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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너부 Aug 06. 2021

《고려 무인 이야기》 2권



"...그 이후부터 최이의 이름은 인사발령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제 관직 승진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국왕 위에 군림하는 최고통치자가 국왕으로부터 관직을 임명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이었겠는가. 만일 관직생활을 계속했다면 최이의 정치적 위상은 이전의 무인집권자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최이는 국가의 공적인 관료질서 밖에 초월적으로 존재했다.

최이는 문하시중이라는 수상직에도 전혀 연연해하지 않았다. 이는 그래도 수상직은 차지하고 본다는 태도를 취했던 그의 아비와는 정치적 차원이 달랐다. 그는 수상인 문하시중 자리를 다른 문신관료들에게 미련 없이 양보했다."   - 본문 p 232

 2권은 최충헌의 집권 ~ 강화천도 이전까지의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읽어보니 확실히 최씨가 집권했던 60년은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이 차례대로 집권했던 지난 30년과는 전혀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극단적으로는 이들의 집권을 '무인집권'이라는 카테고리에 넣는 게 합당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중방으로 대표되는 고위 무신 세력과 대립하고 경인년 무신정변 이후 기를 못 펴던 문신 세력을 중용하는 등 확연히 다른 면모가 여럿 보입니다.

 최씨 정권이 이전 집권 세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또 다른 부분은, 잠재적인 경쟁세력을 체계적으로 포섭해서 최씨의 충실한 수족으로 만들거나 미연에 싹을 잘라버리는 작업에 굉장히 능했다는 점입니다.

 당장 이의방, 정중부, 이의민의 경우만 봐도 집권 후에 이제 주류가 되었다는 환상에 빠져 부정축재와 가렴주구를 일삼고 왕실과 무리하게 혼인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등 무절제한 행보를 보이다가 지지세력을 모조리 잃고 무너지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바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최씨 정권은 달랐습니다.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10년 후에야 수상직인 문하시중에 취임할 정도로 집권 초반에는 관료제도의 인사 흐름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행보를 보이며 몸을 사립니다. 물론 이 기간 동안에도 본인의 집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정적 숙청이나 물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축재는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최소한 '선'은 지켰다는 이야기지요. 물론 기반이 공고해지고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후에는 이런 모습도 사라지게 됩니다. 최충헌이 정적을 모두 제거하고 최종적으로 거느린 사병이 3천명 이상이었다는데 누가 감히 대적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수틀리면 바로 반정부 세력으로 변할 수 있는 무인 세력(제도권 내외 불문) 및 문신 세력, 종교 세력까지 차근차근 포섭해서 통치체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기술적인 능란함과 집요함이 눈에 띕니다. 최씨 정권의 만성적인 부정부패와 외세 침입 시에도 정권 보위를 최우선시하는 이기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평가해줄 만한 점이 있다면 정권 유지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탁월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최충헌이 국왕의 등극과 폐위를 좌지우지하던 절대권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200년 후의 이성계와는 달리 어째서 직접 즉위하여 새 왕조를 개창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도 2권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몽항쟁과 강화도 천도 이후의 최씨 정권을 다루는 3권까지 읽어봐야 어렴풋이 실마리가 보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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