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말해주기에는 재수 없을까 봐

보라고 쓰는 일기 [23.03.21]

by 이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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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삶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이다'


나는 이 말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한 말을 그럴듯하게 해서 본질을 흐리는, 딱 그런 부류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모든 순간은 선택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잠을 더 잘지, 일어나서 밥을 먹을지 선택하게 되겠지. 버스를 탈지 택시를 탈지, 점심으로는 뭘 먹을지, 퇴근하고 친구를 만날지 집에 갈지. 그뿐만이랴, 사실 출근을 할지 말지도 선택은 선택이다. 상사를 만나면 인사를 할지 말지도 선택이다. 그저 선택지의 비중이 상당히 많이 기울어져 있을 뿐. 극단적으로 말하면 숨을 쉴지 말지도 선택 아닌가? 나의 모든 행동이 결국 선택인 것인데, 그것을 마치 대단한 비밀인 듯이 말하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이러다가 '삶은 숨을 쉬어야만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말들도 명언이 되겠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선택이 더 좋은 선택일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선택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마냥 옳은 말도 아니다. 이게 다 저 쓸데없는 명언들 때문에 굳어지는 고정관념이다. 스스로를 '선택하는 사람'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마치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건 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선택받는 사람'과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이분법적인 프레임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우리의 모든 행동은 어차피 '선택'이다. 우리 모두가 당연히 '선택하는 사람'일뿐이다.


'선택하는 사람'이 기본값이라면, 기본 이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비밀이 바로 '선택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A와 B가 주어졌을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C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찾아내거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사람 말이다. 모두가 당연하게 떠올리는 선택지가 아니라, 보통은 잘 알지 못하는 숨겨진 선택지들. 혹은 지금껏 그 누구도 떠올리지 않았던 새로운 선택지.


'선택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빛을 발하는 상황은 바로 문제에 부딪힌 상황이다. 문제 상황에 대해 일반적인 선택지들은 하나같이 단점이 너무 크다. 혹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선택지들이 즐비하다. A라는 방법을 선택하면 이게 문제가 되고, B라는 방법을 선택하면 또 저게 문제가 되고. 이렇게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 부딪히면 선택을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기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C라는 방법을 통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이것을 또 다른 말로 '문제해결능력'이라고 말한다.


나는 언제나 그 '새로운 선택지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곤 한다. 그런 나를 보며 한 지인은 '너는 그런 생각을 언제 하는 거야?'라고 물어봤었다. 문제상황이 닥치면 그것 만으로도 삶을 너무 힘들게 만들고, 또 지치게 만드는데, 생각이 굳어져서 주어진 선택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런 생각들을 어떤 시간에 하느냐고 말이다.


사실 그 질문에 답을 해주기로 했는데, 도저히 답을 적기가 어려워서 일단 이렇게 일기장에 적어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라고 할만한 순간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을 위해서 무언가 특별한 시간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지인에게 알려주었던 어떤 선택지에 대한 생각은 출근 전에 밥을 먹다가 생각난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아.. 그 문제 때문에 피곤하네.. 이거 어떻게 좀 해야 하겠는데? 음.. 말로 하면 안 통하겠지? 아 그럼 그렇게 해봐야겠다' 정말 이 정도의 시간이었다. 지인의 물음에 곧바로 솔직히 말했더라면 상당히 재수 없었을 정도로 짧았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라고 말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써보니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새로운 선택지를 찾아낸다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익숙함'의 문제라는 것을. 주어진 선택지에서 벗어난 새로운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익숙지 않을 수도 있고, 새로운 선택지를 찾아내는 그 사고의 흐름이 익숙지 않을 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을 때에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여도 새로운 선택지를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한 두 번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점점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는 것이다.


'익숙함' 외에는 또 다른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생각의 재료'. 새로운 생각은 늘 지금까지 해온 생각들을 재료 삼아서 만들어진다. 재료가 풍부하고 다양할수록 새로우면서도 괜찮은 레시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법. 기존의 관념과 생각들을 비틀어보고, 반박해 보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역전시켜 보고. 이렇게 쌓인 생각들이 다양할수록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 내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요리사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정해진 레시피대로만 요리를 해왔으며, 레시피에 적힌 재료 외에는 잘 다뤄보지 않은 요리사에게 어느 날 채식주의자 손님이 찾아오거나 특정 재료에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이 찾아오면, 그 요리사는 해당 재료들을 뺀 불완전한 요리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다가 국물을 못 먹는 사람이 국물이 있는 요리를 주문하거나, '뜨거운 요리'를 '차갑게' 만들어 달라는 손님이 오면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시피에서 벗어나면서도 맛을 잃지 않는 방법을 많이 연구해 보았고, 레시피에 적힌 재료 외에도 정말 수많은 재료들을 맛보고 연구하고 구비해 둔 요리사라면, 어떤 손님이 와도 그 손님에게 가장 최적의 요리로 바꾸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재료를 빼버린 어딘가 허전한 요리가 아니라, 문제가 되는 재료를 대체하면서도 색다르고 훌륭한 맛을 내는 요리들을 내어줄 것이고, 국물요리를 볶음요리로 탈바꿈시키거나, '냉라면'같은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그러한 변형은, 늘 새로운 재료들을 탐구해 왔으며 레시피에서 벗어난 요리를 많이 해 본 요리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와서, 어쩌면 문제상황에서는 마음의 여유가 없고 그만큼 생각의 전환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안 해본걸 갑자기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므로 문제상황이 아닐 때에,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에 다양한 방식으로 '익숙함'을 쌓고 '생각의 재료'들을 쌓아두는 것이다. 여유가 없는 문제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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