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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Aug 21. 2023

삼시 세 끼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방학중 가정주부의 운동분투기

    

바야흐로 여름방학. 아이들이 방학하는 시기에는 가정주부들은 ‘개학’을 맞습니다. 아침에 아이들 깨워 하루 세끼 먹이는 일부터 움직이며 끊임없이 어지르는 손들이 만들어놓은 고 엔트로피의 시기를 맞이하니까요. 겨우 운동에 취미를 붙였던 엄마들은 지레 내 시간으로 ‘운동’을 포기하고야 맙니다. 운동은 오늘 안 해도 큰 영향이 없으니까요.     

 

저부터 집안일에 드는 시간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자녀 둘이 포함된 4인 가정인데요. 우리 모두는 아침저녁으로 수건을 한 장 이상씩, 즉 하루에 수건 10장을 내어놉니다. 거기에 남편과 저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일상복에 운동복까지 매일같이 세탁을 하지요. 대형 건조대가 쉴 새 없이 펼쳐져 있는 걸 보면, 우리 집은 빨래 지옥입니다. 건조기가 없는 저는 빨래 널고 개고 하는데 대략 한 시간이 걸립니다. 한여름에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베란다에서 빨래 걸 때마다 “아이고 지겨워! 빨래 너무 싫어”를 되풀이합니다. 그러고 보니 빨래하느라 등운동과 이두운동 그리고 버티고 서는 하체 운동을 조금 했네요.     

 

청소는 하루에 2번 합니다만, 제가 정작 치우기 어려워하는 건 제 작업실입니다. 저는 아직 제 서재와 ‘자기만의 방’이 없는 이동식 집필활동을 하는 예비작가입니다. 제가 주로 일하는 공간은 식탁, 우리 가족들이 밥을 먹을 때마다 제 서재는 착착 치워져 사라져야 합니다. 또 다양한 분야의 관심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저는 한 번에 책을 5권 정도를 동시에 보곤 하는데요. 한 책을 조금 보고, 다른 책을 또 이어서 보며, 공간마다 책을 두는 고엔트로피에 기여하는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아 우리 아이들이 나를 닮았군요.  즉 제가 하루에 옮기는 책이 10권정도 되고요, 노트북을 접었다 폈다 식탁에 다이어리 포함 집필 도구를 펼쳤다 치웠다 3번 이상을 반복합니다. 어라.. 여기서 저는 또 이두와 어깨 운동을 했군요.      


그다음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삼시 세 끼’ 준비입니다. 식사준비와 설거지는 가정 주부의 실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활동인 동시에 너무나 귀찮은 일이기도 합니다. 남편과 아이들은 제가 뚝딱 밥을 차려내는 줄 알지만 식재료 구매부터 식단에 대한 고민까지 얼마나 품이 드는 일인지 모릅니다. 또 유제품의 유통기한과 아이들이 각자가 좋아하는 간식이 남았는지 여부까지 주부들은 AI급의 두뇌 용량을 가져야 합니다. 여름 과일 복숭아조차도 한 녀석은 딱딱한 복숭아, 다른 녀석은 말랑한 복숭아, 남편은 수박, 이렇게 말하는 걸 볼라치면 “머래는 거니? 닥치고 주는 대로 먹었!!”라 말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통일된 식사 취향, 주는 대로 잘 먹는 가족을 가지신 분들 복 받으신 겁니다.      


계절이 바뀌면 돌아오는 게 방학인데, 그때마다 아이들과 같이 있어서 좋다는 마음보다는 개학이 언제인지 Dday를 꼽게 됩니다. 아이들이 방학을 기다리는 마음과 별반 다를 게 있겠습니까? 엄마의 시간이 아이들을 중심을 돌아가는 걸 멈추어 봅시다. 그러면 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이번 방학에 운동 first의 삶을 실현해 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아이들보다 먼저 자고 재빠르게 일어나 새벽 시간에 내 운동 시간을 확보할 계획을 세웠지요. 십 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아이들은 점점 더 취침이 늦어지더니 그날 자정이 되도록 잘 생각들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8시 혹은 9시 넘도록 일어나질 않아요.      


아침 4시 30분, 미라클 모닝을 하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아이들이 깨기 전 나만의 러닝 타임을 확보하고자 알람을 맞춰 뒀습니다. 거실 소파에 운동복과 블루투스 이어폰도 미리 챙겨 두었고요. 일어나자마자 재빠르게 튀어 나가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10시부터 잘 계획도 세워두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설거지며 음식쓰레기 처리, 내일 아침 먹을 식재료 해동까지 모두 마쳐 두고 누가 떠들건 저부터 자러 갑니다. 십 대 중반의 아이들이라 베드타임스토리가 필요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알람이 울린 지 10여 초 만에 일어났습니다. 지금 시간은 새벽 4시 30분, 옷을 챙겨 입고 물 한잔을 마시고 밖을 나섭니다. 이 시간에 뛰어본 적이 전무한 터라 바깥 풍경이 생경합니다. 오늘은 귀에 이어폰도 꼽지 않기로 합니다. 비상시를 대비해 예민한 청각을 살려두고 싶었어요. 아! 이 시간에도 청소부 아저씨들이 나와 계시는군요. 모퉁이를 돌아설 때 새벽부터 나와 계시는 아주머니들도 발견했습니다. 이미 친한 듯 해보이는 그분들은 아직 더위가 몰아치기 전 산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새벽 얼싱(맨발로 땅을 밟아 지력을 흡수하는 워킹방법)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습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려 하는지, 방범대원들도 공원을 돌고 있군요. 형광조끼를 입고 경광봉을 든 모습이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 없습니다. 아, 새벽 풍경을 이러했군요. 여름 새벽이라고 그렇게 선선한 게 아니라지만 그래도 아침나절 보다 더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운동에 대한 진심을 전해받을 수 있었습니다. 해가 작렬하기 전, 대기는 아직은 밤의 서늘함을 품고 있습니다. 새벽운동 이 맛에 하는군요.      


평상시의 속도보다 천천히 뛰느라 운동은 덜 되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ME타임을 충분히 누리고 왔습니다. 내가 혼자일 때 이렇게 풍성히 느끼고 감사를 느낍니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집에 아직 잠에 빠져 있는 두 아이들을 보며, 오늘의 에너지가 충만된 운동경험을 축적합니다. 자 이제 호랑이보다 무서운 삼시 세 끼를 준비하러 갑니다. 아 그전에 세탁기 빨래를 먼저 시작해야겠군요.. 오늘도 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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