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처음 커피를 마셨다. 엄마가 즐겨 드시던 믹스 커피 반 스푼에 물 가득 한 컵. 커피 향만 살짝 나는 보리차 수준의 커피였다. 작곡전공을 앞두고 시작된 엄청난 양의 음악공부 덕분에 나의 커피 인생이 시작됐다. 대학 합격 후 1년이 지나 처음으로 초록색 인어가 인상적인 유명한 커피전문점을 찾았다. 에스프레소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 당연히 아메리카노가 에스프레소인 줄 알고 주문을 했다. 물 한 방울 안 섞인 에스프레소를 받아 들고 잘못 나왔다며 점원에게 '이걸 어떻게 마셔요. 물을 같이 주셔야죠.'라고 말했다. 어쩜 그리 당당했었는지. 당황한 점원이 '아.. 이거 에스프레소 맞는대요 손님. 혹시 못 드시겠으면 뜨거운 물 드릴게요. 여기요.' 그제야 뭐가 잘못됐는지 알았다. 쟁반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이미 늦었다. 새빨개진 얼굴, 부끄러움은 오직 내 몫이었다.
이후 나는 쓰디쓴 에스프레소처럼 20대를 보냈다. 그리고 별 다른 일 없이 30대를 살아가던 어느 날, 나의 커피 인생은 한순간에 바뀌었다. 손맛 좋은 어느 유명한 바리스타의 에스프레소를 맛보게 된 것이다. 진한 커피의 향이 코로 들어와 입 안 가득 돌면 쓰고 신 첫맛이 혀 끝을 감돌다 지나갈 즈음 구수하면서 고소한 맛이 남는 에스프레소의 참 맛! 나는 에스프레소를 사랑하게 됐다.(얼마 안 지나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땄다)
유럽을 돌아다니다 보면 제일 좋은 건 에스프레소를 실컷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여러 나라 중에서도 특히 발칸 반도, 또 그중에서도 보스니아가 나에겐 최고였다. 단 1유로. 심지어 60 센트면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실 수 있었기 때문.
(우리나라 돈으로 800~1400원 정도)
하루에 한 번, 어느 날은 두 번. 웨이터가 반짝이는 은쟁반에 에스프레소 한 잔, 물 한 잔 이렇게 담아 오면 걸음걸이를 따라오는 커피 향에 먼저 설레고, 내 앞에 놓아주는 순간 두 번 설렜다.
현지언어는 당연히 안 통하고,
영어는 통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의미 전달이 안되고, 문화도 달라 실수 연발인 온통 낯선 곳에서의 생활.
직원들은 숙박비며 식사비 계산을 어쩜 매번 그리 틀리는지. 잘못을 해놓곤 크게 한 바탕 웃으면서 어깨 으쓱하면 끝나고. 청소를 부탁하면 엉망, 예약한 택시는 안 오고, 인터넷도 잘 안되고.
이츠 오케이 이츠 오케이(It's ok. It's ok). 뭐가 그렇게 괜찮은 건지 다 괜찮다면서 다 잘 될 거라고 오히려 나를 다독이는 유럽 사람들의 특유의 여유로움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뭐든 빠르고 확실한 일처리를 좋아하는 성격인 나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좋은 것을 보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경험하는 즐거움 중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 여유로워진 나를 보게 됐다. 매일이 그야말로 도전인 순례의 고된 시간들을 에스프레소 한 잔에 담아 그대로 넘기고 있었다.
평소 생각도 많고 늘 뭔가 해야만 했던, 쉬는 때에도 뭐든 보거나 읽거나 들어야 했던 내가, 그냥 눈에 들어오는 대로 풍경을 보면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힘들다 싶으면 '잠깐 커피 마시고 갈까?'
'원 에스프레소 플리즈~',
'오늘은 여기서 커피 한 잔 하고 들어갈까?
이만하면 충분하지.' 이러면서.
남은 순례 동안 스트레스가 될 만한 일들은 여전했다. 미간이 찌푸려지고 얼굴이 경직되기도 했다. 화가 날 일도, 어이없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전처럼 스트레스 지수가 그리 높진 않았다. 한 마디면 마음의 여유를 금방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 '원 에스프레소 플리즈~' 그 날의 스케줄을 채 못했을 때도 괜찮았다. 역시 '원 에스프레소 플리즈~' 한 마디면 충분하니까.
여리게 물 맛만 났던 어릴 적 믹스커피, 쓰디 썼던 20대의 첫 에스프레소. 그리고 순례를 다니면서 밥 먹듯 마셨던, 진실로 맛있었던 30대의 에스프레소. 삶을 한 템포 느리게, 좀 더 나답게 여유롭게 살아가게 만들어 준 1유로의 찐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