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고 쓰는 일기 [23.03.18]
"글 안 쓰게?'
노트북을 덮어버리고 화장실로 향하는 나를 향해 뒤에서 들려오는 이 한마디는 다시금 글을 쓰게 만들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왜냐하면 저 말이 나의 가장 열성적인 팬이자, 가장 무서운 감독관의 말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글을 쓰게 되는 동기는 확실히 독자가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노트북을 열고 글을 끄적이려고 하다가도 금세 딴짓을 할 정도로 오늘따라 글이 잘 안 써지는 날이긴 하다만.. 아 모르겠다. 오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 싶은 날이 있는 거니까. 그럴 때는 하지 않는 것도 답이다.
세상 모든 일이 꼭 지켜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와의 원만한 합의가 있다면 약속을 철회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와의 약속은 철회하기 가장 쉬운 약속이기도 하다. 물론 세상 어느 명언에는 이런 말도 있었던 것 같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는, 어떠한 약속도 지키지 못한다.'
뭐 대충 이런 말이었겠지. 그런데 나는 이 말이 그냥 멋있어 보이기만 하고 사실이 아닌 말이라고 생각한다. 난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잘 어기는 편이지만, 오히려 남들과의 약속은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키기 위해 좀 더 노력하는 편인걸? 물론 모든 약속을 늘 지키지는 못하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이건 약속은 누구나 한 번쯤 어길 수 있으니 괜찮다고 타협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기에 잘못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저 그 잘못을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고 넘어가느냐, 아니면 그것에 대해서 스스로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변할 수 있느냐 그 차이일 뿐이다.
잠깐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는데, 어쨌든 약속 당사자와의 원만한 합의 없이 제 멋대로 약속을 어겨본 적은 거의 없다. 그건 나 자신과의 약속도 마찬가지. 약속 당사자가 나 자신이라고 해서 그 합의를 대충 하고 넘어간 적은 없다. 오히려 남들보다도 더 철저하게 이유와 변명을 해가며 스스로를 납득시킨 뒤에야 약속을 바꾸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오늘 일기는 정말 두서없는데,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되는대로 쓰다 보니 일기 한편이 뚝딱 나와버리지 않았는가. 원래 생각이란 게 늘 이렇게 두서없는 거지. 물론 일기가 항상 두서없이 쓰이면 안 되겠지만, 오늘 하루쯤은 뭐 어때. 안 쓰는 거 보다야 낫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