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이 넓어지는 순간

열한계단 (채사장) / 22-6 / 이고양의 독서리뷰

by 이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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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열한 계단 - 채사장

[22년 01월 12일 ~ 01월 15일]


# 01


금수저와 흙수저.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전체를 휩쓴 이 신조어는 어린 시절의 가정 형편이 우리의 삶에 어쩔 수 없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씁쓸한 용어다. 하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에 영향을 주는 것이 꼭 가정 형편만은 아닐 것이다. 가정 형편은 흙수저일 지언정 부모님의 인성과 가정교육만큼은 금수저인 집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부유한 집안의 가정교육이 흙수저일지도 모른다.


만약 독서 환경에도 금수저와 흙수저를 매긴다면, 나의 환경은 감사하게도 금수저를 뛰어넘어 다이아수저 정도는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모습 또한 책을 읽는 모습이었고, 그만큼 책을 읽는 것이 밥 먹고 잠자는 것 다음으로 당연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으로부터 나의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도록 많은 질문을 해주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났다는 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멋진 교육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책과 함께 자라났고 어른이 되었다. 평범하게 게임도 좋아하고 음악도 즐겨들으며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라났지만, 그 모든 세월 속에서 책을 멀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책을 읽고 사유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다독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말 처럼, 나의 모든 독서가 엄청난 의미를 가지느냐 물으면 그 또한 자신할 수 없다.



# 02


대체 어떤 독서가 의미가 있는 독서일까? 물론 넓은 의미로 볼 때 의미가 없는 독서는 없을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한 지인은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위안을 얻었고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독서의 의미를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책이 대단하거나, 혹은 그 책을 읽은 내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어야만이 의미 있는 독서는 아닐 것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그 자체로도 분명히 나에게 크고 작은 유의미한 흔적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논리를 잠시 떠나서 잠시 현실적으로 바라보자면, 그 모든 의미에도 분명 차이는 존재할 것이다.


'열한 계단'의 저자 채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익숙한 책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불편한 책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 것이다. 익숙한 세계의 깊이를 더하는 방법과 불편한 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방법' 채사장은 첫 번째 종류의 독서가 무의미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 또한 의미가 있으며 분명 독서의 한 갈래라 말한다. 하지만 두 번째 종류의 독서가 가져다주는 가치가 너무나 크다고 이야기한다.



# 03


'불편한 지식이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저자인 채사장의 평소 지론에 매우 긍정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있을까. 채사장의 다른 책 또한 모두 읽어보았고, 그의 방송이나 강연도 종종 듣곤 한다. 내가 가장 매료되었던 그 말을 캐치프레이즈로 한 이 책 또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처음 읽었을 때도 그러했고, 다시 읽는 지금도 변함없는 것은 이 책은 23p까지만 읽어도 충분한 책이라는 것이다.


채사장이 말하는 계단은 진짜 인생의 레벨이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 머릿속 세계. 내가 인식하는 세상의 넓이. 그 세상의 경계선이 깨어지고 넓어지는 경험. 그런 경험은 내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거나 피해왔던,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의 순간들을 굳이 계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헤겔의 변증법을 사랑해 마지않는 채사장만의 표현방식인 것이다.


하지만 책이 누구보다 익숙한 나에게 불편한 책은 별로 없다.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싫어하는 책'은 있지만, 그저 나의 생각을 뒤흔들거나 내가 무지한 분야의 책은 말 그대로 내가 모르는 분야의 책일 뿐이다. 나는 그러한 책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 나는 그래서 굳이 그것을 계단이라 말하기보다는 '세상의 확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방식대로의 표현을 하자면 '계단'보다는 '나이테'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아무튼 이러한 내용이 23p까지의 내용. 24p부터 펼쳐지는 열한 권의 책들과 열한 개의 계단은 모두 저자인 채사장의 이야기이다. 읽으며 그 지식을 깨우치고, 그 사고방식에 감탄할지언정 나의 삶과는 별개의 이야기. 그렇기에 이 책을 빠르게 다 읽은 후 내가 1주일간 몰두한 것은 나의 계단, 아니 나의 나이테들은 과연 무엇인가였다. 지금까지의 독서 중 나를 흔들어 깨웠던, 나의 생각을 크게 넓혀주었던 책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04


1주일간 고민한 끝에, 내 인생에서 나이테라고 부를만한 책 10권을 찾아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삼국지와 해리포터, 성경, 국화꽃 향기, 코스모스, 순수이성비판, 어린왕자와 나의라임오렌지나무, 지대넓얕,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정한 신뢰. 이 책들을 경계선 삼아서 나의 세상은 8번의 큰 확장을 맞이했고, 그렇게 나이테처럼 내 인생의 흔적으로 남았다.


삼국지와 해리포터는 나에게 '세계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나의 완성된 세계관이 가지는 엄청난 매력을 나에게 보여주었고, '나의 세계관'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주었다.


성경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종교'나 '신'이 아니라 '옳음'이었다. '옳은 것' 과 '잘못된 것'을 이성을 통해서 구분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도덕윤리와 가치관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독교를 떠나 무교임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성경을 찾는 것은 나의 가치관의 뿌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국화꽃 향기는 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어설픈 풋사랑에 상처받고 슬퍼하던 나는 이 책을 읽고,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사랑하기를 바랐고, 사랑받기를 꿈꾸게 되었다.


코스모스를 통해서 나는 '지식'의 세계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기점으로 나의 독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미친 듯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이상'의 세계를 알았고, 이어지는 실천이성비판을 통해 '자유'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20대 중반의 나를 만들어낸 가장 큰 영향력이 이 책들로부터 나온 것 같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나는 '철학적 사유'와 '신념'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왕자와 나의라임오렌지나무는 그렇게 딱딱해진 나에게 '사람'을 알려주었다. 이성의 영역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진리를 대하는 것과 '사람'을 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접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이 책들로부터 시작해 아직까지도 배우고 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나는 주변에 많은 좋은 사람들을 두게 되었다.


지대넓얕은 이만하면 더 확장할 곳이 있을까 생각했던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고, 생각의 확장에는 끝이 없음을 알려주었다. 기존의 알던 것들조차도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그 생각을 하는 나 또한 끝없이 성장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 책은 계기가 되었을 뿐 아직까지도 나의 세상은 끝없이 확장 중이다.


다정한 신뢰는 가장 최근의 변화이며 아직 규정지을 수 없는 변화이다. 다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배웠다고 생각했던 '사랑'의 영역이 또 한 번 더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를 나의 마음에 둔다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 책을 통해, 그리고 나의 마음에 자리 잡은 한 사람을 통해 깊이 있게 배우고 있다.



# 05


나의 나이테와도 같은 책들을 선별하는 1주일간의 시간은 참으로 즐거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나의 내면에 세워진 나의 세상을 순회하는 시간이었다. 이미 철저히 이해하고 믿었던 나라는 사람을 또 다른 시각에서 다시 한번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이해하는 것은 아마 죽는 순간까지도 끝이 없을 것 같다.


아마 앞으로 나의 나이테는 또 생겨날 것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너무나 필요한 순간에 너무나 운명처럼 마주치는 책을 통해 생겨날 것이다. 그 순간을 기다리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고 난 독자의 가장 완벽한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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