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깊은 감동, 이만식 교수의 조각시 산책 23
2월. 잉크를 꺼내 울어라,
2월을 써라, 흐느껴 울며,
천둥치는 진눈깨비 속에서
검은 봄처럼 타오르는 것을.
― 2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Февраль. Достать чернил и плакать,
Писать о феврале навзрыд,
Пока грохочущая слякоть
Весною черною горит.
―Февраль/ Борис Леонидович Пастерна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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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Take out the ink and weep,
Write of February, sobbing aloud,
While the thundering slush
Burns like black spring
ㅡ February by Boris Leonidovich Pasternak
♧ 이 시의 저자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는 특히《닥터 지바고》(1957년)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작품으로 195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널리 주지하다시피 《닥터 지바고》 소설은 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사랑과 격동적인 변화를 담고 있는데,〈2월〉(1912년)이라는 이 시 또한 1912년 당시 러시아 제국의 심각한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위기의 사회적인 격변을 바탕으로 시대적인 불안과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위의 영어 번역 시는 러시아 원문 <2월>의 내용과 이미지를 충실히 반영하고자 ChatGPT의 도움을 받아 직역 스타일로 번역한 것이다.
보통 '2월'은 혹독한 겨울과 희미한 봄의 기운이 교차하는 순간으로 여겨지지만, 이 시에서 묘사되어 있는 '2월'은 단순한 계절 변화의 경계를 넘어선다. 훨씬 더 거대한 사회의 격변을 직면하고 있는 듯한 절체절명의 위기로 느껴지면서 장엄한 분위기가 독자를 압도하고 있다.
따라서 시의 첫 구절 "Достать чернил и плакать"은 "Take out the ink and weep" (잉크를 꺼내 울어라)로 원문의 직설적인 명령형을 그대로 살렸는데, 이러한 명령체는 독자로 하여금 긴박감을 조성함으로써 시인이 품은 격렬한 감정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로써 2월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겨울의 차가움과 봄을 기다리는 갈망이 겹치면서 동시에 역사적인 격변의 절정에 이르는 깊은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이어 원문 2행의 "Писать о феврале навзрыд" 은 "Write of February, sobbing aloud"(2월을 써라, 흐느껴 울며)에서, 특히 "навзрыд"이라는 시어는 '통곡하며/흐느껴 울며'라는 뜻을 가진 "sobbing aloud"이다. 이러한 절규에 가까운 흐느낌 속에서 "2월을 써라"라는 명령은 단순한 기록 행위를 넘어, 격변하는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키거나 거대한 역사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담아낸 장엄한 선언으로 다가온다.
또한 원문 3행의 "грохочущая слякоть" 은 "thundering slush" (천둥치는 듯한 진눈깨비), 원문 4행의 "Весною черною горит" 은 "Burns like black spring" (검은 봄처럼 타오른다)는 겨울과 봄이 마치 폭탄이라도 터지듯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순간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진눈깨비"는 보통 조용히 내리는데 여기서 "천둥치듯 (내리는) 진눈깨비"는 거친 에너지가 폭발하는 전환기적 상황을 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축제의 불꽃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검은 봄"이라는 표현이 상당히 모순적인 분위기를 내포함으로써 왠지 모를 불안과 혼란을 동반한 격렬함을 암시하고 있다.
위와 같이 겨울의 끝이자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문턱에 위태롭게 서 있는 2월! 단순한 겨울과 봄의 경계가 아니라, 한 개인과 역사적인 한 사회의 모든 변화를 목전에 둔 대격변의 전환점을 강렬하게 상징한다. 겨울은 끝나가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봄은 오고 있지만, 그것이 완전히 밝고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이런 경계 속에서, 시인은 잉크를 들고 울며 글을 쓴다.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면서도, 동시에 변화와 새로운 재생 과정 속의 복잡한 감정이 내포된 통과의례와도 같다.
한국은 지금 그런 2월을 보내었다. 2월은 짧고 특성이랄 게 없는 달이지만 봄을 이끌어주고 말없이 사라지는 달이다.
ㅡ 해설 이하(李夏. 이만식) / 김경미(경동대학교 온사람교양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