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책을 읽다가 찾아온
마흔 아들의 슬프고, 아픈 마음
아침 일찍 회사에 나왔다.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여의도 공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6인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블라인드를 걷었다. 아침 햇살이 동쪽 창을 타고 들어온다. 한여름이라 해도 아침햇살은 언제나 따스하고, 기분 좋게 한다. 나는 햇살을 온몸에 담고서, 공원이 가장 잘 보이는 창가로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공원을 내려 다 보았다. 공원은 온통 푸르다. 나무도, 잔디는 그린색으로 푸르고, 하늘은 블루색으로 푸르다. 그 흔하던 미세먼지와 황사도 없는 화창한 여름날이었다.
공원도 사무실처럼 아직은 한산했다. 주말이면 늘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인데, 한가한 그곳이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같은 장소지만, 다른 느낌을 주는 공간, 그리고 시간’
어깨에 메고 있던 백팩(backpack)을 내려놓고, 지프를 열었다. 가방 속에는 어제 퇴근길에 서점에서 구입한 책 한 권만이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다. 책을 꺼내 들었다.
‘소설책’
그렇다. 나는 일요일 이른 시간에 책을 읽기 위해 회사에 나왔다. 지난 금요일 평소와 다르게 조금 일찍 일을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차에서는 늘 듣던 FM 89.1이 켜져 있었다. 라디오에서 잔잔한 DJ의 목소리가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사랑하기 좋은 날’
라디오를 한 10분쯤 들었을까? 어느 주부의 사연이 소개되고 있었다. 따뜻하고, 잔잔한 DJ(이금희)의 목소리를 더한 사연은 깊이를 더했고, 생명력이 불어넣어지고 있었다. 사연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결혼을 한 이후 20여 년이라는 시간을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 처음 몇 년은 남편을 중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아이를 중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어느 사이 20년!,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찾아온 여유. 그런데 그 시간을 오로지 자신을 돌보고, 자신을 찾는데 쓰고 싶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연이었다.
사연을 듣는 동안 어느 주부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20년이라는 시간과 그 시간 동안 변해가는 한 여성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부드러웠던 손이 거칠어지고, 땡땡했던 얼굴에 깊은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가고, 검게 윤기로 가득했던 머리카락은 조금씩 하얗게 물들어가는 모습!
어느 주부의 그림이 눈앞에서 완성되어 갈 때쯤 사연을 다 읽은 DJ의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자신의 시간을 가지세요.’
집에 도착하기까지 DJ의 그 멘트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
‘나만의 시간을 어떻게 가져야 하지?’
‘그냥 혼자 있는 것이 자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일까?’
‘커피 한잔을 마시는 시간이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일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그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을 이어가게 했다. 그러다 문득 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짐했다.
‘내일 서점에 가자’
다음날 토요일 어린 아들을 데리고 집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에 들렀다. 아들의 손에 장난감을 들려주었다. 아주 신나 했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조그마한 미니 자동차를 사줬기 때문이었다. 신나 하는 아들의 나머지 한 손을 잡고서 서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었다. 서점은 한산했다. 요즘 책을 읽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니, 장난감, 옷, 화장품 가게에 비해 눈에 띄게 적었다.
서점엔 신관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소설, 자기 계발서, 경영서적, 인문학, 예술, 문화, 철학, 심리학 등 그런데 유난히 나의 시선을 끄는 책이 있었다. 2013년 4월에 출판된 박범신의 “소금”이라는 책이었다. 그냥 집어 들었다. 책 뒤 표지에 작성되어 있는 추천 글도, 내용도 펼쳐보지도 않고 계산대로 가져갔고, 결제해 버렸다.
나는 그동안 책만큼은 아주 신중하게 구매했었다. 사고 읽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2년 전에 호킹지수라고 발표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호킹 지수란 책을 구매해 놓고, 구입한 책을 모두 다 읽는 사람의 수를 지수 화해서 발표하는 지수(index)이다. 호킹지수 발표 결과에서 놀랍게도 베스트셀러도 완독 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20%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즉 80%의 사람들은 책을 구입해 놓고, 다 읽지 않지도 않고 그냥 책꽂이에 꽂아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호킹지수 결과를 알게 된 이후 나는 더욱더 책을 신중하게 고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 내가 내용도, 다른 사람의 평가 글로 한 줄 읽지 않고 산 것은 놀라운 일이었으며, 그렇게 구입한 책은 2년 동안 유일했다.
