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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여행중 Jan 02. 2019

다시 만난 물의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포기한 것들

지난 여행 파헤치기 : 유럽 편 02

인천에서 밤 12시가 넘어 출발하는 밤 비행기율은 아기띠에 잠들어 안긴 채로 인생 첫 비행기에 탑승을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베시넷에 눕히기만 하면 깨어났다. 깨면 달래서 다시 재우고, 다시 눕히다 또 깨면 처음부터 달래고... 연속 두 번 정도 깨어나자 세 번째부터는 아예 겁이 나서 눕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아이가 잠들어 있는 그대로 안은채, 앉은 자세로 계속 비행을 이어 갔다. 혹시나 잠든 승객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잠깐 칭얼대기라도 하면 수유를 해가며 잠자는 시간을 연장시켰다. 그렇게 7시간 넘게 밥도 화장실도 포기한 채 안고 있었더니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듯 개운하게 눈을 떴다. 역시 잘 자고 일어나더니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남은 비행시간 동안은 베시넷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옆의 승객들과 눈을 마주치기도 하며 즐겼다.

사실 나는 아이를 안고 있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였다. 하지만 애초에 '11시간 반 중에 10시간 정도는 율이 울고 보채서 달래느라 서서 갈 수도 있다!'는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래서인지 점수를 매겨보자면, 비행 중 앉아서 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70점 정도는 줄 수가 있을 것 같다. 아이와의 여행은 이렇게 최악의 경우까지 예상해 두는 편이 나의 멘탈에 도움이 된다. 돌려서 말하자면 이런 최악의 경우를 설사 경험하더라도 그것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너무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우리 셋은 11시간 반 만에 경유지인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도착했다. 

베시넷에서 놀고 있는 율의 흔들린 사진

암스테르담은 아직 4시 반 즈음의 이른 새벽이었다. 우리는 공항 내 카페에서 간단히 차를 마시며 큰 유리창 밖으로 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지만, 10시간이 넘는 경유 대기 시간 동안 이 도시를 반나절 만이라도 둘러보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 긴 대기 시간이 있는 연결 항공편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출근 시간 정도가 되어서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갔다. 암스테르담은 4년 전 남동생, 사촌 여동생과 여행을 한 적에 있었는데, 다시 이 곳에 오게 된 것이다. 중앙역 광장 건너편에 보이는 운하와 둥실둥실 떠있는 배, 물길을 따라 예쁘게 늘어선 건물들, 바쁘게 오가는 자전거 행렬이 다시 이 도시에 왔음을 실감 나게 했다. 5월이 되었는데도 아직 공기가 찬 편이었는데, 옷을 따뜻하게 입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산한 암스테르담의 아침 풍경과 끌리듯 들어간 빵집에서의 남편

우선 우리 셋은 천천히 걸으며 이 도시를 느꼈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상쾌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활기 속에서도 차분함이 느껴졌다. 멀리 보이는 트램들, 갈라지고 또 만나는 물길들과 흥미롭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이 '여기는 물의 도시 암스테르담이야! 너희는 지금 네덜란드에 와 있다고!'하고 크게 외치는 것 같았다.

안네 프랑크의 집을 보기위해 길게 길게 늘어선 줄들

기왕이면 지난 여행 때 가보지 못한 곳 위주로 둘러보고 싶었다. 그래서 가 보고 싶었던 '안네 프랑크의 집'으로 향했다. 어릴 때 읽었던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가 실제 거주했던 곳으로 지금은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오전 이른 시간인데도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입장 줄의 길이가 어마어마했다. 커브를 돌고 또 돌아도 정말이지 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기를 안고 있다 보니 도저히 줄을 서서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갈 수 없겠구나...' 아쉬운 마음에 늘어선 줄을 따라 안네의 집 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유리로 덮인 건물까지 죽 이어져 있었는데, 결국 외관만 슬쩍 본채 다음번을 기약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입장을 포기한 것은 안네 프랑크의 집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다음 코스로 방문한 반 고흐 뮤지엄. 이 곳 역시 입장을 위한 줄을 길게 서 있었지만 안네 프랑크의 집에 비하면 기다려 볼만 해 보였다. 기까지 와서 두 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줄 맨 뒤에 가 섰다.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았을 때쯤, 아기띠에 안겨있던 율이 크게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우리에게 쏠렸다. 어르고 달래고 노래도 불러주고 주변의 사람들도 보여 주었지만 뭐가 불편한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결국 나와 남편은 몇 분 더 버텨보다 '안 되겠지..?' 하는 눈빛을 주고받은 후 줄에서 빠져나왔다. "어차피 줄이 너무 길어서 율이 어느 타이밍에선가 보채긴 했을 거야. 이렇게 빨리 울어주다니 우리 아들이 효자지 뭐!" 라며 우리는 자위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우리 부부의 체력을 위해 '오늘은 전시를 보는 것을 포기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어진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율이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했다.

반 고흐 뮤지엄 앞에서의 입장 줄. 안네 프랑크 집보다는 줄이 길지 않았지만 너무 더디게 움직였다

공항에서 가져온 종이 지도를 보며 웅장하게 서있는 국립 미술관 건물과 그 앞의 I Amsterdam 사인을 찾아갔다. 이미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 있어 I Amsterdam 글씨 전체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도 질 수 없어 인증샷을 찍었는데 인파 속에서 제대로 찍기란 쉽지 않았다.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한 장을 겨우 남기고 국립 미술관 쪽을 향해 더 걸어가 보았다. 국립 미술관 역시 겉에서만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나마 국립 미술관은 지난 여행에서 전시 관람을 했던 터라 아쉬움이 덜했다.

I Amsterdam 사인 앞의 수많은 관광객들

환경이 바뀌다 보니 아이는 뭔가 불안한지 아빠에게 조차 가지 않으려고 했다. 여행을 위해 새로 구입해서 가져온 유모차에도 앉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그래서 결국 하루 종일 내가 힙시트로 안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긴 비행시간 이후 쉬지도 못하고 아기를 계속 안고 있었더니 어느 순간 피로가 몰려왔다. 아직 런던 근처에도 못 갔는데 아프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이후에는 무리하지 않고 가까운 거리도 트램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이름 모를 백화점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남편은 시원하게 맥주 한잔을 들이켜는데, 아직 모유수유 중이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하이네켄 한잔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대신 암스테르담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Manneken Pis 감자튀김을 먹으며 그 아쉬움을 달래었다. 그리고 중앙역 근처의 구교회를 천천히 둘러보는 것으로 암스테르담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백화점 식당가에서 신난 율과 유명하다는 감자튀김을 사는 나. 그리고 구교회의 모습

아이와의 여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막상 첫날부터 우리 부부의 의지와는 다르게 포기하는 것들이 여럿 생기다 보니, 앞으로 남은 여행이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첫 번째도 율의 컨디션, 두 번째도 율의 컨디션을 생각하며 욕심을 버린 여행을 하는 것만이 우리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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