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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Jun 14. 2024

[사업과 일] 일의 기준이 그 회사의 일하는 시스템

회사 다닐 때는 시키는 대로 일해서 몰랐지만 이제는 알게 된 것

우리는 늘 같은 문제를 계속해서 마주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에만 익숙해져 간다.

내가 다닌 회사는 조직의 모든 업무가 20여년간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래서 일은, 대체로 정해진 방법 내에서 정해진 과정대로 정해진 결과를 내면 되었다. 물론 그 일의 과정에서 숱한 문제를 마주하지만 그 해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 교육 업무를 진행하는 나와 직무/리더십 교육의 대상자인 구성원들이 교육을 생각하는 관점은 달랐다. 관점은 달라도 교육을 받게 해야 하는 나로서 가장 빠른 방법은 '누구'의 지시와 요구인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교육 장소에 행여 '그분'이라도 나타나면 못 온다던 그 바쁜 분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앉아 있었다.


#.  "방법이 이거 밖에 없어?", "뭐라도 새로운 가져와 봐"

회사의 일에서 방법 바꾸는 것을 쉽게 말한다. 이렇게 방법이나마 바꾸고 새로워야 우리가 일을 한다는 증거일까? 뭐든 바꾸는 것도 오래 걸리지만, 작은 것이라도 바꾸어 '그분' 맘에 들면 일 잘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늘 일 자랑을 달고 산다. 뭐라도 먹혀야 하기에.


#.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게 일이지"

내 경험상 이렇게 말하는 일들은 과정은 차치하고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란 일들이었다. 실제로 영업본부 워크숍에 갑자기 지시를 받아 브랜드 로고 박힌 벽걸이 시계 5개를 반나절 만에 제작했었다. 비용이 어마어마 했다. 워크숍 후 영업본부 5개 지사에 시계를 전달하는 '그분'에게 하나의 상징(의식)이 되면 그 일의 이유나 과정, 방법, 비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분(나의 상사들)'이 해결한 것이고 나는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 뿐이었다. 그래서 여러 해결책이 있어도 실행에 옮기는 나의 시간과 노력,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것은 '그분'이 원하는 방법을 맞추는 것이었다.


그럼, 문제를 해결하는데 빠른 방법에만 더 집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이 글을 쓰는 나도 아직 잘 정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a) 누구도 그 빠른 방법을 선택하라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그 방법을 선택하고 있었다. 조직에 들어가면서 먼저 있던 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를 보며 나도 모르게 따라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 듯 생각했다. 누가 배우고 똑똑함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데 b) 나의 상사 어느 누구도 어떤 일의 지시에 앞서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 일이 우리의 고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일이 우리의 사업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 그래서 왜 하고 바뀌는 것인지의 설명을 해준 적이 없다. 또한 그것을 물어보는 직원들도, 나도 없었다.


처음부터 c) 대부분의 일을 나보다 경험이 많고, 경력이 많고,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일을 배우기 때문에 그 사람이 더 많은 답을 알고 있다고 믿게 된다. '옆 직원이 혼나는 걸 보니 상사의 말대로 하는게 맞는 거지.' 


결국, 일에서의 사고 회로가 '일의 정답 = 많이 알고, 경험 있는 사람 => 대표', d) '일의 기준 = 대표'가 되어 버린 것이고 그렇게 믿어 버린다. 나도, 나의 상사인 팀장도, 팀장의 상사인 임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e) 일의 기준이나 답이 회사의 일하는 방식(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되었고 시스템으로 굳어 버렸다. 그래서 대표가 10여명이 바뀌었어도 한번도 우리 회사는 고객을 정의하며 일하지 않았다. 왜? 일의 기준이 대표였으니까. 또한 방법 외에 문제 원인을 찾아 해결할 사람 역시 대표 또는 오너였기 때문이다. 래서 나를 포함해 조직의 일의 기준은 '나의 상사'였다.


그 기준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문제를 남겼을까?

