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9일~ 1월 18일
우리에게 시간을 주려고 하는 거죠? 갑자기 쓰러져서 당황했는데 그 또렷하던 의식은 왜 삼일 만에 흐려진 건지. 분명 감기일 거라고 요양원에서 그랬고 언제나처럼 요양원 밴드에 아빠의 활동사진이 올라와서 안심했다고요. 요양원을 맘에 들어하시고 모든 활동에 열심히여서 감사했는데 느닷없이 쓰러지시고는 갑자기 며칠 만에 폐가 사라지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병이 있었는데 요양원에서 몰랐을까? 아니 얼마나 계셨다고 그들에게 돌봄의 모든 것을 책임 지울 수가 있나. 우리 세 자매가 알았어야 했나. 나는 아빠를 섬세하게 챙길 만큼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아빠는 이상한 사람이었어. 마음이 여린 걸 알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많이 했고 그럴 때마다 아빠가 나의 아빠라는 게 부끄러웠어. 여린 마음만 본다면 차라리 측은하기라도 하지 정작 중요한 순간에 아빠로서 결단이나 책임을 져야 하는 일들 앞에서 숨어버리는 사람, 그런 아빠랑 함께 사는 엄마에게 왜 진작 이혼을 하지 않느냐며 다그쳤지. 매일 몸이 안 좋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엄마가 집안일이 생길 때마다 슈퍼우먼처럼 모든 것을 처리할 때 결국 같은 상호작용의 사람들끼리 만난 거라고 생각했어. 한 사람을 구하고 구원받고. 엄마가 아빠를 구원하려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고.
소리는 들리고 몸은 이미 생과 사의 어디쯤 있는 상태일까. 엄마만 찾았던 아빠를 우리가 '아빠'하고 부르면 그저 두 눈을 감은 채로 눈물만 흘리네. 최근엔 전화도 하지 않는 아빠에게 일주일 전에 백 년 만에 전화해서는 핀잔을 주며 좀 기다리라 했지. 설날에 찾아뵌다고. 카스텔라와 두유와 휴지를 사달라고 하셨고. 그게 뭐라고 풍족하게 막 갖다 드리면 되는데 꾸역꾸역 잔소리를 해대고.
눈물만 흘리는 아빠를 보고 있자니 복장이 터지고 억울해. 그렇게 짱짱했는데 감기로 의식을 잃게 될지 누가 알았겠냐고. 세 자매가 나름의 효도를 하고 있고 엄마도 아빠에게 남았던 오래전 미움은 희석된 것 같은데 배우고 싶으신 거 많으니 그 좋은 거 다하시고 맛있는 거 드시고 편안히 노년을 즐기시면 좋을 텐데. 아빠는 가만히 있어도 코가 깨지는 사람이었지. 유년에 부모님께 사랑도 못 받고 지금도 아빠를 이해하는 딸하나 곁에 두지 못하고.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요
호흡기에 의지한 해 일주일을 버텼네. 호흡기를 떼면 우리는 이별일까. 이렇게 아무것도 못한 채 호흡기에 수면제만 넣는 의사에게 엄마는 중환자실을 뒤집으며 말했어 '이틀 일찍 가도 되니 대화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분명 일주일 전에 자신의 옷과 폰을 챙기며 안 아픈데라고 하고 중환자실 들어갔잖아. 중환자실에서 아빠 얼굴이 제일 보기 좋아 말갛고 하얗고 동그랗다고. 그런데 아빠만 의식이 없어.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우리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가셔요 그거 엄마가 꼭 받고 싶데. 우리도 그 말 한마디 들었으면 좋겠어. 아빠가 먼저 말해. 아빠가 말하면 나도 말할 거야. 그래도 사랑했다고.
큰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