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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언니 Jan 25. 2021

조금은 험난했던 첫 사회인 되기  

첫 직장에 입사하고 몇 달 뒤...


여느 날처럼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더니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너무 당황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와중,

일단은 지하철에서 내리자...생각이 들어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나는 먼저 숨을 쉬어야 했다.

"하아....하아...."

내리자마자 가쁜 숨을 쉼과 동시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평소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라 너무 당황스럽고, 다시 지하철을 타도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하고, 지각은 또 용납할 수 없기에,

다시 용기를 내 지하철을 탔다.


3-4 정거장 후, 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눈 앞이 하얘지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아까와 같은 증상이다.

다시 다음 역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좀 전의 경험으로, 당황스러움은 조금 나아졌으나, 또 증상이 나타날까 두려움은 두배가 되었다.


그렇게 2-3번을 내리고 타고 반복해 겨우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15분 지각을 했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지듯 내 자리에 앉았다.

윗분들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아니 인사는 생각도 하지 못 했다.

팀 선배가 다가오더니,

"너 얼굴이 지금 너무 창백해. 어디 아파? 무슨 일이야? 안 하던 지각을 하고?"

"제 얼굴이 창백해요? 주임님, 믿기 힘드시겠지만, 제가 지하철에서 쓰러졌었어요. 저도 이런 경험이 첨인데...갑자기 눈 앞이 하얘지면서 숨이 안 쉬어져서.......ㅠ.ㅠ"

"그래? 지금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어. 일단 병원 좀 다녀와. 그냥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럼 병원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길로 바로 회사 앞 대학병원으로 갔다.

(첫 직장 바로 앞에 큰 대학병원이 있었다. 지금은 이전해서 다른 곳에 있지만...)


접수하면서, 증상을 설명하니, 정신과로 진료를 잡아 주네~

정신과??? 내가 정신과 진료를???

아침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상황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홀로 상경해, 열심히 회사 다닌 것 밖에 없는데...

갑자기 너무 외롭고 슬펐다.


두근대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정신과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나요?"

"네, 제가 아침에 지하철을 탔는데,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고, 눈 앞이 하얘지더라고요.

 바로 내렸더니 숨이 쉬어지고 안정이 되었어요.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며 출근했습니다."

"혹시, 요 근래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았나요?"

"음....제가 올해 7월에 새로운 직장에 들어와 적응하고 야근하면서 좀 힘들긴 했는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그러진 않았습니다."

"음.....제가 보기엔 이게 공황장애 증상 같은데, 조금 더 검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공황장애요? 그게 뭔가요?"


지금은 연예인들도 많이 겪고, 언론에도 많이 노출되어 공황장애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2001년 당시는 일반인이 공황장애에 대해 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때는 정신적인 이상은 모두 정신병으로 취급하는 시대였고, 쉬쉬하며 밝히지 않던 때라

정신과 진료, 공황장애 의심, 모두 내겐 너무 낯설고 무서운 일이었다.


거의 반나절을 검사만 했다.

체크리스트 작성하고, 엑스레이도 찍고, 초음파 검사도 하고...

결과는 며칠 뒤 연락 주겠다며 무리하지 말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일하라고 하셨다.

(지금도 그때 정신과 담당 교수님의 온화한 말투가 생각난다.)


그날 나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생애 첫 정신과 진료도 너무나 충격적인데, 공황장애라니.....아니 정확하게는 공황장애가 의심된다니..

집에 와서 공황장애 검색을 얼마나 했는지......


부모님 반대도 무릅쓰고, 외로이 낯선 땅 서울에 올라와, 

새로운 직장,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엄청나게 애썼던 모양이다.

부모님이 다 해주던 삶을 살다가,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삶을 살게 되니,

드러나진 않아도, 엄청나게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날 이후로, 같은 증상이 2-3번 정도 더 나타났었다.

다행히 지하철에서 내리면 바로 안정을 되찾았고,

그래서 증상이 나타나도 처음처럼 당황스럽고 무섭진 않았다.


병원 검사 결과도 별다른 소견 없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 증상 같다고만 나와서

스트레스를 줄이고, 즐거운 일을 많이 하라는 처방만 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행히 한 번도 같은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까지 올라와,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과

새로운 직장에서 누구보다 잘하고픈 욕심이 부른 참사였던 것 같다.


많이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다 포기하고 내려갔으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겠지만...


나는 경상도 촌뜨기!, 당시 서울말이 너무 어색하게 들렸다.

무뚝뚝한 경상도 말만 듣다가, 나긋나긋한 서울말을 들으니, 귀도 적응이 안 되었던 것 같다.

상사가 화를 내도, 이게 화를 내는 건가? 다시 생각해야 할 정도로...^^


그런데 또 사람은 적응의 동물...

본가에 내려가면, 경상도 사투리가 귀에 거슬리는 거다.

세고, 강하고...대화하는 것도 싸우는 것처럼 들리고..


말부터 행동, 환경, 주변인들까지 

뭐하나 안 바뀐 게 없는 삶을 갑자기 혼자 살게 되었는데...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거짓이겠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온 내가 정말 자랑스럽다.


인생은 시련만 오는 게 아니니까..

참고 극복하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기니까 말이다.


첫 직장 서랍에는 흰색 봉투에 넣어진 사직서가 있었다.

너무 힘들어,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을 때,

그 흰 봉투를 꺼냈다.

그럼 희한하게 '너 이 정도도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야?'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어떤 사람인데...이 정도 고난도 극복을 못해?"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자.존.감!!

부모님께서는 나를 참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워 주셨다.

지방대 출신에,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닌데...

나는 항상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인데 말이다. ^^


그렇게 나는 근거 없는 자존감을 바탕으로, 

무시무시한 사회란 곳에 적응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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