아들과 집에 돌아오는 길이 괜히 뿌듯했다. 아들은 손에 장난감을 하나 들어서인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나는 아들의 신나 하는 모습과 함께 아들의 손을 붙잡고 있는 나의 반대편 손에 책을 들고 있어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나의 그 미소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다. 행복과 함께 고민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책과 함께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나와 오래간만에 주말을 함께 보내게 아들과 아내,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집안일(집안 청소를 비롯해 온갖 사소한 것들)로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지?’
한참을 고민하다 아들과 아내에겐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거짓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일 회사에서 해야 될 일이 있다고 하자!’
나와 놀고 싶어 하는 어린 아들과 가족과 오래간만에 즐거운 주말을 기대하는 아내를 뒤로하고서 만든 나만을 위한 소중한 시간, 일요일 하루였다.
박범신의 소설 ‘소금’이라는 책을 펼쳤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설은 어느 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왜 죽었을까?’
한 아버지의 죽음의 이유를 밝히기 위해 여러 아버지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갔다. 내용이 죽음의 이유를 밝히는 추리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소설책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삶의 무게를 지는 다양한 아버지들이 삶과 모습이 그려졌고, 그 아버지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가정으로부터 소외되는 모습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는 존재로 인식하는 자식들!
돈을 벌기 위해 온갖 굴욕을 견디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도 꿈이 있었다.
책을 덮었다. 오후 2시가 넘었다. 책을 펼친 지 5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8월의 오후 햇살은 무척이나 강했다. 장장 5시간을 화장실도 한번 가지 않고, 책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책을 덮자마자 햇살이 너무 강하다고 느껴졌다. 일어나 블라인드를 다시 내려서 따가운 햇살을 차단했다. 에어컨에서 찬바람이 세차게 나왔지만 소용없었다. 에어컨 바람보다 더 강한 더위가 기성을 부렸다. 입고 있던 옷은 어느 사이 축축해졌다. 등줄기를 타고 한 방울의 땀이 흘러내렸다. 소변이 마려워 회의실을 나와 화장실로 행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버려선지 배가 고팠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서 손을 씻었다. 손에 느껴지는 차가운 물의 느낌이 좋았다. 가볍고, 상쾌한 기분으로 회사 건물에 있는 분식점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오늘도 늘 먹던 김치볶음밥이었다. 먹은 밥을 소화도 시킬 겸 여의도 공원으로 나갔다. 8월의 무더운 더위 때문인지 여전히 공원은 한산한 편이었다. 공원의 그늘진 벤치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녹색의 푸르름이 8월의 강한 햇살을 막아 주었다. 간간히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추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은 8월의 하늘을 그늘이 드리운 벤치에 앉아 올려다보니 5월의 푸르른 하늘에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훨씬 나은 느낌이 들었다. 그 지긋지긋하던 황사, 미세먼지가 오늘은 기성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잠시 눈을 감았다. 조금 전 읽었던 박범신의 소설 ‘소금’을 떠올렸다. 박범신 작가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아버지”, “죽음”, “소외”, “돈”, “굴욕”, “꿈”이라는 단어를 이렇게도 강렬하고도,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을까?
순간, 소설 속에 등장한 아버지들의 과거와 현재에서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버지는 우리 5남매를 위해 하루하루 어떻게 사셨을까?’
‘나는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고, 어떻게 대했었나?’
아버지에 대한 나의 그릇된 생각, 그릇된 행동들이 하나, 둘, 셋, 넷, 늘어만 갔다. 얼마 생각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셀 수 없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의 눈에 액체가 고이기 시작했다.
‘햇빛 때문일 거야!’
핑계대면서 두 눈을 쓰~윽 닦았다. 그리고 벤치에서 일어나 여의도 공원 연못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소설에서 언급되었던 ‘아버지’, ‘꿈’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궁금했다.
‘아버지에게도 꿈이 있었을까?’
‘아버지가 꿈꾸신 그 꿈은 무엇일까?’
그 꿈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아들로 산지 43년 하고도, 3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이기적인 삶을 살았구나!’
‘참으로 아버지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했구나!’
후회되었다. 그리고 연못을 향해 속으로 크게 소리쳤다.
아버지, 당신도 꿈을 가지고 계셨겠죠?
아버지, 43년 동안 당신의 꿈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당신의 꿈을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네요. 아버지, 오늘에서야 물어봅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