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얼렁뚱땅

보라고 쓰는 일기 [23.04.19.Wed]

by 이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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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떻게 시작될까? 아마 모든 연애는 그 나름대로의 엄청난 스토리로 시작될 것이다. 운명적인 만남도 있을 것이고, 절절한 사연이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귓가에 종이 울리는 듯한 찌르르한 첫 만남으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들 모두가 각자의 사랑을 정의 내릴지도 모른다. 사랑은 _____ 다.


그렇다면 내 사랑은 어떨까? 평생을 함께하고자 마음먹은 사람을 만난 지금, 우리의 사랑을 정의 내려보자면 이 한마디만큼 우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사랑은 얼렁뚱땅이다.


첫 만남은 그 어떤 연인 못지않게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얼렁뚱땅 좋아하고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조차도 머리가 마음보다 훨씬 늦었었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난 그 사람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건 그 사람도 마찬가지. (사실 내가 좀 더 일찍 좋아한 건 확실한 것 같다.)


고백은 또 어떠한가? 나는 그 사람을 만나러 집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그날이 내가 고백하는 날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내 안에서 너무 커져버린 사랑을 느꼈고, 이 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 오늘 고백하게 될 것 같다.' 아니 이토록 무계획적인 고백이 다 있을까? 평소에도 MBTI의 J성향이 지나칠 정도로 짙은 나에게는 이런 준비 없는 고백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 준비도 없이 터져 나오는 마음을 내뱉듯이 건넨 얼렁뚱땅 고백이 도리어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언젠가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그랬었기에 그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다고 하더라. 도리어 너무 잘 준비된 고백이었으면 거부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아니 뭐 이런 얼렁뚱땅이 다 있을까.


연애 또한 그렇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찰떡이고, 가장 바라는 것을 너무 완벽하게 잘해준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들은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른다. 그 사람은 제 멋대로에 나는 되고 넌 안되라는 내로남불 발언을 수시로 하는 데다가 불리할 때에는 애교로 넘어가려 하고 꽤 자주 나에게 자신의 생각에 긍정하기를 강요한다. 다른 사람이 하면 내가 너무나 싫어하는 행동들인데, 그 사람의 그 모습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내가 정말 싫어할 만한 선을 결코 넘지 않으면서도 내가 웃음 지어질 정도로만, 정확히 딱 그 정도로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은 늘 그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니까? 나는 그 선을 몰라!! 뭔지도 모르고 하는 그 얼렁뚱땅 행동들이 나에겐 최적의 행동일 뿐이다.


그뿐이랴. 나는 내가 싫은 건 그 누가 시켜도 곧 죽어도 안 한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누군가에 의해서 움직이느니 차라리 일을 망쳐먹을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세상 그 누구보다 잘 다룬다. 내가 하지 않고 미루기만 하는 행동들을 하게끔 만들고, 그전까지는 안 하던 행동들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나는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니까? 좀 알려줘! 써먹게!! 아니 뭐 그건 나도 잘 몰라 어떻게 하는지. 하는 사람이 알아야지. 이렇게 얼렁뚱땅 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 찰떡처럼 들어맞는다.


뭐 이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은 내가 정말 최고의 남자친구라고 하는데.. 어..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어렴풋이는 알겠는데.. 어.. 그게 머리로 한 행동이 아니란 말이지..? 그냥 나는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따라서 행동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좋은 행동이고 너무 좋은 마음이라고 종종 칭찬받곤 한다. 그.. 이 글을 빌려서 솔직히 말하는데. 사실 나도 그거 어떻게 하는지 정확히는 몰라.


나도 사실 얼렁뚱땅이야.


아니 무슨 이런 얼렁뚱땅 커플이 다 있을까. 시작부터 지금까지 뭐 하나 얼렁뚱땅이 아닌 게 없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완벽한 퍼즐 조각처럼, 그렇게 찰떡같이 서로에게 들어맞는다. 그게 진짜 운명이고, 그게 진짜 인연이고, 그게 진짜 사랑인 거 아닐까? 저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꼭 들어맞는 것. 얼렁뚱땅의 결과가 다 좋기만 한 것.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우리의 얼렁뚱땅이 꼭 들어맞는 것은, 그것이 운명이라서가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모든 것이 우연히 맞아 떨어지는 건 로또 당첨보다도 희박할 지도 모르니까. 아마 우리의 얼렁뚱땅이 꼭 들어맞는 것은, 그 얼렁뚱땅 안에는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 담긴 얼렁뚱땅은 어떤 구멍에도, 어떤 조각에도 꼭 들어맞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마 받는 사람이 그것을 알 맞게 받아들이는 것이겠지. 얼렁뚱땅 조각에도 사랑이 가득하고, 얼렁뚱땅 빈자리에도 사랑이 깔려있으니, 그게 꼭 들어맞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러니까 사랑은 얼렁뚱땅.

얼렁뚱땅이 찰떡이 되는 것.

아니, 얼렁뚱땅을 찰떡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그것이 사랑일지도.


KakaoTalk_20230420_031657682.jpg Drawing by 홍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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