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보낸 부고 소식에 찾아온
마흔 아들의 슬프고, 아픈 마음
2017년 3월 2일 오후 4시 38분!
지난 2월 말부터 앞으로 투입될 프로젝트 기획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프레임웍(Framework)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프레임웍의 각 단계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며, 발생 가능한 리스크(Risk)의 유형과 내용은 어떤 것인지 등 방법론에 대한 기획에서부터 주어진 기간 동안 가용한 예산 범위 내에서 인력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등 기획내용에 맞춰 작업 분할 구조도(WBS, Work Break Down Structure)와 수행계획서를 작성했었다.
오늘은 프로젝트 팀을 꾸리고 첫 번째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의 주된 목적은 그동안 작성했던 수행계획서와 작업 분할 구조도(WBS)의 내용을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회의는 사뭇 진지했다. 공유하고, 설명하는 내용이 ‘프로젝트에서 달성해야 될 목적과 목표’, ‘목적과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수행 활동과 방법’, 그리고 ‘팀원 개개인의 역할분담’까지 내용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팀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는데 나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회의를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객사가 보낸 것인지, 아닌지 발신자만 확인했다. 문자의 발신자는 고등학교 동창회 총무를 맡고 있는 친구였다. 문자에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회의를 진행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나를 포함해 4명으로 구성되었다. 팀원들 중 그동안 나와 호흡을 맞췄던 사람은 한 명이뿐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나와 호흡도 맞춰본 적 없었고, 심지어 유사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팀원들에게 이번 프로젝트의 기본 모듈이 되는 조사 모델을 구성하는 측정 차원(Dimension)과 요소(Component), 항목(Item), 척도, 지수 산출방법부터, 조사대상, 조사방법 등 조사설계 내용까지 조사방법론을 설명하느라고, 회의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다. 새롭게 참여한 두 사람은 어려워했다. 내가 설명한 많은 부분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사실 한 번의 설명으로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나서 스스로 학습하는 것과 설명도 듣지 않고, 스스로 학습하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는 나도 힘들었지만,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약 1시간 30분 정도의 모델 설명이 끝나고, 새롭게 참여한 두 사람에게는 과제를 주었다. 앞으로 3일 동안 오늘 설명한 조사 모델과 조사방법론을 학습하고 나서 브리핑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화장실을 갔다. 가는 길에 회의 중에 왔었던 친구의 문자가 기억났다.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읽지 않은 문자는 총 4개였다. 회의 중에 3개의 문자가 더 왔던 것이다. 친구의 문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광고 문자들이었다. 대리운전, 대출, 보험사의 안전운전 문자였다. 언제부턴가 광고 문자들이 하루에 평균 15개 이상 쏟아지고 있다. 아무리 스팸문자 처리를 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스팸 처리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어느 사이 그 폭탄 스팸들에 나는 익숙해져 있었고, 무감각해져 갔다. 마지막 읽지 않은 친구의 문자를 봤다. ‘[Web 발신] [부고]’라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뭐지?, 부고 문자가 요즘 꽤 많이 오네.’
언젠 부턴가 부고 문자가 많이 늘기 시작했다. 부고가 오기 시작한 시점들을 떠올려 보니 마흔 정도였던 것 같았다. 마흔을 기점으로 슬픈 소식을 알리는 부고 문자가 부쩍 늘었던 것이다.
‘그동안 수차례 부고 문자가 왔었구나!’
친구가 보내 부고 문자를 열어 보았다. 발걸음이 멈춰졌다. 문자의 내용을 보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문자 내용을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읽어 보았다. 고등학교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리는 내용의 문자였다.
친구 아버지의 부고!
[Web 발신] [부고]
안타까운 소식을 전합니다.
부산 동기회
김 OO 친구 부친상
■ 빈소 : 진주 OO병원 장례식장 OO호
■ 발인 : 3월 0일
■ 단체 조문 : 3일(금) OO시 장례식장 앞 집결
■ 부의 계좌 : 농협 예금주 : OO고등학교 OO회 동창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밀려오는 감정이 파도를 만들어 갔다.
‘친구의 이별’
‘친구의 슬픔’
‘친구의 아픔’
‘친구의 상실감’
그때 화장실을 같이 가던 팀원이 말했다.
팀원“위원님! 왜 그러세요?”
나 “아냐, 아무것도”
화장실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최근의 부고 소식들을 하나, 둘 떠올려 봤다. 대부분 내 또래의 사람들로부터 온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내뱉고 있었다.
‘마흔이라는 나이!’
‘마흔이라는 나이를 가진 우리의 부모님들의 연세는 어떻게 되지?’
‘적게는 60대 후반부터 많게는 70-80대 이시구나’
그랬다. 마흔의 나이를 가진 우리는 70-80세 정도의 연세를 가지신 부모들을 모시고 있었던 것이다. 이-삼십 대의 나이였을 땐, 여전히 우리의 부모님들은 왕성한 사회생활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의존하기도 했고, 때론 직장생활의 어려움과 난관을 헤쳐나갈 지혜를 그분들에게 구하기도 했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는 우리의 행동과 말 때문에 그분들에게 잔소리도 듣고, 혼나기도 했었다.
이-삼십 대의 우리에게 있어 부모님은 ‘절대 권력자’였으며, 망망대해의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 길을 가르쳐 주는 ‘등대와 방파제’ 같은 존재들이셨다.
마흔의 숫자에 우리가 접어들자마자, 우리는‘절대 권력자’로써의 위풍당당함과 ‘등대와 방파제’ 같은 부모님의 위상을 체감하는 것이 힘들어졌고, 그분들의 잔소리 또한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심지어 우리의 곁을 한 분, 두 분 떠나고 계신 것이 현실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세워 주신 분’
‘사회라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가지 않도록 등대가 되어 주시 분’
‘많은 풍파와 격랑 속에서 방파제가 되어 주신 분’
마흔이 된 우리는 그런 부모님을 떠나보내야 하는 곳에 서 있는 것이다.
떠나보내 드림에,
떠나보내 드릴 준비를 해야 함에,
아프고,
고통스럽고,
죄스러운,
마흔!
이젠,
홀로 이 거친 세상에 방향을 잡아야 함에,
많은 풍파와 격랑을 스스로 이겨내야 함에,
외롭고,
두렵고,
슬픈,
마흔!
아버지!
내가 기억하는 울 아버지!
울 아버지 얼굴,
울 아버지 손,
울 아버지 어깨,
울 아버지 등,
울 아버지 발걸음,
울 아버지 목소리,
울 아버지 삶.
하나하나 떠올리다, 눈가가 적고, 어느 사이 볼을 타고 흐르는 한줄기 눈물의 정체는 나도 언젠가는 친구처럼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슬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