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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Oct 10. 2023

내 한계는 내가 정한다.

30킬로미터 그 까이것 뛰어보니 뛰더라. 


매일같이 뛰는 사람으로 사는 동안 시간제약이 없다면 얼마나 뛸지 궁금해집니다. 삼 년 동안 5천 킬로를 채우는 동안 시간과 피로도와 싸워왔으니까요. 내 몸만 생각하는 편안한 상태라면 과연 얼마를 뛸 수 있을까요? 

그걸 알아보려 lsd(장거리를 천천히 뛰는 러닝 훈련종류)를 뛰기로 합니다.


명절 연휴 느긋한 오후, 긴장된 마음으로 길을 나섭니다. 아무래도 혼자는 두려운 거리 30km를 채우려 합니다. 동반자가 있어요. 러닝 크루에서 만난 기웅페이서 님입니다. 그는 트레일 런과 울트라맨러닝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100km를 밤새 달리는 사람은 현실에서 처음 만났답니다. 연휴 중간의 느즈막 오후에 시작합니다. 저는 아직 하프 21km만 해보았으니까요. 오늘 잠원에서 시작된 러닝은 광진교. 반포대교 동호대교. 잠실철교. 올림픽 대교를 지나 천호대교를 넘어 강북의 한강변을 돌아 회기 하기로 합니다.

5시에 러닝을 시작합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은 내가 낙오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저 외의 분들은 이미  풀코스러닝을 다회완주한 사람들이라 그들에게 민폐만 끼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달리기를 하는 중 옆의 페이서들이 자꾸 내 안부를 묻습니다. 한 5킬로미터를 뛸 때까지만 해도 뭐. 할만합니다. 아니 10여 킬로를 뛰어왔던 스스로를 믿고 있습니다. 중년의 자랑은 누가 뭐래도 예측가능한 삶의 범주안에서 꾸준함을 보여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46살에 들어왔으니 어느덧 저도 인생의 중반, 중년이 들어온 게죠. 


같이 뛰던 페이서들이 달리기 초반 제 나이를 듣고 놀랐었죠. 이 나이에 뛰는 사람이 특히 유부녀가 크루에 들어오는 게 쉽지 않았나 봅니다. 특히 제가 고3엄마라는 특이점도 인상 깊었나 봅니다. 고백컨데, 제가 우리 크루 중 나이 많은 탑 3에 들어갑니다. 나이 또한 그들과 나의 나이차이보다 그들과 딸아이가 더 가깝죠. 즉 그들은 MZ세대들이랍니다. 나는 그전 세대 X 세대고요. 여기서 제 대학 학번의 나이를 만나기도 했는걸요. 저는 노래방에 가면 가사만 열심히 따라 부르는 세대인데 이들은 댄스도 같이 겸하더군요. 안무까지 외운다니... 정말 세상이 변했습니다. 


달리는 내내 사실 신이 났습니다. 30km를 달리는데 길이 달려도 달려도 끝이 안나는 겁니다. 그리고 달릴수록 힘이 빠져야 하는데 재미가 붙습니다. 그러다 보니 달려도 달려도 끝이 안 나는데 너무너무 신이 납니다. 일단 밖의 풍경이 너무 좋았고, 미세 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은 대기질은 노을도 드라마틱하게 그려주었습니다.  잠시 고개만 들면 멋진 한강뷰가 펼쳐지는데, 뛰면서 보는 그 풍광은 내 숨소리와 함께 기록됩니다. 결국  단거리를 뛰던 평상시 속도로 완주하는 데 성공합니다. 30킬로미터를 6분 12초 페이스로 완주했답니다. 


그날 제가 달린 길은 한강변입니다. 갈 때 한강이남 올림픽대로를 달려가 한강을 잠원에서 광진대교까지 달려갔습니다. 이어 광진교에서 한강 이북으로 해서 다시 잠수대교까지 강북변을 돌아갑니다. 잠수대교는 우리 크루가 즐겨가는 러닝코스인데, 그 다리를 다시 건너 회차지점으로 돌아가려니 왠지 울컥한 마음이 들더군요. 

집을 나갔다 너무 멀리 헤매었던 걸음이 다시 집을 향한 기분이랄까요. 내가 30킬로미터를 뛰었다는 마음과 늘 다시 달리던 길로 돌아가는 마음이 겹쳐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걸 느끼게 해 주었답니다. 


나는 이제 30킬로 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한계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도 내가 스스로 규정지었던 나를 돌아봅니다. 그게 나 자신을 끝까지 달리게 했나 봅니다. 주행을 다 마치고 나니 웃음이 계속해서 났습니다. 아.. 안도감과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깨친 뒤의 성취감.. 이걸 그 어떤 것에 비할까요? 돈 들여하는 그 어떤 행동보다, 그리고 드디어 목표에 도달했다는 마음덕에 풍요로움을 느낍니다. 


나는 이제 부자입니다. 내 걸음으로 서울의 반바퀴를 도는 그런 사람입니다. 같이 뛰던 젊은 페이서들에게 뒤지지 않는,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뛰던 러너 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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