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 자기결정 (페터 비에리)
22-15. 자기결정 - 페터 비에리
[22년 9월 3일 ~ 22년 9월 13일]
# 01
어떠한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면서도, 동시에 아주 강력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아주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 그런 질문들이 있다.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 중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주체적인 삶과 남에게 휘둘리는 삶 중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가요?'
'가치 있는 삶과 무가치한 삶 중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가요?'
이러한 질문들은 답이 정해져 있기에 질문으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이 불행하고 남에게 휘둘리기만 하며 무가치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대답이 똑같기에 질문 다운 질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질문이 강력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 질문이 단순히 대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한 대답에서 그치지 않을 때 이 질문은 아주 강력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나는 정말로 행복하고 주체적이며 가치 있는 삶을 원하는 가? 나에게 행복하고 주체적이며 가치 있는 삶은 어떤 것인가? 나는 행복하고 주체적이며 가치 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러한 질문으로 이어질 때, 그 고민의 시간과 대답들은 삶에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거대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 02
페터 비에리의 '자기결정'이라는 책은 당신에게 아주 당연하지만 아주 어려운 바로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답이 '자기결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페터 비에리는 행복하고 주체적이며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제목이 '자기결정'인 것에 비해서 결정을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페터 비에리도 아마 '자기결정을 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듯 하다. 말 그대로 스스로 결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페터 비에리는 '자기 자신'이라는 부분에 주목한 듯 하다. 책의 대부분을 할애해서 페터 비에리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인식'이다.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그것이야 말로 자기 결정의 시작이며 모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자기 결정은 아주 쉬운 것이며, 행복하고 주체적이며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더욱 더 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페터 비에리는 자기 인식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과 생각들을 소개하고 있다. 몇몇 이야기는 동의가 되고, 또 어떤 이야기는 선뜻 동의하지는 못하기도 했다. 페터 비에리의 생각과 사고는 책을 통해서 여러분이 직접 만나보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이 책의 리뷰에서 내가 이야기 하려는 것은, 페터 비에리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하고 반발하기도 하고 새롭게 배우고 깨닫기도 했던 것들을 모아서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3가지 방법'을 정리해 보려 한다.
# 03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 줄여서 '자기인식'을 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타인을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서 도리어 타인을 바라본다는 것이 어쩌면 모순적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타인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자기인식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 이유는 '타인'이 있기에 비로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은 바꾸어 말하면 '내가 아닌 사람'이다. '나'를 유일한 존재로 구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인'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타인을 그저 무시하기만 한다면 '나'를 발견할 수도 없으며, 타인을 나와 동일시 할 때에도 '나'를 발견할 수 없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학습된 경험에 의해서만 행동하게 되며, 타인에게 지나치게 공감하여 나와 동일시 하는 자는 타인의 바람대로 살아가게 된다. 양쪽 모두 '자기 자신'의 삶을 없는 것이다.
타인을 타인으로서 직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과는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부터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들의 생각, 감정, 취향, 소망, 꿈. 이 모든 것들을 그들만의 것으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것들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 실제 그들의 것들이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의 생각, 감정, 취향, 소망, 꿈 모든 것들이 뚜렷하게 선명해질 것이다. 타인의 것과는 다른 나만의 것 말이다.
# 04
자기인식을 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인식의 가장 큰 방해요소는 바로 '회피'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내면의 추악함, 올바르지 못한 생각, 못난 마음. 이러한 것들이 내 안에 존재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러한 것들을 발견할까 두려워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거나, 어쩌다 마주치는 순간, 나 자신을 직시하기를 포기하고 회피해버린다.
가장 최악의 회피 형태는 '정신승리'이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다들 나만큼 나쁘잖아?' '사람은 원래 다 이래' 이러한 모습은 외면보다도 더 최악의 회피이다. 이러한 생각은 자신의 약함을 마주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무서움에 압도되어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어둠 속을 달려가는 것과 같다. 아주 위험한 것이다.
자기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이 필요하다. 신에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그 어떤 종교에서 요구하는 믿음보다도 어려운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믿는 것보다 신을 믿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믿어야만 한다. 그 어떤 '나'를 발견하더라도, 설령 그 모습이 삐뚤어지고 못나고 추악한 모습일지언정, 그것마저도 이겨내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나는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어둠 속에서도 눈을 뜨게 해주고 빛을 비추어 줄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회피를 하지 않고 나 자신을 직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주 작은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 당장 오늘 밤, 종이 하나를 펴서 누구에게라도 말했다가는 비난받을 것 같은 나의 솔직한 생각이나, 꽁꽁 감추어둔 나의 단점 하나를 적어보자.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나쁜 것인지 곰곰이 고민해 보자. 그리고 결정하자. 그것을 버릴 것인지, 아니면 당당해질 것인지.
한 가지만 기억하자. 자신을 직시하기를 회피하는 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할 수 없다.
# 05
자기인식을 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은, 글을 읽고 쓰는 것이다. 이것은 페터 비에리가 책에서만 3번에 걸쳐 강조한 것이며, 나 또한 경험을 통해 강하게 동의하는 부분이다. 글을 읽는 다는 것은 타인의 삶이나 생각을 나의 삶이나 생각과 견주어보는 것이다. 소설이라면 작가가 그려낸 등장인물의 삶과 말을 통해서, 인문학이나 비문학 책이라면 글 속에 드러난 작가의 가치관을 통해서, 그것들을 나의 것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 방법인 '타인'을 인식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타인의 글을 그들만의 것이라고 인식하며, 그것과 구분된 '나만의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글을 아무런 여과 없이 나 자신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 글과 같은 나를 발견하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 자신을 더욱 더 구체화 시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언어로써 다시 한번 더 구체화 시키는 과정이 된다. 나의 삶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을 언어를 통해서 나열하고, 더욱 더 선명하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나와, 글로 써 내려간 나는 전구와 태양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 선명함의 차이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또한 글로 쓰는 것의 장점은, 다시 그 글을 읽을 때 더욱 더 커진다. 내가 쓴 글을 내가 읽는 것이야 말로 자기인식의 가장 강렬한 행위이다.
이 방법을 가장 쉽게 하는 것이 바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독서리뷰'이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그 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쓰는 것 만큼 강렬한 자기인식 행위는 없다.
# 06
자기 인식의 3가지 방법을 소개해 보았다. 3가지 다 너무 거창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단순한 방법이다. 재밌는 것은 이 3가지 방법 모두 '숙련도의 차이' 즉 잘하거나 못한다의 수준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 차이가 의미를 퇴색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잘하던 못하던 상관 없이, 이 행동들을 한다는 것 만으로도 자기 인식을 하는 데에는 동일한 효과를 낸다. 즉 '잘한다'와 '못한다'가 아니라, '한다'와 '안 한다'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 조심스레 권하는 바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3가지 방법을 당신의 삶에 조금씩 녹여보기를 말이다. 당신이 첫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당신의 삶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가치 있거나, 가치 있어지는 중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