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로 찾아온
마흔 아들의 슬프고, 아픈 마음
2017년 11월의 오후 4시!
회사에서 다음 주부터 진행될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올해 초에 진행했었던 프로젝트에 이어서 진행되는 후속 사업이었다. 당시 우리가 제안한 내용 중 하나를 현업에 적용하는 것이어서 그 중요성은 남달랐다. 어쨌든 이번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이전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수집한 자료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고객사에서 받았던 자료, 서비스가 이뤄지는 현장을 직접 다니면서 수집한 자료, 시장과 고객이 트렌드 확인을 위해 수집한 2차 자료 등 하나하나가 성공적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서는 너무나 중요한 것들이었다.
아침 9시부터 시작했던 자료 리뷰가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이전 컨설팅에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자료가 이번 프로젝트에선 핵심자료가 되는 것들이 많아서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해 가면서 리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보고 있던 자료를 잠시 내려놓고, 울리는 전화기를 보았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평소 잘 전화를 하시지 않는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기에 몹시 궁금했다. 무슨 큰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아버지는 160cm이 조금 되지 않으시는 분이다. 몸무게는 50kg 남짓 될까 싶다. 그렇다 아주 작으시고, 여윈 몸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거기에다가 머리카락은 거의 다 빠지셨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은 검은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 하얗다. 다행히 일흔아홉이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으시다. 그 연세의 동네 어르신들과 비교할 때 건강하신 모습을 뵐 때마다 행복하다고 느꼈었다.
아버지에겐 나를 비롯해, 한 명의 형과 세 명의 누나를 자식으로 두셨다. 2남 3녀를 두신 아버지. 어떻게 다섯이나 되는 자식을 키우고, 교육을 시키셨는지 아버지의 아들인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놀랍다. 아니 놀라움을 넘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집안의 장남인 형, 셋째 누나 그리고 막내인 나를 대학까지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셨고, 집안의 맏이인 큰 누나와 둘째 누나는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한집에서 대학을 3명이나 보낸 다는 것은 요즘도 힘든 일이다. 그런데 시골에서 3명이나 대학을 보냈다는 것은 정말 상상 이상의 노력과 마음가짐이 필요한 일이다.
아버지는 넉넉한 땅을 가지신 것도 아니었다. 땅이라고 해봐야 다섯 마지기도 되지 않는 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다섯 마지기 논에서 생산하는 쌀이라고 해봐야 일곱 명의 식구들이 1년 동안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렇다고 직업이나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계신 것도 아니었다. 대나무를 활용하여 각종 죽물(부채, 젓가락 등)을 생산하는 큰아버지의 가내 수공업을 조금 도와주시고, 수고비 정도만 받으셨으니 더 놀라울 뿐이다.
아버지의 곁에서 20년을 넘게 봐 왔지만, 아버지에겐 정말 특별한 소득이 없으셨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섯 명의 자녀를 키우고, 교육시킬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다섯 명의 자녀들이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것도 지리산 언저리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직도 자신의 무능력으로 큰누나와 둘째 누나를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시고, 미안해하시는 분이다. 술 한잔 걸치시면 지금도 큰누나와 둘째 누나를 향해 이 말씀을 빠뜨리지 않으신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 아비가 못나서, 너희를 공부시키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집에서 아주 엄격하신 분이셨고, 동네에서도 마찬가지셨다. 아버지는 늘 어른에 대한 공경과 예절, 정의와 배려를 아주 중요시하셨다. 그래서 자식들의 버릇없는 행동이나, 잘못된 일은 일절 용서하지 않으셨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공경과 예절, 정의, 배려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크게 화내셨고, 크게 질타하셨다. 그 모습은 언제나 어린 나에겐 너무나 크고, 무서운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그 가르침 때문에 우리는 늘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했고, 예절 바른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사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주 말썽쟁이였다. 또래들 중에선 흔히 말하는 골목대장이었다. 온갖 동네의 문제라는 문제엔 언제나 내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이를 믿지 않으셨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유치원을 다녀온 후 오후 4시에 동네 또래들을 다 모았다. 저녁에 수박서리에 대한 모의를 위해서였다. 어느 수박밭을 목표로 할 것인지, 몇 시에 서리를 할 것인지, 서리하는 과정에서 누가 어디서 망을 볼 것이며, 누가 어떤 경로로 들어가 몇 개를 서리할 것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모의했다. 실행시간은 저녁 8시로 했고, 7시 30분에 동네 빨래터에서 다시 모이자는 말과 함께, 단단히 입단속을 시키고 꼬마들의 모의를 끝냈다.
