아. 하지만 시 게재를 허락할 수 없어. 시가 완벽하지 않으니까."
어떤 점에서 시가 완벽하지 않은가 묻자, 그녀는 전남편에게 시가 적힌 종이를 가져오게 해서 한 부분을 짚으며 말했다.
“여기 이 ‘너무도(불어 원문에서는 si)’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그녀는 말했다.
“그때 내가 느낀 외로움은 이 ‘너무도’로는 표현이 안 돼."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구부렸는데, 그 모습을 보고 친구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걸을 때 비틀거렸고, 키가 작았으며, 말랐다. 30대인데 등이 구부정하게 휘어 있었다. 그녀는 친구에게 뭘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고, 화가라고 하자 자기도 그림을 그린다며 자화상을 보여 주었다. 볼펜과 사인펜으로 그렸는데, 입술만 붉게 칠해져 있었다. 그림이 좋다고 했더니,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테이블 옆 단지 안에서 이것저것 꺼내 보여 주었다. 젊었을 때 어린 아들을 안고 웃는 사진, 첫사랑이 준 작은 그림 한 점, 그리고 몇몇 사진들.

'사막’은 정신병원에서 쓴 시라고 했다. 첫사랑과 헤어진 충격으로 그녀는 정신발작을 일으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병이 호전되자 영화관에서 일하며 전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정신병이 재발해 또다시 병원을 들락거리고, 이혼하고, 그러나 돌봐줄 이가 없어 전남편과 아들과 여전히 한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집 안에는 다리가 부러진 의자가 있고, 몇 안 되는 가구는 쇠사슬로 바닥에 고정돼 있었다. 발작이 일어나면 힘이 세져 가구를 집어던지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가야겠다며 친구가 일어서자, 그녀가 말했다.
“시가 완벽하진 않지만, 당신이 좋아졌어. 그러니까 허락할게. 내 시를 책에 실어도 좋아."]

느낀 외로움이 ‘너무도’로는 표현이 부족해 시가 완벽하지 않다니! 외로움의 유의어 모두를 동원한 어구로는 가능할까? 가령 '처절하게 외롭고 몸서리치도록 적막한 고독' 정도로.
사실 한자어 '고독'과 토박이말 '외로움'은 같으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 매우 고독한 경지를 고독경(孤獨境)이라 하는데 이는 철학적인 함의가 있어 근원적인 고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철학자는 의도적으로 세상과 절연하고 은둔하여 고독경에 자신을 놓이게 한다. 사유의 깊이를 더하거나 진리나 원리를 간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외로움'의 기표에는 철학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더욱이 이 시에서는 사막으로 상정한 철저하게 고립되고 황망한 환경에서의 외로움이다. 쓸쓸함은 대중 속에 있으나 외로움은 고립 속에 있다.

나 홀로 거리는 쓸쓸하고
나 홀로 누운 방은 외롭고
ㅡ 고독의 차이 / 이하

그 절대 고립 속에서 오히려 생명의 진정한 본질을 추구한 시인이 있다. 유치환 시인이다. 그는 <생명의 서>에서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 ) 그 열렬한 고독의 가운데 /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 ~ '라고 했다.
오르텅스 블루의 발자국은 생명인 셈이다. 자기 발자국일망정 누군가와 동행함으로 위안 삼고자 했으니 그러하다. 그녀가 유치환의 시를 만났다면 쉬 교감하며 큰 성찰과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 발자국마저 거부하고 회피하고자 하면 공자가 두 번이나 절을 하고 들었던 어부의 말을 새겨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자기 발자국이 싫어서 이것들에서 벗어나 달아나려 하였는데, 발을 빨리 놀릴수록 발자국은 더욱 많아졌고,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그림자는 그의 몸을 떠나지 않았다 합니다. 그래도 그 자신은 아직도 느리게 뛰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쉬지 않고 질주하다가 결국에는 힘이 다해 죽고 말았다 합니다.
그는 그늘 속에 쉬면 그림자가 사라지고, 고요히 있으면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不知處陰以休影, 處靜以息迹) 어리석음이 지나쳤던 것입니다. - 莊子(雜篇)

ㅡ 해설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김경미(경동대학교 온사람교양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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