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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Oct 11.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지렁이의 삶

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생계유지에 대한 걱정으로 가벼워지기는커녕 무언가에 눌린 기분이 든다.


아침 산책에서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땅바닥의 지렁이 사체를 보고, 오늘은 한참 동안 생각을 해봤다.

산책길 중간쯤에 있는 흙 계단을 오를 때 가쁜 숨을 내쉬며 지렁이의 꿈틀거림을 느낀 듯하다.

평생을 꿈틀거리다 저렇게 백주 대낮에 몸을 드러내고 죽어야만 하는 지렁이의 삶에서 나는 무엇을 보게 된 걸까?


꿈틀거림의 모습은 다르지만 인간의 일생 역시 지렁이와 다르지 않다.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평생을 꿈틀거리다 결국은 빈손으로 세상을 뜨게 될 운명을 지닌 인간과 지렁이의 삶에서 무슨 차이를 찾을 수 있을까?

다소 지나치고 극단적으로 생각한다고 비난받을지 몰라도 적어도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렁이와 인간의 일생은 똑같다.


비개인 오후나 다음날 아침에 만나게 되는 지렁이는 꿈틀거림 조차도 없다.

잠시 후에 다가올 개미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예 포기한 건지 미동조차도 않는 지렁이의 모습은 처량해 보인다.

그동안의 꿈틀거림이 이렇듯 무의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마지막 반항을 하듯 그저 꼼짝도 않고 누워 있다.


그동안 살면서 웃고, 떠들고 ,소리치고, 또는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한숨지으며 살아온 인간의 꿈틀거림도 지렁이의 그것처럼 끝나게 되겠지..

하지만...그렇다고해서 지렁이처럼 꼼짝하지 않고 조용히 꿈틀거림을 멈춘다면 그건 또 인간으로서 태어난 축복에 대해 죄를 짓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발아래 지렁이 사체가 하나 있다.

미친 짓처럼 보이지만 그동안의 꿈틀거림에 대해 조용히 그 노고를 치하하며 나의 시선을 끌어 나로 하여금 삶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해 준 그 지렁이에게 감사를 보낸다.

신이 존재한다면 작은 낙엽이라도 살포시 떨어뜨려서 그 지렁이를 덮어 개미들로부터 지켜 주기를 기원하면서 나는 내가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간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하고.. 웃고.. 울며 보내는 삶의 모든 행위가 신이 보기엔 꿈틀거림으로 보이겠지만, 그 속에서 얻게 될 작은 깨달음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큰 울림으로 퍼지길 바라본다.

이게 아마도 지렁이의 꿈틀거림과 인간의 꿈틀거림의 차이가 아닐까?....


오늘도 무언가를 위해 꿈틀 거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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