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번뇌를 줄이는 요가법
2.1 tapaḥ-svādhyāya-īśvara-praṇidhānāni kriyā-yogaḥ
고행, 자기 학습, 신에 대한 헌신이 크리야 요가이다.
요가수트라 2장은 크리야 요가로 시작한다. 크리야는 '실제 수행'이라는 뜻이다. 1장 '사마디 파다'가 상급 수행자를 위한 이론과 결과를 다루는데 반해 2장 '사다나 파다'는 마음의 동요가 심한 일반 수행자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멀게만 느껴지는 깨달음이나 특별한 체험보다, 지금 이 삶에서 마음을 어떻게 다루며 살아갈 것인가를 다루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을 수 있는 수행방법이다. 이는 2장 후반부에 나오는 요가의 8단계, 아쉬탕가 요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해당하는 일종의 준비 운동 단계이면서 동시에 현실에서 고통을 다스리는 실용적인 방법론이다.
요가수트라에서 크리야 요가는 세 가지 요소로 설명된다.
타파스는 흔히 고행이라고 번역되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고행과는 좀 다르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 몸의 반응이나 말, 마음의 습관적인 반응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힘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동으로 반응한다. 불안하면 피하고, 화가 나면 쏟아내고, 귀찮으면 미루고, 불편하면 도망친다. 이런 반응은 너무 익숙해서 선택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타파스는 바로 그 순간에 잠시 멈추는 힘이다. 즉각적인 반응 대신 한 번 더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태도다. 하기 싫어도 필요한 일을 하고, 감정이 올라와도 그대로 휩쓸리지 않는 것. 오래된 습관을 넘어서는 내적 열기라고 할 수 있다.
다섯 가지 번뇌 중, 라가(쾌락)와 드베샤(혐오)가 약해지도록 한다.
흔히 자기 공부, 자기 탐구로 번역된다. 단순하게 무언가를 습득하는 일이라기보다 ‘자신을 읽는 일’에 가깝다. 왜 나는 늘 같은 문제 앞에서 흔들리는지, 왜 특정한 말에 유독 상처받는지, 왜 어떤 감정은 반복해서 되살아나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내 반응의 원인이 삼스카라 때문인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사실인지 해석인지를 보는 과정이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남 탓만 하던 일 안에 내 두려움이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고, 옳다고 믿었던 감정 안에 집착이 있음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자기 이해는 늘 편안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타인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다. 내 안의 욕망과 두려움을 알게 될수록 타인의 행동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다섯 가지 번뇌 중, 무지(아비드야)를 제대로 보게 만들며 자의식(아스미타)를 느슨하게 한다.
보통 신에 대한 헌신이라고 번역되지만, 이는 특정 종교의 의미로만 보지 않는다. 내 힘으로 다 통제할 수 없는 삶을 더 큰 질서에 맡기는 태도에 가깝다.
우리는 많은 것을 이해하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삶에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변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 모든 것을 움켜쥐려 하면 괴로움은 더 커진다. 이슈와라 프라니다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대한 집착은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다섯 가지 번뇌 중, 자아에의 집작(아스미타)와 생존에의 집착(아비니베샤)를 약해지게 한다.
1.12 abhyāsa vairāgyābhyām tat nirodhaḥ
마음작용은 수행(아비야사 abhyasa)과 집착을 내려놓는 이욕(vairagya)에 의해 억제된다.
아비야사는 반복 수행이다. 마음이 흐트러져도 다시 돌아오는 힘이다.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잊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다. 크리야 요가의 세 가지 요소 중에 타파스와 스바디야야가 이에 해당한다.
바이라기야는 내려놓음이다. 붙잡고 있는 것을 조금씩 놓는 힘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결과에 대한 강박,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집착을 알아차리고 풀어내는 것이다. 크리야 요가의 세 요소 중에 이슈와라 프라니다나에 해당한다.
수행은 반복과 내려놓음이라는 이 두 가지의 반복에 더 가깝다. 다시 돌아오고, 조금 놓아주는 일. 그 단순한 연습이 마음을 바꾼다. 이는 요가 전체를 관통하는 대원칙이다. 크리야 요가는 이 원칙을 세 가지 구체적 행동으로 세분화했다.
인상 깊었던 또 하나의 지점은 수행이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타인을 향한 마음 역시 중요한 수행으로 다루어졌다.
요가수트라에서는 사무량심(자비희사)를 말한다.
• 자: 행복을 바라는 마음
• 비: 괴로움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
• 희: 타인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
• 사: 치우치지 않는 평정심
사무량심은 자신을 비워나가야만 가능하다. 타인을 향한 마음을 바꾸는 과정에서 내 안의 질투, 분노, 편애, 비교심도 함께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희’, 타인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은 쉽지 않다. 질투심이 있다면 타인의 기쁨을 함께할 수 없다.
보살심은 흔히 '깨달음을 향한 마음'이라고 번역되지만, 정확히 말하면 '모든 존재를 돕기 위해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깨달음’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이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모든 존재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수행을 시작할 때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덜 괴롭고 싶어서. 내 마음이 좀 편해지고 싶어서.'
보살심의 출발점은 완전히 다르다.
'나 하나 편해지는 걸로 충분하지 않다.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날 때까지 함께 가겠다.'
이렇게 마음을 넓히는 순간, 기준이 달라진다. 내 감정 하나에 매달리던 시선이 훨씬 큰 방향으로 이동한다.
1.34 prachchardana-vidhāraṇābhyāṁ vā prāṇasya
호흡을 내쉬고(배출하고) 멈추는 것에 의해 마음이 안정된다.
1.35 prachchardana-vidhāraṇābhyāṁ vā prāṇasya
감각 대상에 대한 미묘한 인식이 일어나면, 그것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반이 된다.
1.36 viṣayavatī vā pravṛttir utpannā manasaḥ sthiti-nibandhinī
슬픔이 없는 빛나는 상태를 관함으로써 (마음이 안정된다)
1.37 vītarāga-viṣayaṁ vā cittam
집착을 떠난 존재를 대상으로 마음을 두는 것도 (방법이다).
1.38 svapna-nidrā-jñāna-ālambanaṁ vā
꿈이나 깊은 잠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삼는 것도 (방법이다).
1.39 yathābhimata-dhyānād vā
자신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어떤 대상에 대한 명상으로도 (가능하다).
1장 34~39절은 공통적으로 하나를 말한다. 마음을 한 대상에 안정시키면 고요해진다. 그리고 그 방법은 다양하다.
호흡
감각
빛
스승
꿈과 무의식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대상
이 구절들은 모두 마음의 산란을 줄이고 집중을 만드는 실용적인 도구들이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하나의 대상에 안정적으로 머무르는 데 있다. 방법은 다양하지만 원리는 같다. 흩어진 마음을 다시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이다.
8단계 요가인 아쉬탕가 요가는 2장 28절부터 본격 시작된다. 아쉬탕가 요가는 아주 정교하고, 길고, 그만큼 쉽지 않아서 마음이 번뇌로 가득하면 1단계 조차 수행하기 어렵다. 따라서 삼매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되, 예비 수행 단계로서 요약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2단계 '수행자의 내적태도'를 가장 강조했다.
2. 32 śauca-santoṣa-tapaḥ-svādhyāya-īśvara-praṇidhānāni niyamāḥ
청정, 만족, 고행, 성찰, 신께의 헌신이 권계(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