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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바다 Dec 27. 2018

아버지에게 가는 길

독서치유심리학자 김영아의 힐링 책방(5)

요즘 '딸바보', '아들바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자식을 유난히 귀여워하는 아빠들을 이르는 말이지요. 대체로 과묵하고 엄했던 이전 세대의 아버지들을 생각하면 세상이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30-40대 아빠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부장적인 한국의 전통적인 아버지상이 싫어서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답변이 무려 25퍼센트를 넘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오늘은 우리의 기억 한편에 자리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문득 아버지를 떠올리다


몇 년 전, 중년의  한 남자분이 제게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쌓인 안 좋은 감정들을 털어내고 싶다던 그분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내담자의 감정은 무척 부정적이었죠. 그는 아버지가 아들인 자신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는커녕 칭찬이나 격려를 해 준 적도 없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들어보니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느라 바빴던 탓에 자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셨더군요. 내담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보다 혼자 자식을 챙기느라 고생한 어머니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나더랍니다. 아버지 생전에 잘해드리지 못했다는 후회와 죄책감도 함께 말이죠. 저는 내담자에게 케니 켐프의 책 <아버지에게 가는 길>을 추천했습니다. 아버지의 일생에 관한 담담한 서술로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 준 작품이지요.

이 책은 저자이자 주인공인 케니 켐프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차고를 정리하기 위해 고향집으로 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주인공이 회상하는 아버지는 내담자가 떠올린 아버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엄격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반항이나 말대꾸를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말대꾸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버지의 우람한 체구도 무서웠지만, 나를 못마땅해하는 듯한 침묵은 그보다 더 무서웠다.


뒤늦은 이해와 후회


그러나 주인공은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도 기억합니다. 보이스카우트가 되어 하이킹에 참가한 열두 살의 케니는 아버지에게 같이 가달라 부탁했고, 두 사람은 함께 떠났지요. 대열에서 너무 뒤처져 포기하고 싶어 진 순간 어린 케니는 아버지를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흘러내린 눈물 한 방울을 닦고 올려다보니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눈가도 촉촉한 게 아닌가!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배낭을 내려놓았고, 내 배낭도 내려놓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런 다음 내 옆에 앉아 함께 오솔길을 내려다보았다. 한참 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내담자는 이 일화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제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열 살 무렵 동네 구멍가게 앞에 서 있는 자전거를 몰래 탔다가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한테 혼날 생각에 무척 겁을 먹었는데 어쩐 일인지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자전거 한 대를 가셔오셨더랍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움을 알고 있던 내담자는 그때 마음이 찡했다고 말했습니다. 내담자의 아버지는 아들을 아꼈을 것입니다. 다만 충분한 애정과 지지를 원하는 아이에게는 부족하게 느껴졌을 테지요. 내담자는 그 마음을 너무나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처음 아버지가 되었을 때만 해도 잘 몰랐죠. 이렇게 아이가 예쁜데 왜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회사가 어려워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면서 아버지 생각이 참 많이 났어요. 아버지도 가족들 굶기지 않으려고 참 열심이셨구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니 후회가 찾아왔습니다. 살갑게 말이라도 한번 건네볼걸, 힘들 때면 조언도 구해볼걸, 둘이서 술 한잔 기울여볼걸….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곁에 없었지요.


스스로 용서하는 일


저는 상처를 주고받는 아버지와 아들을 많이 봅니다. 케니 또한 반항기에는 아버지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기도 했는데요. 

나는 탐탁지 않아하는 기미가 보이는지 아버지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번만큼은 아버지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생활방식을 공격하고 내 방식을 옹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버지의 엄격한 잣대에 어떤 논리로 대응하면 좋을지 궁리하며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자식이 잘못될 것을 염려해 애정 표현을 아끼거나 과도한 기대감으로 서툴게 표현하듯, 아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자신이 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자꾸만 엇나가는 거죠. 

수의를 입히려고 아버지의 시신을 옮기는데, 아버지가 평생 동안 해온 일 때문에 얼룩덜룩한 피부에 남은 낯익은 흉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 누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모습은 아버지가 맞는데, 아버지가 아니라고. 이것은 몸뚱이에 불과하고 아버지는 저 멀리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거의 흘리지 않았다던 내담자는 이 장면을 읽으며 오열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사랑, 그리고 그저 꾹꾹 눌러왔던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죠. 저는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 스스로를 용서하라고요. 아버지도 내담자를 이해할 것이라고 말이죠.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것보다 언제나 너그러운 법이니까요.


아버지를 다시 기억하기


우리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무뚝뚝하거나 자상하거나 든든하거나 때론 무서울 수도 있지요. 누군가는 아버지를 존경할 것이고, 누군가는 원망할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사실은 어떤 아버지든 자식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입니다. 설사 미운 아버지여도 용서하고, 아버지를 미워한 자신 또한 용서해야 하는 까닭은 그 부정적인 감정이 자기 자신 또한 좀먹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상처를 바라보는 대신 그것을 덮어줄 만한 좋은 기억을 꺼내보는 게 어떨까요? 케니가 잡동사니 가득한 아버지의 차고에서 가족들의 보물을 찾아내듯, 기억을 찬찬히 뒤져보면 아버지와의 행복한 순간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버지에게 가는 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추억은 끈질긴 것이라 불이 난 뒤에도 없어지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가는 길'이란 결국 지나쳐버린 과거 속에서 소중한 기억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 추억은 사는 동안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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