당장의 보이는 문제는 빠르게 해결하기도 한다. 또한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일의 기준인 대표 입장에선 속 시원하기도 하다. 결국 우리도 그로 인해 편해지니 말이다. 그런데, 그래서 진짜 그 문제가 해결 되었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늘 방법만 바꾸니 더이상 댈 방법이 없기도 했다. 또한 a) 일의 기준 = 대표가 되어 버린 순간부터 우리의 회사는 더이상 고객의 문제 보다는 대표의 문제를 더 많이 생각한다. 일 관련 대화의 목적어에 고객보단 대표란 말이 더 많이 등장했고, 대표의 안위가 더 중요한 적도 있었다. 대표도 스스로 자신의 원칙을 깨는 일도 생긴다. 그렇다 보니 b) 회사가 고객을 위한 일에 일관성을 갖기도 힘들며, 갖더라도 유지 또한 힘든 일이 되어 갔다. 그래서 c) 점점 고객의 외면이 외면인 줄 모르고 지나고 나서야 사업 성장의 정체를 깨닫고 다시 쇠퇴기, 연명기를 늘 지나고서야 알게 된다. (어쩌면 아직도 모를지도)


그래서 부끄럽지만 일을 하는 10여년 가까이 우리 브랜드의 고객이 누구인지 그 고객은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리 회사의 음식을 전 국민이 사먹지 않음에도 모든 사람이 우리의 고객이 되었다. 그러다 아무도 우리의 고객이 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회사가 대부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일을 배우거나 가르친다. 나의 책상 위 달력에 이번 달의 'To Do List'는 무수히 많지만, 왜 하는지 그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왜 설명해야 하나 고민이 될지도 모르겠다. 늘 해왔던 일이고, 해야 할 일이고, 하기로 한 일이니 말이다.


장인정신이 극도로 요하는 산업이나 분야가 아님에도 여전히 우리는 한 사람의 경험에 상당한 의존을 한다. 어디에도 '왜?' 해야 하는지, 이 일이 어떤 일과 연결되어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보지 못한다. 그 순간의 설명이나 방법을 놓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을 모두 같이 묻어버리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시스템이란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일의 기준이 '나의 상사(사람)'가 되어 일하는 것도 하나의 시스템이다.

나도 일하는 시스템의 일부이다. 조직은 여러 부서의 직원들이 각자 맡은 업무를 통해 일을 한다. R&D, 구매, 마케팅, 영업, 이들을 지원하는 재무, 회계, 인사의 업무가 각기 맡은 책임/역할로 수행된다. 만약 이 연결에서 상사가 일의 기준이 되면 어떻게 될까? 그 기준이 일하는 기준이 되어 '기준(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따라 일이 바뀌게 되고 행동 패턴이 굳어 버리면 그 또한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 버린다. 또한 그 안의 각자 맡은 역할 보다 '기준(사람)'에 의해 일이 되기 때문에 해 주어야 하는 일을 놓치거나 연결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다 그 시스템 속 어느 누구도 일을 하는, 되는 이유를 고민하지 않게 된다. 회사에서 일을 해 보면 알겠지만, 시스템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일시적이나 일회적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생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해결하는 문제는 일시적이나 일회적 문제만 해결했다.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일의 기준이 '상사(사람)'되어 버리면 그 기준에 대한 의심도 못하지만, 감히 그 기준이 문제라고 느끼거나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일의 기준이 그 회사의 일하는 시스템이다.

일의 기준이 바로 서지 않으면, 늘 시스템의 일부인 상사, 나, 직원들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 기준이 '사람'이 되면 사람이 바뀔때마다 그 일하는 시스템이 일관성있게 돌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일관성이 '사람'에 의해 꾸준히 돌아간다 볼 수 있지만, 이전의 경험을 통해 그 시스템은 이미 시장과 고객으로부터 외면 당했다.


일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일의 'Why'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고, 명확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해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 해결하거나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직의 일과 사람을 모두 관리하는 업무인 HR이 보다 사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하는 시스템이 최소한 '사람'의 기준으로 작동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HR이 보다 주도적으로 조직의 모든 일의 기준이 사업으로부터 시작해, 고객을 위한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그 기준을 토대로 인사시스템 등의 하위 시스템을 정렬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의 명확한 이유가 '고객'이 되는 것이고 그 고객을 위한 생각이 일에 자연스레 흐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모든 조직이 흔히 얘기하는 '고객 중심' 가치이다.


HR에서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개선할 때 대부분 조직문화 진단을 하지만, 그 전에 우리 조직이 과연 사업을 기준으로 고객을 위한 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HR이 애써 진행한 진단이 요식행위로 끝나지 않으려면 조직이 고객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일하고 생각하는지, 그렇게 되어 가도록 만들어 주거나 줄 수 (대표를 구워 삶더라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부서가 우리가 HR의 '실험대상'이냐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있기도 하다. 정작 일의 기준은 안 바뀌는데 회의가 1시간이나 2시간이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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