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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란 Dec 16. 2020

귓가를 가르는 물 소리

오리, 날자!

  유년 시절. 시골에서 중학교까지 보낸 나의 일상은 온통 놀거리에 집중 되어 있었다.

  여름이면 친구들과 수업 끝나고 대충 수건과 옷가지를 챙겨 개울가로 나갔다. 울퉁불퉁 투박한 바위나 돌들을 힘 꽤나 쓰는 오빠들이 둑을 만들어서 정비 해 물을 가두어 놓으면 거긴 그 해 마을 전체 아이들의 전용 수영장이 되었다. 그러다 가끔 태풍이라도 들이닥쳐 산사태로 바위들이 우루루 쏟아져서 엉망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또 금새 모양을 갖춰 놓곤 했다. 시골에는 이렇다할 수영을 배울 곳도 없고 그저 형에서 아우로 또 그 아우로, 그것도 아주 체계적이지 않은 형태로 수영 기술이 전해졌다. 수영 깨나 하는 오빠들은 지금봐도 제대로 된 동작의 자유형이나 배영, 잠영을 했었지만 운동이나 배움에 그다지 소질이 없던 나는 그저 얼굴만 동동 띄우고 손과 발을 재빨리 움직이는 일명 '개헤엄' 밖에 할 수 없었다. 가끔 숨을 참고 가슴팍 정도의 물에 몸을 담그기도 했지만 그 때의 숨 찬 느낌과 수압이 주는 쪼그라드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 곳은 더위를 피하고 물에서 첨벙거리고 근처 풀이나 나무를 꺽어 소꿉놀이를 하던 그야말로 복합 놀이터 였다.


  그러던 중 초 2학년 쯤. 여름방학을 맞아 외가에 갔다. 외가에 있는 고학년 쯤 되는 친척들과 그 동네에 있는 개울에 놀러갔다. 그런데 여름 장마비 탓인지 물은 불어 있었고, 불어난 물살을 가로지르며 한 사람씩 건너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나는 언니 오빠들이 양쪽에서 손을 잡고 조심조심 건너는데 미끄덩! 발을 헛 디디고 갑자기 휘청하면서 몸이 옆으로 기울면서 푹 잠겨버렸다. 눈을 뜨니 나의 팔 다리는 어쩔줄 몰라 갈피를 잃고 허우적대고 있었고 너무 놀라 살포시 눈을 뜨니 뿌연 황토색의 모래 물살로 가득 차 있었다. 숨은 차고 호흡은 가빠지는데 발 바닥이 땅이 닿지 않을 때의 그 철렁한 기분.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나의 팔을 낚아 채서 끌어 올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은 그 때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막연히 물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생긴 것이.


  20대 초반 취업을 하고. 하는 일말고도 세련된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었다. 취미로 운동이나 악기 하나쯤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당시 싸이월드 같은 SNS가 시작되고 저마다 자기의 일상(대부분이 자랑거리)를 사진으로 올리기 시작했고 그 것들이 나의 내세울 만한 취미 생활을 가져야 한다는 동기화가 되었다. 물개처럼 나비처럼 가볍게 물살을 가르는 우아한 수영이 배우고 싶었다. 어디 외국 해변가나 호텔 수영장에서 멋들어진 사진이라도 남겨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수영을 배우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렸으나 당시 불규칙한 3교대 근무에 뭔가를 정해놓고 배우기란 시간과 여건이 쉽게 허락하질 않았다. 또한 수영은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어서 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렸다.


