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 22-7
22-7.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22년 1월 27일 ~ 2월 10일]
# 01
내가 무척이나 혐오하고, 세상에서 부디 사라졌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관용어가 두 개가 있으니, 하나는 '원래 그래', 그리고 또 하나는 '그냥 그런 거야'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언제나 나를 화나게 했고, 또 실망하게 만들었으며, 마음이 터질 듯이 답답하게끔 했던 말이 바로 저 말들이었다.
수많은 책과 미디어 매체가 하나같이 비판하는 것들이 있다. '대한민국 교육은 질문이 사라진 교육'이라고. 그리고 이 사회 또한 질문을 가로막고 있다고. 이제는 그 말조차도 뻔해졌을 정도로 다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질문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스승'이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라고. 그리고 그 질문을 어른들에게 하면 어른들은 말한다. '그건 원래 그래'.... 젠장..
입시교육에 몸담으며, 그 치열한 전쟁 통을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요즘 최근 입시 키워드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자기주도적 학습'과 '창의적 생각'이다. 이 두 가지가 가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선별하겠노라 말하지만, 안타깝게도 학생들은 '자기주도적 학습'을 하는 방법을 '교육'받고, '창의적인 답변'을 외우곤 한다. 그 현장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이게 무슨 '자기주도적 학습'이며 '창의적인 생각'이냐는 생각만이 든다.
결국 변한건 없다.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자기 주도성'과 '창의적임' 밖에 모른다. 학생들에게는 교과 과정에 없는 질문은 허락되지 않는다. 빌어먹을 입시제도 덕분에, 학생들 스스로가 그런 질문을 무가치하게 생각한다. 학교와 학원에는 '스승'은 사라졌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입시전문가'밖에 남지 않았다.
# 02
'이가 왜 빠져요?'. 내가 기억하는 처음으로 무시당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나는 '요정님이 새로운 이빨을 주려고 그러는 거야'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무려 초등학교 3~4학년의 남학생에게 말이다. 백과사전에서도 찾지 못한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붙잡고 물어보았다. 어른들 중 누구도 '이가 왜 빠지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고,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고자 했다. '원래 그런 거야' '뭘 그런 걸 물어' '그런 거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크면 알게 될 거야'.
내가 들었던 가장 그럴듯한 대답은 어머니였다. 첫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나중에는 따로 찾아봐주셨는지 '새로운 치아가 나려면 원래 있던 이가 빠져야 해'라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어린 나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지. '그럼 이빨은 계속 나와요?' '왜 두 번밖에 안 나와요?' '안 빠지고 계속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는 나에게 대답 대신 나에게 생물학 백과사전을 안겨주셨다. 집에는 분야별 백과사전이 빼곡했다.
'이가 왜 빠지는지'에 대한 것은 이 글을 읽는 이가 직접 찾는 즐거움을 위해 남겨두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질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이가 왜 빠지는지'라는 질문을 쓸모없는 것 취급한다. 아마 내가 '왜 사람은 태어나서 죽어요?'라고 물어봤어도 대답은 똑같았을거다. 결국 나는 백과사전으로부터 '세포노화의 과정과 이유'를 배우는 수밖에 없었고, 철학 책 속의 고대 철학자들로부터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책을 제외하고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이가 없었다.
대체 왜 우리는 특정 질문들을 유독 무가치하게 여기는 가?
우리는 왜 스승을 찾을 수가 없는가?
# 03
이어령에 대해서 얼마나 아느냐고 묻는다면 '초대 문화부 장관, 작가, 오랜 시간 비 신앙인이었으나 아주 나중에 기독교인이 된 지성인. 이 정도가 다 일 것 같다. 다만 그의 저서였던 '지성에서 영성으로' 그리고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재밌게 읽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이 책의 콘셉트가 참으로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늙은 노 스승을 인터뷰하는 제자. 흥미로웠다. 스승이 사라진 시대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스승이라 불리는 이가 남아있단 말인가.
