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7 (찬호께이) / 22-3 / 이고양의 독서리뷰
22-3. 13.67 - 찬호께이
[22년 01월 02일 ~ 01월 12일]
# 01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정의로운가? 아니면 정의롭지 못한가? 이 사회 속에 살아가는 '나'라는 개인은 과연 정의로운가? 혹은 정의롭지 못한가? 정의가 옳은 가치라는 것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지만, 정작 그 정의를 어떻게 지켜나가는 것인지. 무엇이 정녕 정의라 부를 만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한때 대한민국에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이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 또한 이러한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리라. 우리는 정의롭고 싶지만, 무엇이 정의인지 잘 모른다. 마치 행복하고 싶지만 무엇이 행복인지 잘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중요하고 좋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란 대게 그런 식이다. 갖고 싶지만, 그게 무엇인지조차 잘 모른다. '정의란 무엇인가' 책이 대한민국에서만 무려 200만 부라는 판매 실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정의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뉴스를 틀면 감탄이 나오는 소식보다, 탄식이 나오는 소식이 훨씬 더 많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이야기보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나온다. 정의라는 것이 정녕 이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긴 한 건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무렵, 나는 정의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었다.
# 02
정의는 두 가지 모습을 띈다. 하나는 사회적 정의이다. 모든 사람들의 도덕관념과 양심, 그리고 법률의 지엄함으로 완성되는 정의이다. 이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벌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 선한 행동은 그 가치가 인정받으리라는 믿음. 아주 크고 강력해 보이는 이 사회적 정의는 사실은 실체가 없는 허구에 가깝다. 사회적 정의의 기반은 '이기심은 죄악이다'말하는 공리주의적 사회 시스템과, 도덕관념을 어기는 것은 법적 처벌 외에도 사회적 처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데서 나오는 공포심에 있다. 즉, 나의 이기심을 들키지 않고 사회적 처벌을 회피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이 사회적 정의이다.
두 번째 모습은 개인적 정의이다. 보편적 도덕관념과 법률, 즉 사회적 정의보다는 개인의 신념에 따른 옳고 그름을 관철해나가는 것이다. 개인적 정의가 사회적 정의와 부딪힐 때에는 사회적 정의는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사회적 정의가 가치 없다 여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더 우선인지를 아는 것뿐이다. 모든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이 개인적 정의는 사회의 극 소수에게서 발현되며, 때때로 그 방향성이 잘못되어서 선이 아니라 악을 행하기도 한다. 매우 드물며, 매우 위험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 무엇보다 강력하고 순수한 정의가 되기도 한다.
나는 세상을 정의롭게 만드는 것은 소수의 올바른 개인적 정의와 이를 따라가는 다수의 사회적 정의라고 생각했다. 때때로 사회적 정의가 특정 개인적 정의를 짓누르는 때도 있지만, 정말 올바른 개인적 정의는 시간이 지나면 인정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의 지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알아볼 것이라고 말이다. 개인적 정의가 올바를수록,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점점 더 많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개인적 정의로 가득 찬 한 사람의 삶을 발견했으니, 바로 '13.67'이라는 책 속이었다.
# 03
찬호께이의 소설 13.67을 처음 보게 된 것은, 대전의 작은 개인서점에서였다. 흑백 표지의 펜으로 그린 듯한 그림 표지가 매력적이기도 했고 두꺼운 책이 주는 묘한 도전의식을 받기도 했다. 추리소설을 마지막으로 읽은지가 언제였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군대에서 막 전역했을 시절 읽었던 '악의'가 마지막인듯싶었다. 왠지 모를 끌림에 13.67을 집어 들었다.
그전까지는 찬호께이가 어떤 작가인지도 몰랐고, 그날 서점에서 이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지금은, 당분간은 추리소설 작가하면 찬호께이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지금까지 읽은 추리 소설 중 가장 빠져들어서 읽었던 소설이었다. 가장 매력적이었고 가장 강렬했던 추리소설이었다.
첫날 책을 잡았을 때에는 꽤 피곤한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채 5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눈꺼풀이 감겼었다. 그 첫인상이 남아서인지, 그 다음날 책을 다시 폈을 때 쉽게 집중이 안 되는 걸 느꼈었다. 처음 읽어보는 홍콩 소설이라 이름도 낯설고.. 그런데 50페이지를 넘어가는 순간. 어느새 소설 내용에 빠져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겨우 50페이지. 부정적인 독자를 잡아 끄는 것마저도 찬호께이는 50페이지면 충분했던 것이다.
# 04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문학 속에는 언제나 그 시대의 문화가 은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그 배경 문화를 알고 읽을 때 더욱더 재미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 문화가 은근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진하게 묻어 나올 때에는 그 말이 정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찬호께이 작가는 1367을 통해 보여주었다. 1367을 이해하기 위해서 홍콩 문화를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홍콩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1367을 읽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을 정도다.
2013년부터 1967년까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흘러가며, 홍콩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6개의 사건들. 어떤 사건들은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고, 어떤 사건에서는 그저 배경으로 나오기도 한다. 첫 번째 챕터에서는 주인공의 죽음으로 사건이 해결된다. 그리고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주인공은 점점 젊어지고 마지막 6번째 챕터에서는 주인공이 처음 경찰이 되었던 순간의 첫 사건을 그려내고 있다.
생명은 존귀한 것이며, 범죄자는 처벌받아 마땅하다는 개인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았던 주인공의 삶을 거꾸로 따라 올라가는 것은 독자를 굉장히 매료시켰다. 앞선 챕터에서 보여주었던 주인공의 모습에 대한 설명이 다음 챕터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개연성을 설명한다. 복선을 깔고 그것을 회수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먼저 보여주고 그 발단이 된 과거를 보여주는 구성은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어? 이거.. 아까 그건가?'라는 생각을 몇 번씩이나 했던 것 같다. 매 챕터마다 이전 챕터들과의 연결고리가 있다. 사소한 듯 보였던 어떤 연결고리는 아주 중요한 핵심 요소이기도 하고, 굉장히 의미심장해 보이던 어떤 연결고리는 아주 사소한 요소로 지나쳐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6장의 가장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 이 책 전체를 묶어주는 거대한 연결고리를 마주하게 된다. 개인적 정의로 가득 차있던 주인공의 인생을 관통하며 시작과 끝을 양쪽 모두에 존재하는 거대한 모순이 충격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 이상의 스포일러는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만두도록 하겠다.
# 05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그 충격적인 반전과 매력적인 이야기가 가져다준 흥분감을 잠시 걷어낸 뒤, 그 일시적인 즐거움을 제외하고 나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를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나의 개인적 정의는 무엇인가' 단순히 말로 풀어내라고 하면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주인공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니 말로 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행동인지를 깨닫게 된다. 2챕터의 마지막 구절이자, 내가 손꼽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 '그는 정의가 입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이 문장처럼 나의 정의 또한 입으로, 혹은 글로써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