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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Jul 31. 2023

도망쳐. 더위가 뒤쫓아 온다구.

     

오늘같이 더운 날은 뛰려고 나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아침 5시부터 체감 온도는 27도로 높아져 있고, 나가면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되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꼼꼼히 팔과 다리까지 노출된 피부에 선블락을 바르면서 생각합니다. 왜 이런 더위에도 나는 뛰러 다니는  걸까? 돈 생기는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왜 혹한기 혹서기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가를 생각해봅니다.     


더운 날의 달리기는 동료 러너들과 좀 더 결속감이 강해집니다. 혹한기, 혹서기에 야외달리기는 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어떻게 모른 척 하겠습니까? 내 숨이 가빠오고 내 몸 체온이 대기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여길 때 당신의 그것 또한 잘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지요. 코너를 돌아 싱글렛(소매가 없는 나시운동복, 어깨에 가느다란 끈으로 연결되어 필수적인 부위만 가린 일종의 천가리개)을 입은 남성 러너를 만났습니다. 그는 몸은 드러냈지만 얼굴 절반은 버프를 쓰고있습니다. 버프는 일종의 마스크 역할을 하는 천인데요. 코와 입을 가린 채 땀을 뻘뻘 흘리는 그를 봅니다.     


오늘은 장거리 지속주 훈련을 하기로 마음 먹은 날입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내가 뛰는 속도와 땀이 나는 속도를 비교해봅니다. 27도가 넘는 오늘 아침에는 땀이 정말 샘솟듯 납니다. 손에 든 손수건으로 눈에서 펑펑 솟아나는 땀을 훔쳐내기 바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싱글렛 남성 러너는 머리에 헤드밴드도 하고 있었습니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눈에 들지 않게끔 한 조치였나 봅니다. 나와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그를 처음 볼 때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주로 달리는 마곡 식물원의 둘레는 약 2킬로미터, 한바퀴를 돌고 그를 다시 만나자 왠지 아는 척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소심하지만 분명히 나 ‘당신에게 인사하고 있어요’ 하는 표시로 손을 들어 보입니다. 일단은 최고! 넘버원의 표시인 엄지척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랩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분명하게 “화이팅!”을 외쳐줍니다. 오늘 나는 하프(20킬로미터)를 뛰려 마음 먹고 있는데, 당신을 이렇게 여러번 만나니 동질감을 느낀다는 표시입니다.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가 손을 들어 줍니다. 표정은 아직도 버프 속에 감춰져 있군요.      

이제 그만 포기할까 싶은 5바퀴 째였습니다. 아까의 그 러너가 버프를 벗고 쿨다운을 하는 게 보입니다. 그는 가뿐 숨을 가다듬으며 다리의 긴장도를 서서히 늦추는 마무리 운동중이었습니다. 내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내 쪽을 바라보더니 그가 씩 웃으며 내가 처음에 보여주었던 엄지척을 양손으로 보여줍니다. ‘쌍따봉’ 그리고 “정말 최고입니다! 이 더위에 멋져요!”라고 외쳐줍니다. ‘아 오늘 그만 달릴까’ 하는 마음이 그 소리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알 수 없는 그리고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그 이성에게 ‘멋지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오늘 목표한 것을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이후는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합니다. 아픈 곳은 없는지, 신발 속 발은 안 불편한지, 그리고 호흡이 달릴 때 가슴만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이미 달리는 길은 수백 번도 더 했던 터이니 익숙해져 있고 몸의 반응을 충분히 잘 살릴 수 있을 정도로 나는 길들여져 있습니다. 


온 몸의 땀구멍에서 땀이 나는 듯 합니다. ‘비오듯’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나는 웃고 있었습니다. 이 온도에 달리는 “나는 최고다.”“나는 누구보다 강하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이겼다.” 이 소리들을 속으로 되내이며 나는 오늘의 하프를 마무리 합니다. 같이 달려주었던 싱글렌 러너와 같이 길 위에 있었던 보행자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더위를 이겨낸 ‘위너’들입니다. 더위가 쫓아오기 전에 열심히 도망치듯 운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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