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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낙타 Jul 12. 2020

'문득' 회사원이라는 사실이 서글퍼질 때

1. 출퇴근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어둑어둑한 시각, 눈을 비비며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대충 씻은 후 주말 간 다려놓은 와이셔츠를 꺼내 입고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발로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다. 간밤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뉴스 기사를 대충 훑어보면 어느덧 집을 나서야 할 시간. 문을 열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오늘도 더울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하라"는 말을 해주는 것 같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전동칸 내부는 시원하지만 그것도 잠깐, 다시 목적지 역에 도착하면 지상으로 올라와 회사까지 걸어가는 동안 나의 등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고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벌써 지친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문득 주변에서 나와 같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흘끗 보았다. 그중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있었고 새내기 대학생처럼 보이는 20대 청년들도 보인다.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며 친구들끼리 웃고 장난치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회사원이 되고 나서 출퇴근 시간 중 그때 그 시절처럼 크게 웃은 적이 언제인지 떠올려 보았으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2. 꾸중

업무 중 큰 실수를 했다. 사소한 실수였다면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보거나 사수 과장님에게 조용히 이야기하고 조언을 얻을 수 있겠다만 이번에는 그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팀장에게 보고하기가 두려웠다. 혼자서 끙끙 앓다가 결국은 보고했다. 

"넌 한동안 이 업무 하지 마! 그리고 왜 잘못했는지 정리해서 다시 보고해!"

우리 부서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의 직원들까지 쳐다보는 부끄러움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답답함에 온몸이 떨리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건물 밖으로 도망치듯이 뛰쳐나왔다. 답답하고 눈물이 나왔다. 양심 없게도 그 와중에 배는 고팠다. 그래서 편의점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바나나우유를 하나 사서 마셨다. 

편의점에서 친절하게 계산해주는 점원, 컵라면을 먹고 있는 한 남성, 무슨 음료수를 마실지 고민하는 한 여성,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문득 보였다. 그들은 모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 보인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처럼, 대학교 시절 학군단 선배처럼 체벌을 받고 끝내는 게 아니다. 돈을 내고 배우는 게 아니라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나의 업무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크게 한 숨을 들이쉬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회사로 걸어갔다. 그들처럼.


로또 당첨이 되어야만 미생의 삶을 끝낼 수 있을까




3. 회식

회식장소를 선정하기 위해 3~4곳 정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외워놓는다. 점심시간 밥 먹는 도중 역시나 장소가 정해졌는지 물어볼 때 리스트를 불러주고 결국은 상사가 원하는 곳으로 선택. 눈치껏 저녁 인원에 맞춰서 미리 예약해놓는다.  

차량 운전하랴, 도착해서도 어디에 앉아야 할지 눈치싸움이 시작되고 마음대로 앉을 수가 없다. 회식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우리끼리 하하호호 웃고 떠들 수 있는 분위기인가? 

어떤 꼰대가 말했었지.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이다"라고. 업무이야기만 주거니 받거니 여기가 회사인지 식당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소주가 한 병, 두 병 늘어날 때마다 상사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오늘도 "나 때는 말이야! 옛날엔 말이야!"를 시작으로 하는 자기 자랑과 우리가 유치원생이었을 때 이야기를 1시간 동안 꺼낸다. (심지어 그 이야기는 지난 회식 지지난 회식 때도 했던 이야기)

문득 친구들과 함께 여행 가서 저녁 먹은 추억이 떠올랐다. 누구도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고 웃을 수 있었던 시절.


직급을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회사원분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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