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행 파헤치기 : 유럽 편 08 - 에필로그
3년 반 전 만 9개월이던 율이와 함께했던 유럽 여행기가 드디어 끝이 났다. 여행을 다녀온 건 3년 반이나 지났지만, 여행기를 마무리한 지금에서야 정말 이 여행이 끝이 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즐거운 일들만 가득한, 녹록한 여행은 아니었다. 보고 싶은 전시를 눈앞에 두고도 여러 번 포기했고, 여행 중 짐을 줄이기 위해 나와 남편은 열흘을 거의 단벌로 다녔다. 또, 런던에서 내 휴대폰을 분실하고, 유모차에 앉기 싫어하는 율이를 하루 종일 힙시트에 안고 걸어 다니고, 파리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 유모차가 실리지 않아 며칠 뒤 택배로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유럽 여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런 힘든 에피소드를 모두 뒤로 하고 '너무나 좋았다!'라는 짧은 한 문장이다.
이후에도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지금 데리고 다녀봤자 나중에 기억도 못할 텐데. 뭘 힘들게 데리고 다녀."였다. 맞는 말이다. 아이들의 기억력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대단하지 않다. 아무리 멋진 여행을 하고 왔다고 하더라도, 며칠만 지나면 대부분 잊어버리고 지금 눈앞의 신나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과의 여행은 힘들다. 내 몸뚱이 하나만 신경 쓰던 시절보다 몸도 마음도 버거운 상황들이 더 자주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아... 여기까지 애들 데리고 괜히 온 게 아닌가.' 싶은 후회의 순간도 종종 있다. 하지만 집에 있다고 해서 육아가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듯, 아이와 여행한다고 해서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된 팩트는,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있든 없든, 여행을 떠날 때 내가 채워지고 행복을 느낀다. 이것이 힘이 들더라도 다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짐을 싸게 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기억에 모든 것이 남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우리 아이들과 내가 여행을 함께 다니며 쌓은 추억들이 매우 촘촘하다. 이 소중한 추억들은,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두 아이를 혼자 돌보는 시간들을 버티게 해주는 큰 힘이 되어준다.
이번 여행기를 쓰면서 오랜만에 지난 페이스북 피드를 찾아보았다. 유럽에 다녀와서 내가 올린 첫 글에는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이렇게 적혀있었다.
'쉽지는 않지만 할만한 아기와의 여행!
다음에 또 갈 거냐고 물어보시면, 무조건 GO예요!'
이 짧은 문장이 너무나도 떠나고 싶지만 아이들 때문에 고민인 엄마 아빠들에게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