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을 극복하라는 말은 너무 잔인해

보라고 쓰는 일기 [23.06.26 Mon]

by 이고양

누구에게나 나를 약해지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아주아주 강한 사람에게도, 정말 어떤 일에도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도,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지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성서에 등장하는 삼손은 머리카락이 잘리자마자 모든 힘을 잃고 약해졌다.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꼬리를 잡히면 힘이 빠지고 약해진다.

그리스 신화의 아킬레우스는 온몸이 불사신이지만 뒤꿈치를 공격당하면 약해지 다 못해 죽을 수도 있다.


이렇듯 그 사람을 한 없이 나약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것. 일종의 '약점'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KakaoTalk_20230626_192013567.jpg


내 '약점'은 보편적이면서도 유별나다. 누구나 싫어하고 취약한 부분이지만, 유독 심하게 힘들어하는 요소.

내 경우에는 '습기'가 최악의 약점이 된다. 비가 오지 않아도 날씨가 조금만 습해지면 나는 마치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지고 쉽게 지치곤 한다. 제대로 반응도 못할 지경. 비라도 내리면 온갖 무력감에 휩싸여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지경이다.


비만 오면 관절이 쑤신다거나 통증이 심해진다는 사람들에 비하면 좀 나은가 싶기도 하지만, 그 무력감이라는 게 정말 기분 나쁜 것이라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 경우에는 물리적으로 힘이 빠지는 약점이지만, 사실 우리를 정말 괴롭게 만드는 것은 심리적인 약점이다.


심리적인 약점은 우리를 약해지다 못해 고통스럽게 만든다.


강렬한 트라우마, 공포증, 죄책감, 그 외에도 따로 지칭할 수 없을 뿐 우리를 우울감에 빠지게 만드는 것들.

이러한 심리적인 약점은 주로 과거의 쓰라린 경험으로부터 발생한다.


굳게 믿었던 누군가에게 배신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쉽게 믿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진다.

어릴 적 물에 빠져 생사를 오고 간 사람은, 물 근처에만 가도 힘이 빠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동물에게 심하게 다쳐본 사람은, 동물을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쳐지곤 한다.

인생이 무너질 정도의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무언가를 도전하는 일에 소극적이게 된다.


때때로 이러한 심리적인 약점은 공격적인 성향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나의 심리적 약점을 건드리는 사람에게는 날을 세우게 되고 때때로 그것이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나를 지키고자 하는 자기 방어가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세상은 우리더러 그 약점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재촉한다는 점이다.

약점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이겨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방어로 분노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조절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건 너무 가혹한 말이다.


심지어 더 심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도 많다.

약점을 가진 것이 잘못이고,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말한다거나,

약점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약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건 가혹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틀린 말이다.


세상 그 누구도 약점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들은, 우리가 원한 것들이 아니다.

그 약점으로 인해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다.

약점을 가장 떨쳐내고 싶은 사람도 자신이라는 뜻이다.

그저 떨쳐내지 못해 괴로울 뿐이다.


그러니 약점이 잘못이라 말하지 말자.

약점을 꼭 극복해야 한다고도 하지 말자.

그건 그냥 사라지면 좀 더 좋은 것이고, 극복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진정 그 사람을 생각한다면, 정말 도와주고 싶다면,

약점을 극복하게 하려 하지 말고

약점마저도 이해하고 사랑해 주어라.





이전 09화보통의 날들도 기록하면 특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