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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낙타 Jan 26. 2020

슬픈 명절 일상

추석이나 설날을 앞두고 들뜬 마음을 가지는 한편 피곤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자주 보곤 한다. 나도 작년까지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고향에 내려가 그간 자주 보지 못한 친척과 인사하고 명절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제사를 지내고 제삿밥을 먹으며 여러 가지(?) 잔소리를 듣다가 바쁘다는 이유로 금방 돌아가는 친적을 따라 곧이어 서울로 올라기기 바빴던 일상. 그 일상도 이제는 없어져버렸다. 

 

일상이 깨진 이유는 세대 간의 갈등이다. 우리 집안은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지배를 받은 엄격한 분위기였다. 배고파서 잠깐 냉장고라도 열어보려고 걸어갈 때면 어김없이 아버지는 "사내대장부가 어딜 부엌에 들어가!"라는 호통을 쳤었고 저녁식사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낼 때에도 남자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런 집안이었다. (아참, 리모컨 누를 손가락은 그렇게 잘 움직이더라)


난 그래서 아버지가 싫었다. 싫었다기보다는 너무나 무서운 대상이었다. 직업군인으로 10여 년을 보내면서 더더욱 딱딱한 남자의 이미지를 가졌었고 어릴 때 사고를 치거나 성적이 좋지 못하면 내 동생과 함께 효자손이나 구두 주걱 따위로 맞는 일도 종종 있었으니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정확히 1년 전 설날 때 불길은 피어올랐다. 어김없이 이른 아침에 제사를 지내고 한 방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공무원이셨던 작은 아버지가 매년 비슷한 레퍼토리를 읊으신다. 

"이번에 우리 둘째 딸이 어디를 발령 났는데 말이야.."

"그리고 손주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이번에 은퇴하고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말이야.."

각종 자랑들이 쏟아지며 드디어 화살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너는 아직 여자 친구 없냐? 지난번에 헤어진 여자 친구는 연락 없고? 다른 여자는 만나봤고?"

"어디 회사 다닌다고? 연봉은 얼마나 되냐, 우리 딸은 설날 보너스만 몇 백을 받는다고 하는데"

"너도 빨리 결혼해야지 언제까지 혼자 살거나"


제사를 지내기 전부터 너는 장남이니 다음에는 제사상을 모두 차릴 줄 알아야 한다, 매년 제사가 몇 번씩 있는데 등등 본인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내뱉고 난 뒤에 결국 이 상황까지 오고 나서 폭발해버렸다. 


정말 화가 났던 건 그런 소리를 듣고서도 아무 말하지 못하는 부모님. 왜 명절만 되면 우리가 죄인이 된 듯 고개를 숙여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0년 넘게 매번 반복되는 그 압박감이 너무 싫었다. 자기 딸들이 인 서울 어디 대학교를 지원해서 들어갔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이야기. 결혼했다는 이야기. 아들딸 낳아서 행복하다는 이야기. 전부 우리 집안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눈치 없이 올 때마다 자랑하며 떠들어대는 게 화가 났다. 


그래, 본인 자식 잘났다는 이야기는 백번 양보해서 이해해준다고 치자. 그것과 비교해서 우리 가족을 들먹이는 게 정상적인 건지 묻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좌절감을 맛보게 해야 우월함을 느끼는 건지 명절만 되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상태에서 고향을 떠나야 했다. 


담담하게 속에서 참아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이 나중에 돌아가시면 제사를 전부 없애겠습니다"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 엄마와 같은 짐을 지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까지 명절에는 오지 않겠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닌 정치 이야기와 자식 자랑 이야기만 하는 것에 질렸다. 그 이후 1년째 명절에는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직장상사와 동료들이 어김없이 연휴 때 뭘 할 건지, 고향을 가는지 안부들을 물어보지만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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