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양의 독서리뷰 / 소란스러운 세상 속 둘만을 위한 책 (데비 텅)
22-16. 데비 텅 시리즈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책, 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 소란스러운 세상 속 둘만을 위한 책)
[22년 9월 14일 ~ 22년 9월 17일]
# 01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했지만, 이제는 옛날 가수가 되어버린 GOD의 수 많은 명곡 중에는 '반대가 끌리는 이유'라는 노래가 있다. 서로 다르고 모든 게 완전히 반대이지만 함께 하면 서로 즐겁고 끌린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그 노랫말처럼 우리는 나와 다른 모습을 지닌 사람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끌리게 된다. 그렇게 그 사람이 가진 나와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연인과 다투는 이유 중 많은 부분 또한 나와 다른 점 때문이다. 그 사람의 언행을 이해할 수가 없고 나와 다른 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다름이 어느 순간 불편함과 힘듦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다름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과,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지하는 것에서만 그친다면 그 다름은 언젠가 불화의 씨앗이 될 수 밖에 없다.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조화로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정말로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
# 02
데비 텅의 책 '소란스러운 세상 속 둘만을 위한 책'을 고른 이유는, 책 소개 및 작가 소개에 쓰여있는 데비 텅이라는 사람이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는 정 반대의 성향을 지닌 나의 연인과 너무 닮은 작가의 에세이기 때문에 선택했었다.
MBTI 애서 I 성향이 압도적일 정도로 엄청난 내항인 인 데비 텅이, 반대로 E 성향이 강한 반려인 제이슨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를 카툰에세이로 그려낸 책. 이 책 소개가 마치 나와 나의 연인의 모습을 묘사하는 듯 해서 홀린 듯이 선택한 책이었다.
나와 나의 연인은 몇 가지의 커다란 공통점과, 수만 가지의 사소한 다름을 가지고 있다. 서로가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같지만, 그 몇 가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성향이 정 반대이다. 지금까지는 그 다름이 오히려 매력적이고 유쾌했으며 배움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다름으로 인해 부딫히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작게나마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 03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사실 읽는 내내 무언가를 얻어내고 배웠다기 보다는 그저 재밌고 유쾌한 책이었다.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들 속에서 연인의 모습을 연상하고 떠올리며 웃음 짓곤 했다. 정말로 나의 연인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 작가였다. 내용이 썩 맘에 들어 작가의 전 작품인 '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과 '딱 하나만 고르라면, 책' 이 두 권을 마저 찾아 읽었다. 그리고 그 세 권을 새로 사서 연인에게도 선물해 주었다.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지만, 나의 연인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이 작가의 책들을 좋아했다. 나는 그저 '아, 그럴 수도 있구나.' '이렇게도 생각하는 구나' '이렇게 해 주면 더 좋아하겠다.' 정도에서 그쳤다면, 나의 연인은 이 책을 읽으며 작가에게 깊이 공감했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듯 했다. 작가에게 위로를 받고, 동시에 작가를 위로하고 있었다. 나의 연인은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더 성장한 것 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와 연인의 '다름'이 더 크게 느껴졌다. 같은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으면서도 전혀 다른 것을 얻고 전혀 다른 감상을 느끼는 것. 같은 것을 보면서도 내가 보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것. 그 분명한 다름이 아주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 다름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게 되었다. 책을 통해 찾고자 했던 것을, 책이 아니라 그 책을 읽는 연인을 보며 찾게 된 것이다.
# 04
많은 한국인들이 종종 잘못 사용하는 개념이 있는데 그게 바로 '다름'과 '틀림'이다. '그는 나와 달라' 를 '그는 나와 틀려' 라고 하는 것이 잘못된 사용이라는 것은, 맞춤법이나 언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법적인 사용법은 잘 알고 있음에도, 개념적으로는 여전히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다름이 다툼이 되는 것은,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쉽게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직접적으로 '저들은 틀렸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내면을 잘 들여다보면,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며 내가 더 옳다 고 생각 했던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혹은 그들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다거나 조금 심하게는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사람을 그저 단순히 '다른 것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다름은 두 가지 방식으로 다툼이 된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 '나'를 '틀린 것 처럼'대할 때, 그리고 '내'가 '나와는 다른 사람'을 '틀린 것 처럼'대할 때.
# 05
내가 연인의 다름이 조금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나의 연인이 '잘못되지 않았다'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조금이라도 그 다름이 '틀렸다'라고 느껴진 순간, 나의 태도는 연인을 서운하게 만들었었고, 다툼이 될 뻔한 적도 있었다. 그 다툼이 커지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연인의 솔직하고 빠른 표현 덕분이었다. 그 덕에 나는 연인에 대한 나의 신뢰를 다시금 떠올리고 반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지만 그 고민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다름 마저도 좋아지는 것이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이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는 한, 이 사람의 다름은 나에게 영원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 06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에게 만큼은 그 사람이 틀리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도 사람이니까 분명 무엇인가 잘못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만큼은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고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나에게 만큼은 틀려도 괜찮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야 말로 다름이 행복이 될 수 있는 비결이었다.
누군가는 진정 사랑하기에 틀린 것을 틀렸다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고 고쳐주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혹여나 당신의 연인이 그것을 바란다면 그것 또한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좀 더 믿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 사람은 어린 아이가 아니니까. 자신의 잘못된 부분은 충분히 깨닫고 이겨낼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만큼은 그 사람에게 틀리지 않았다고 틀려도 괜찮다고. 나에게는 너는 항상 옳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또한 사랑이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