7시 30분이 되어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다섯 명이 모였다. 오후에 모의할 때 일곱이었는데, 두 명이 나오지 않았다. 둘 다 망을 보기로 했던 녀석들이었다. 불가피하게 계획을 수정했다. 망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먹고 싶은 수박 개수를 많이 줄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망을 내가 보기로 했다. 빨래터에서 수박밭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릎까지 오는 5미터 넓이 정도의 개울을 건너야 했다. 내가 먼저 앞장을 서서 건넜다. 이어서 한 명, 한 명 줄지어 건넜다. 마지막 녀석이 개울을 건너다가 넘어졌다. 옷이 다 젖었다. 그 녀석이 울기 시작했다. 건너편의 수박 밭주인이 눈치챌까 봐 녀석의 입을 막고, 귀에다가 속삭였다.
“조용히 해!”
수박밭의 원두막은 여전히 고요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계획했던 수박밭에 가까이 와서 다시 한번 수박밭 진입경로를 자세히 알려주고, 설명했다. 나는 수박 밭주인의 원두막이 잘 보이는 곳에서 망을 보았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이 천천히 수박을 서리하러 밭으로 들어갔다. 한 7분의 시간이 지나 한 명, 두 명, 세 명이 돌아왔다. 그런데 마지막 녀석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원두막 주인이 플래시(랜턴)를 녀석이 오는 길목을 비쳤다. 딱 걸리고 말았다. 주인이 원두막에서 큰소리로 소리쳤다.
“뭐야~이 녀석!”
주인은 원두막에서 뛰어 내려와 그 친구를 잡으러 달려갔다. 뒤에 있던 3명은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다.
“뛰어”
친구 녀석들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도망갔다. 나는 여전히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친구가 잡혔다. 주인이 그 친구를 크게 혼내는 모습을 보았고, 그 친구는 마냥 울고 있었다. 다행히 그 친구는 입이 무거워서 우리를 고자질하지는 않았다. 고자질하지 않는 친구의 그 모습을 본 이후에야 나도 조심조심 그 자리를 벗어났다. 30분쯤 지나 왠지 궁금했다. 그 친구도 궁금했지만, 우리를 혹시나 고자질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9시가 넘어 집을 나가려는데 아버지가 이 시간에 어딜 가냐고 물었다. 나는 친구 집에 간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불과 셋집 건너의 집이라 아버지는 걱정도 하지 않으셨다. 친구 녀석의 집에 수박 밭주인이 함께 있었다. 친구 녀석을 잡아서 따지러 오신 것이다. 잘못이 없는 친구와 친구 아버지가 나 때문에 혼나는 것 같았다.
나는 수박 밭주인께 다가가서 사실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모의도, 시킨 것도 모두 나이며, 친구는 잘못이 없다고 모두 실토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친구의 아버지도, 수박 밭주인께서도 나를 혼내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친구를 감싸주는 나를 칭찬해 주시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OO이네 아들이, 그러면 그렇지”
“친구의 잘못까지 지(자기)가 다 했다고 하는 놈이네 그려”
모두 아버지의 덕분이었다. 아버지의 무서운 집안 교육이 동네에서 소문이 났었고, 그 때문에 나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 잘하는 착한 아이였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전화를 다 주신 것이다.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나와 아버지의 대화가 오고 갔다.
아들(나)“둘째 아들입니더”
아버지 “잘 지내고 있나?”
아버지의 목소리에 노인의 냄새가 가득하다고 느꼈다. 이빨 사이로 새는 발음, 가래가 섞인 듯하고, 힘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아버지의 건강이 염려되어 물었다.
아들(나) “아부지, 어디 편찮으십니꺼?, 목소리가 안 좋네예~”
아버지 “궤~안~타”
아들(나) “요새 많이 추워졌어예~, 몸 조리 잘 하시고 예~, 근데 정말 무슨 일 이썹니꺼?”
아버지 “일은 무신 일, 일 없다. 니도 잘 있는지, 손주도 잘 있는지 궁금해서 해봤다 아니가”
아들(나) “지하고, 아들은 잘 있어예~, 아가 감기기운이 쫌 있지만”
아버지와 서로의 건강 잘 챙기라는 말을 주고, 받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화기는 끊었지만, 생각은 끊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내 걱정은 이제 연결되어 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내겐 너무나 크셨던 분이며, 무서우셨던 분!’
‘목소리 하나에 벌벌 떨어야 했던 분!’
‘그분이 바로 내 아버지인데’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아버지의 목소리에서도’
‘이젠’
‘노인이시구나!’
나에게 ‘키다리 아저씨’였던 분이 어느 사이 ‘노인’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분이 되셨다는 생각에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