결국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수영 뿐 아니라 요가, 테보, 스피닝 등 닥치고 배우는 운동에 빠져 있을 때였다. 집에서 도보 5분거리에 문화센터에 아침 6시 수영반을 등록했다. 다시 나의 열정을 활활 불지펴 보겠어. '맥주병 처럼 꼬로록 가라 않지 않고 스티로폼 처럼 수면위에 사뿐히 떠 있을 테야' 야심차게 시작했다. 아이를 아침에 챙기고 나도 같이 출근을 해야했기에 그 시간이 가장 좋았다. 가성비 좋은 수영복과 수영모자를 사고 세면도구를 가지고 다닐만한 그럴싸한 가방도 샀다. 필수 아이템을 구입하고 차가운 아침 바람을 맞으며 수영장에 간 첫날, 그 은은한 락스 냄새와 습한 공기. 금방이라도 물살을 가르고 휘휘 나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수업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주 2회 수업이 주는 비교적 덜 지속적인 탓도 있겠지만 처음에 차가운 타일 바닥에 엎드려 다리를 뻗고 발차기만 몇 회 한 것 같다. 진도는 안 나가고 재미는 없고 발차기 하느라 근력은 딸리고... 50분 수업이 길게만 느껴지고 다른 중고급 레일에 있는 사람들만 부러움에 쳐다보게 되고... 그리고 <음파> 수업에 들어갔다. 키패드를 가지고 코로 숨을 내 쉬면서 물에서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정도로 "음~~"그리고 고개를 돌리면서 "파!". 다시금 유년 시절에 그 물 속에서의 트라우마가 떠올랐지만 물과 친해져야지 스스로 되뇌었다. 한 레일에 15명 내외였고 나보다 열살은 젊어 보이는 수영 강사는 그 또래의 늘씬하고 이쁜(생얼이 너무도 생기있고 이쁜) 젊은 회원들에겐 장난도 치고 웃어주고 했지만 그냥 아줌마인 나에게는 그냥 기본적인 코칭만 할 뿐이었다 (이건 물론 나의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를 동반한 오해일런지도 모르겠다).

  

  가뜩이나 진도도 안나가고 재미도 없고 나의 배움의 열정은 처음과 다르게 가라앉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긍정적 의미의 관심(일종의 오지랖)이 있는 나는 자꾸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 중 나와 함께 수업을 시작한 젊은 외국인 남자가 있었는데, 기본 운동 감각이 출중해서인지 진도가 쭉쭉 나가는 것이 내가 보기에도 나와는 다른 속도감이 보였다. 그러면서 나의 자존감도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칼을 들었으니 호박이라도 잘라야 했다. 수영 카페에 가입하고 부지런히 질문도 올리고 수영 동영상도 찾아보고 각종 수영법을 눈으로 이미지화 했다. 그랬더니 조금씩 다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보다 속도는 느렸지만 그래도 출석률 90%이상을 하다보니 꾸역꾸역 중급 코스를 지나게 되고 6개월 정도 지나니 오리발 수업에 들어갔다. 자유형이나 배영에 비해 속도가 영 나지 않던 평형을 막 마치고 그 다음 순서 였다. 꾸덕꾸덕 고무로 된 오리발을 신고 수영장 바깥을 걸을 땐 엉거주춤 너무 어색하고 웃겼다. 그리고 물에 들어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 정말 내가 이렇게 빨라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속도감이 엄청났다. 귀를 스치는 물살이 쏴아아... 바람을 가르는 소리 같았다. 이 거구나! 그 순간 정말 바다 수면 위를 뛰어 올라 기교를 부리는 돌고래가 된 듯 성취감과 행복함이 차올랐다.


  물론 그 이후 나머지 접영까지 마스터 할 때까지 그런 순간은 다시는 오지 않았고, 처음 목표했던 코스를 다 마치고 나의 1년 6개월의 수영 수업은 끝이 났다.


  물론 지금도 스피디하게 돌고래 처럼 유영하진 못하지만(그리고 결정적으로 심폐활량이 부족해 힘있게 길게 치고 나가기가 어렵다) 그래도 어디 가서 기본 수영은 좀 한다는 정도에 만족한다. 처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할 때 기준점을 밖에 두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존감이 뚝 떨어졌었다. 그런데 내 안에 기준점을 딱 찍고 내 자세와 내 문제에 집중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했더니 결국 슬럼프를 극복하고 어느 정도 배움의 성과를 이루었다. 그리고 오리발차기를 한 첫날의 그 환희가 내내 내가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때의 긍정적 동기화가 되고 있다. 그러니 오리, 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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