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오늘 밤은 편히 잠들자

보라고 쓰는 일기 [23.03.27]

by 이고양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야 한다.

- 모순, 양귀자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 달과 6펜스, 서머싯 폴



내가 살면서 지금까지 해온 모든 선택이 옳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선택은 '선'이 아니었을 테고, 어떤 선택은 나의 가치관 마저 거스르는 선택이기도 했다. 아니,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나 또한 자주 가식적이었으며, 때때로 비열했고, 어느 순간에는 내 의지로 '악'을 선택했다.


나의 천성은 정녕 모순투성이인가?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그런 선택을 해야 했던 것은, 내가 악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약하기 때문인가?


밤이 깊도록 고민해 봐도 이 질문에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결국 다른 대답을 찾지 못한 것은 나에게도 선을 외면하는 악함이 있었고, 올바름을 관철하지 못할 약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절망적인 결론이 늦은 새벽 나를 짓누른다.


아니 짓눌렀었다. 밤이 깊어가도록 답답한 어둠 속에 잠겨있을 수는 없기에, 기어코 나는 그 돌파구를 찾아내고야 만다. 그 악함이 내 것이고, 약함이 내 것이듯이, 나에게는 악한 선택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선함이 있고, 올바름을 고집스레 관철해 나갈 선함도 있다. 악함도, 선함도, 약함도, 강함도 모두 나의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나에게 있었던 악함은 고작 5%에 불과했다. 약함은 10% 정도려나. 겨우 그 정도의 비중이다. 고작 그 정도의 어둠 때문에 눈이 가려져서 나머지 밝은 부분을 보지 못한 채 절망에 짓눌려 잠들 뻔했다. 나는 종종 스스로 악을 선택하지만, 그보다도 더 큰 선함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때때로 나약하지만 그보다도 더 자주 강인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악함을 수치스러워하고, 나의 약함을 부끄럽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선함을 자랑스러워하고, 나의 강함을 당당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사실이 나를 지탱하고 나아가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오늘 밤도 편안히 잠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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