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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혁 Nov 24. 2019

새엄마에 대한 공포

하루일과를 마치고 러브타임을 위해 식탁에 둘러앉았다. ‘러브타임 하자’라는 말이 떨어지자 능숙하게 보윤이는 과자를 준비하고 건우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고 있었다. 그런데 보윤이가 장난치듯 새엄마 얘기를 한다. 나는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새엄마 얘기를 꺼낸 적이 없어 보윤이 말에 좀 놀랐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보윤아, 새엄마? 새엄마가 뭔지 알아?”


“어, 콩쥐랑 백설공주도 엄마가 죽어서 새엄마가 왔잖아.”

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얘기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새엄마는 어떻게 인식되는지 궁금해 다시 물었다.


“보윤이는 새엄마가 오면 어떨 것 같아?”


“무서울 거 같아. 우리 잘 안 돌봐줄 것 같구, 혼낼 거 같아.”


“그렇구나. 보윤이는 새엄마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아이들은 새엄마의 존재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덧붙였다.      


“새엄마가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겠지만, 우리 가족은 몇 명이야? 보윤이, 건우, 아빠 이렇게 세 명이지? 우리 세 명 모두가 좋다고 하지 않으면 새엄마는 안 올 거야.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다. 아이들이 새엄마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을 줄은.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아이들에게는 새엄마의 존재가 자기 삶의 가장 큰 변수일 수도 있으니 당연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이들이 새엄마를 상상한다면 자신이 아는 만큼 이미지를 그리게 된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은 동화.      


생각해보면 동화 속 계모들은 거의 악역으로만 등장한다. 사랑하는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새엄마가 엄마자리를 차지하면 아빠의 눈을 피해 아이에게 나쁜 행동을 일삼는다. 왜 그렇게 비춰지는지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이야기 전개상 악역이 필요해서 그런가?) ‘백설공주’, ‘콩쥐팥쥐’, ‘신데렐라’ 등 모두 엄마의 부재로 인해 아이들에게 위기가 닥치는 스토리다. 엄마가 먼저 떠난 것이 아이들의 잘못도 아닌데 아이들이 이런 걱정까지 하면서 산다는 것이 좀 가슴 아픈 일이다.           


언제는 내가 친한 친구에게 장난으로 “괜찮아. 장가 한번 더 갈 수 있잖아”라며 농담을 던진적이 있었다. 위로받다 지친 내가 분위기 전환삼아 던진 말이었는데 그 친구는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라며 오히려 나에게 강하게 말했다.     


영문을 모르는 내게 친구는 말을 더 이었다. 

자기가 어릴 적 어머니께서 돌아가셨고 성장 과정에서 새어머니가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새어머니와의 마찰로 인해 가정에 큰 어려움이 있었고 자신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혹여 아이들이 아빠가 이런 말 하는 것을 들으면 아이들이 흔들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였다. 듣고 보니 친구의 말에 큰 공감이 되었다. 나도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아이들을 키우려니 여기저기 부족함이 많이 보인다.      



(이미지출처: http://www.kopf.kr/news/articlePrint.html?idxno=169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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