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깊은 감동, 이만식 교수의 조각시 산책 25
The Pool
by Hilda Doolittle, 1915
Are you alive?
I touch you.
You quiver like a sea-fish.
I cover you with my net.
What are you—banded one?
너는 살아 있는가?
나는 너를 만져본다.
너는 바닷물고기처럼 떠는구나.
나는 너를 그물로 덮어 본다.
너는 무엇이냐—줄무늬를 가진 존재여?
ㅡ 연못 / 힐다 둘리틀(미국, 1915)
♤ 개인적으로 처음 '조각시'를 접했을 때, 영문학을 전공한 탓인지 자연스럽게 20세기 초 영문학에서 크게 유행했던 '이미지스트 시"(Imagist poetry)가 떠올랐다. 이미지스트 시의 작품은 기존의 장황하고 수식적인 시 형식을 거부하고 간결하고 명확한 이미지를 통한 직관적인 감각 표현, 그리고 불필요한 설명을 배제한 시어의 절제미를 강조한 것이 특징인데, 위에 소개한 힐다 둘리틀(H.D.)의 "The Pool"은 이미지스트 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시로, 짧고 압축적인 언어로 자연과 존재에 대한 신비로운 순간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의 첫 행에서 화자는 '연못'을 향하여 "Are you alive?"(너는 살아 있는가?)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어서 그 연못 생명의 섬세한 움직임을 마치 "바닷물고기"(sea-fish)처럼 역동적으로 파닥거리며 떨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연못 수면은 겉보기에 잔잔하지만, 그 아래에서는 생명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마치 수면 밖 세계 못지않게 생동감 있는 또 다른 시간이 흐르듯이 말이다.
이에 화자는 자신 나름의 그물로 덮어 그 생명의 자연을 포착하여 파악하고자 시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도 잠시일 뿐, 화자는 그 대상의 정체를 완전히 밝히지 못한 채 "What are you—banded one?"(너는 무엇이냐—줄무늬를 가진 존재여?)라는 모호한 질문을 던지며 열린 결말로 맺는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결코 완전히 규명할 수 없는 생명과 존재의 본질, 화자는 그 모호한 존재를 "줄무늬를 가진 존재"(banded one)라고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줄무늬"일까?...여기에는 여러가지 다층적 의미와 해석이 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우선 물리적으로 "줄무늬"는 연못 속에서 빛이 반사되며 생기는 움직이는 그림자나 패턴, 윤슬을 의미할 수도 있고, 혹은 수면 아래의 진짜 줄무늬를 가진 물고기나 다른 생물일 수도 있다.
또한 여기서 "줄무늬"는 일정한 패턴을 의미하는 듯 하지만, 이를 목격한 화자조차 마지막을 물음표로 맺으며 그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다. 이는 "줄무늬"가 단순한 특징이 아니라, 곧 흐려지거나 변할 수도 있는 가변성과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이는 고정된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의 속성을 암시하려는 화자의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이해하기 어려우며 계속 변화하는 자연의 신비, 혹은 존재의 모호한 본질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힐다 둘리틀의 "The Pool"은 짧지만 깊은 사색을 유도하는 이미지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단순한 자연의 한 순간을 넘어 존재의 본질과 그것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시도를 탐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를 통해 독자들은 짧은 순간 속에 숨겨진 자연의 신비와 존재 변화의 가능성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자연에 대한 단순한 관찰이 아닌 그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결국에는 끝없는 심연의 질문 속으로 빠져들며 존재의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해설: 김경미)
※ 힐다 둘리틀(1886 ~ 1961): 미국 이미지즘 시인. E.L. 파운드의 이미지즘 운동에 참여, 1913년 영국의 시인 ·소설가 R.앨딩턴과 결혼(1937년 이혼) 후 유럽에 거주.《바다 유원지》(1916), 전쟁을 다룬《벽은 넘어지지 않는다 The Walls Do Not Fall》(1944) 3부작은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음.
ㅡ 해설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및 해설 김경미(경동대학교 온사람교양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