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고 쓰는 일기 [23.06.07 Wed]
오랜 시간 책을 읽어왔고, 읽고 난 뒤 다른 사람들과 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책도 '잘' 읽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게임을 잘하는 사람도 있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분명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하다못해 술조차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술을 잘 먹는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럴진대, 독서라고 해서 '잘'하는 독서가 따로 없을까?
그렇다면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위에서 말한 것들은 '잘'한다라는 것이 꽤 명확하게 보인다. 어떤 게 잘하는 것인지 초보자가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잘'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기준이 모호하다. 대체 잘 읽는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라고 해서 세상에서 책을 가장 잘 읽는 사람은 아닐 것이므로, 이에 대해 명확한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오랫동안 읽어왔고, 또 오랫동안 이야기해 본 사람으로서,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책을 잘 읽는 사람은 '쓰여 있지 않은 것을 읽는 사람'이다.
'쓰여 있는 것'은 활자이고 글자이다. 하얀 종이 위에 빼곡하게 수놓아진 검은 글씨들. 그것은 쓰여 있는 것들이다. 눈이 있기에 볼 수 있고, 글자를 알기에 읽을 수 있으며, 언어를 알기에 내용을 이해할 있는 것들이다. 쓰여 있는 것들을 읽는다는 것을 우리는 '글을 읽는다', 혹은 '책을 읽는다'라고 표현한다.
'쓰여 있지 않은 것'은 말 그대로 활자로 표현되지 않은 것들이다. 그것은 단어와 단어 사이에 숨어 있으며,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겨져 있다. 그것은 활자 옆에 광활하게 펼쳐진 하얀 여백에 쓰인 하얀 활자이며, 한 페이지에도 수백 글자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등장인물의 표정이 표현되지 않았음에도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며, 등장인물의 속마음이 서술되지 않았음에도 선명하게 들리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몇몇 독자를 위해 감추어둔 선물을 찾아내는 것이며, 동시에 작가가 들키고 싶지 않아 숨겨둔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때대로 작가조차 생각도 못했던 것들을 읽어내는 것이며, 작가가 던지지도 않았던 질문에 자신의 답을 내리는 것이다.
책을 잘 읽는 사람은 바로 이 '쓰여 있지 않은 것'들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다. 쓰여있지 않은 것을 읽기 시작하면, 독서의 즐거움은 2배가 아니라 20배, 200배까지도 늘어나게 된다. 쓰여 있지 않은 것을 읽는 사람들의 한 권의 독서는, 쓰인 것들만 읽는 사람의 백 권의 독서보다 의미 있다. 물론 쓰인 것들만 읽는 사람은 흔치 않다. 책을 많이 읽게 될수록,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쓰여 있지 않은 것들을 조금씩은 읽게 되곤 하니까. 그저, 그것을 얼마나 잘, 그리고 얼마나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게 쓰여 있지 않은 것들을 읽을 줄 알게 되면, 그 과정에 익숙해지면, 그때부터 책이 아닌 것들, 그러니까 글자가 아닌 것들도 읽을 수 있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읽을 가치가 있으며, 가장 잘 읽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삶'을 읽는 것이다. 자신의 삶만큼은 자신이 읽어낼 수 있다. 종이가 아니라 시간 위에 쓰였다는 것만이 책과 삶의 다른 점이니까. 지나간 나의 시간들을 읽는 독자가 되어서 제 3자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쓰이지 않았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말이다.
글로는 마치 내가 책을 굉장히 잘 읽는 사람인 것처럼, 그리고 삶을 잘 읽어내는 사람처럼 적었지만, 사실 나 또한 아직도 한참 부족한 사람이다. 그럭저럭 어느 정도는 잘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자신 있게 잘 읽는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잘 읽기 위해 애쓰는 사람인 것이다. 책이든 삶이든 말이다.
책을 읽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읽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의식하며 읽어야 하는 것처럼, 삶을 읽어내는 것 또한 의식적으로 행해야 한다. 아니 삶을 읽을 때에는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독서는 의식적인 행동이지만, 삶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삶을 읽는 것은 언제나 그 순간이 지나고서야 하게 된다. 아직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
그래도 힘든 시기를 보낸 뒤라거나, 무언가를 실패하고 난 뒤, 혹은 그러한 힘든 시간이나 실패 후에 새로운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면 언제나 그 지난 시간을 다시 읽어보곤 한다.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난 4월과 5월이 내게는 오랜만에 다시 읽어야 할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불행하진 않았으나 힘들고 바쁜 시간이었고, 한심하지는 않았지만 떳떳하지도 못했던 시간이니까. 그 시간을 읽는 것이 나에게 더 큰 무언가를 안겨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