이 책은 이어령을 스승으로 생각하는 한 인터뷰어가 삶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이어령에게 마지막 인터뷰를 하는 내용이다. 이어령의 저서가 아니라 작가인 김지수의 시선에서 쓰인 책이며, 몇 주간 이어지는 긴 인터뷰를 '마지막 수업'이라는 형태로 써낸 책이다. 철학사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관계의 철학자 두 명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그리고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들을 책으로 펴냈던 '플라톤'의 모습과 이 작가가 쓴 이 책의 구도가 비슷했다. 구도가 흥미로운 만큼 그 내용도 꽤나 흥미로웠다.
# 04
"간곡히 당부하네만, 그대에게 오는 모든 지식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지 말게나"
"야단맞을까 두려워 딴소리 안 하고 고분고분 둥글둥글 살면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고 살게 돼. 안타까운 일이네"
책 속에서 이어령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문을 품으라 가르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또는 그 결과 빚어낸 그 지성의 결과물을 내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에 착실하게 매료되어 간 것이 사실이다. 때로는 화려한 수사학에 불과한 허울뿐인 이야기 같기도 하고, 때로는 깊이 있는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의 말 그대로 이어령의 모든 사상을 '만장일치로 내 안으로 통과'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럼에도 그 생각의 일부가 지난 내 삶을 긍정해 주었고, 또 앞으로의 길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스승이 사라진 이 시대에 스승이라고 불릴만한 사람이었다. 생각에 끊임이 없었고, 모든 질문은 그에게는 대화의 소재였다. 아마 내가 그의 제자였다면 고분고분 말을 듣는 제자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사건건 그의 말에 딴지를 걸고, 반론을 펼치며, 바락바락 덤벼들었겠지. 그리고 때때로 감화되기도 하고, 긍정하기도 하며, 대화를 마쳤을 것이다. 나의 사상은 그와는 조금은 다를 수도 있지만, 확신컨대 그는 나와의 대화를 즐거워했을 것이다. 이어령은 그런 사람이니까.
나는 스승의 본질을 그곳에서 찾는다. 제자의 모든 의문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 제자의 모든 반론을 기꺼이 즐기는 사람. 그 반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치고받으며 더 높은 지성을 함께 이루어가는 사람.
# 05
스승의 본질이 그러하다면, 제자의 본질은 스승에게 반기를 품는 것이다. 스승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고, 반론을 펼치며, 기꺼이 대들 준비가 되어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자의 본질이며, 한국 사회에서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 제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가 허락하던 말던 우리의 삶의 태도는 그러해야만 한다. 설령 스승이 없더라도, 우리는 세상의 진리라고 말하는 것들에게 반기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의 당연함에 의문을 품는 것, 그 어느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아를 형성하는 첫걸음이다. 무엇인가를 의심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그저 무언가의 복제품에 불과하게 된다. 의문을 품고, 생각을 하고, 반론을 펼치고,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유일한 나'로 만들어준다.
스승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은 정말 안타깝지만, 서점에만 가면 이미 검증된 스승이 널리고 늘렸다. 시대의 수많은 지성인들이, 인문학자들이, 철학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온전한 제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가. 시대의 천재라고 불리던 그들의 논리를 깨부수기 위해 덤벼드는 한 마리의 햇병아리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비로소 '나만의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된 것이다.
[책 갈피 한 페이지
- 125p. "나는 집단주의, 국가주의를 경멸하네. 군중의 한 사람으로 끼어있는 게 싫었다네." / 무리 속에 숨어서 안전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한 번도 없으셨어요?" / "싫어. 보들레르도 그랬잖아. '주여, 내가 저들과 똑같은 숫자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쓰게 하소서." / "아름다운 오만이군요!" / "오만이 아니야. 인간은 다 그래야 하는 거야." / '내가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떼'로 사는 거라네. 떼 지어 몰려다니는 거지." / "내가 유일한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끌어안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 거야.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남을 끌어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