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기장은 항상 책상 위에 있었지

보라고 쓰는 일기 [23.03.15]

by 이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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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방학 숙제 중 가장 재밌었던 것은 일기 쓰기였다. 날짜를 적고, 날씨를 적고, 하루의 이런저런 일들을 적고, 오늘 잘한 일과 반성할 일을 적었던 바로 그 일기장 말이다. 흰 공책 위에 삐뚤빼뚤한 흑연가루가 남아있는 게 뭐가 그리 좋았던지, 번지지 않도록 글씨에 손이 닿지 않게 퍽이나 조심하며 적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늦어도 일기는 꼭 쓰고 잤었다. 그리고 일기장은 언제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단 한 번도 일기장을 숨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말이다.


어머니는 이따금씩 내 일기장을 보시고는 파란색 펜으로 한 두 문장을 남겨주시곤 했다. 놀이공원에 가서 즐거웠던 날의 일기 아래에는 '다음에 또 가자'. 동생이랑 싸운 날의 일기 아래에는 '오빠가 먼저 미안하다고 하면 좋을 텐데'. 모든 날의 일기장에 적혀있지는 않았지만, 그 문장들이 좋아서 일기를 쓰기 전에 혹시 새로 쓰인 문장이 없는지 앞을 넘겨보곤 했다.


방학이 끝나고 나면 이번에는 빨간색 글씨가 남겨지게 된다. 담임선생님이 남겨준 문장들이다. 대부분은 '재밌었겠네요' '잘했어요' 같은 무성의한 말들이지만, 그래도 꽤 자주 '반찬은 골고루 먹어야 해요' '고양이는 할머니를 정말 좋아하나 봐요' 같이 내용과 관련된 말들도 있었다. 가끔은 어머니가 적은 말 옆에 '선생님도 고양이가 오빠답게 사과하면 멋있을 거라 생각해요' 같은 말들을 적어주시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30명가량의 학생들의 모든 일기에 답변을 적는 와중에 그렇게 성의 있는 답글을 적어주신 선생님이 대단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어머니와 선생님의 답글들을 읽는 게 재밌어서 일기를 더 재밌게 쓰고 싶었었다. '일어나서 밥 먹고 친구랑 놀다가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다가 잤다. 참 재미있었다.' 이런 일기에는 별다른 답글을 달아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하루를 설명하는 게 점점 세밀해졌었다. 그냥 있었던 일을 적는 것보다 내가 어떻게 느끼거나 생각했는지를 적으면 답글이 더 잘 적힌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을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점점 내 생각이나 기분, 감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2명의 독자를 두었고, 그 독자들의 댓글을 보며 독자들의 반응을 생각해서 더 재밌는 글을 쓰고 싶어 했었다니. 아직 통신인터넷도 없던 시절의 아날로그 블로그나 다름없었다. 그 어린 시절에도 이미 나는 남들이 내 글을 읽는 것이 좋았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자라며 지금이 되기까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글을 쓴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다 못해 핸드폰 속 메모장에 적은 글들조차도 누군가가 볼 것을 예상하며 적곤 했다. 괜찮은 글들은 친구들에게 보내고 보여주기까지 했으니까. 나의 일기는 언제나 보여주기 위한 일기였다. 나는 독자들의 관심에 목마른 작가였다.


확실히 나는 글을 쓰는 것 자체도 좋지만, 사실 그 글을 누군가 보아 주는 것이 더 즐겁다. 그냥 내 글이 재밌고 좋다고 말해주는 것도 좋고, 내 글을 읽고 무언가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좋고,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고 말해주면 내 마음이 위로를 받고, 용기가 생겼다고 하면 내가 그 말로부터 용기를 얻고,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말은 내가 글을 쓰는 동기가 되어준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되리란 기대감이 나를 두근거리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조차 말이다.


그런 주제에 조금만 바빠져도 가장 먼저 놓아버리는 것이 글쓰기라니. 한동안 글을 쓰지 않다가 오랜만에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후회다. 이걸 왜 그동안 안 했냐.. 물론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반복한 잘못이지. 글을 놓아버리는 거. 그 말인즉슨, 언제나 결국 다시 글쓰기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놓으려면 일단은 써야 하거든. 후회의 숫자만큼 나는 놓았던 글을 다시 잡았다는 이야기다. 몇 번이고 다시. 왜냐하면. 관심이 목마르거든.


그러니까 이번에는 대놓고 어필하는 글을 써보자. 어린 시절의 기분을 되살려서. 이번에도 역시 독자들의 관심을 기다리며. 보라고 쓰는 일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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