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만드나, 요가수트라를 중심으로
지난 2주간, 요가수트라 1장 11절까지와 2장 9절까지를 통해 마음작용과 번뇌 5가지를 배웠다. 인간의 근원을 이해하려면 마음 작용과 번뇌가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탐구해야 한다. 오늘 배우게 될 개념으로 그 이유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의 의식 너머에서 행동을 지배하는 무의식은 과거의 행위가 남긴 흔적들로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준다.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은 요가 철학에서 삼스카라, 바사나, 까르마아사야에 해당한다. 삼스카라 → 까르마아사야 → 바사나가 어떻게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연결되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우리의 삶은 매 순간의 행위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행위는 사라지지 않고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우리 존재에 각인된다.
모든 경험과 의도적인 행위는 마음의 바닥에 즉각적인 '인상(삼스카라)'을 남긴다.
벚꽃을 보고 ‘좋다’고 느끼는 순간, 그 찰나의 경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토양에 하나의 발자국을 찍는다.
이것이 반복되면 이 흔적은 잠세력이 되어,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나도 모르게 똑같이 반응하게 만드는 '반응의 씨앗'이 된다.
이렇게 생성된 수많은 삼스카라(발자국)들은 흩어지지 않고 '업의 저장소(까르마아사야)'에 차곡차곡 쌓인다.
삼스카라가 개별적인 데이터라면, 까르마아사야는 그 데이터가 보관되는 하드 드라이브와 같다.
이 저장소는 이번 생뿐만 아니라 과거의 모든 생에서 온 흔적들을 보관하며, 일정한 에너지가 모이면 다음 생의 형태(출생), 수명, 고락의 경험이라는 실질적인 과보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된다.
저장소인 까르마아사야에 삼스카라들이 층층이 쌓여 특정 방향으로 깊게 굳어지면, 그것은 한 사람의 지울 수 없는 '성향(바사나)'이 된다.
마치 향수병(까르마아사야)에 향(삼스카라)이 오래 담겨 있으면, 향수를 다 써도 병에 깊은 냄새가 배는 것과 같다. 이 배어 있는 인격의 향기가 바로 바사나이다. 바사나는 내가 왜 특정한 사물에 끌리는지, 왜 고양이 같은 습성을 보이는지 설명해 주는 '기질의 흐름'이다.
매 순간의 행위는 삼스카라(인상)를 남기고, 이 흔적들은 까르마아사야(저장소)에 쌓여 업의 에너지를 형성하며, 그 안에서 오랜 시간 굳어진 것들이 바사나(성향)가 되어 다시 우리의 다음 행위를 결정한다. 세 가지 개념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자.
어원: '함께(Sam)' + '만들다(Kṛ)', 즉 함께 형성된 흔적, 마음의 잠재적인 자국을 뜻한다.
정의: 경험이 남긴 잠재적 인상, 반복되며 굳어진 심리적 성향
삼스카라는 어떤 자극이 주어졌을 때 의식적 판단 이전에 즉각 반응하게 만드는 '조건 반사'의 씨앗이다.
무의식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의 잠세력이며, 모든 심리 현상의 기초가 된다. 셋 중 가장 미시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이 의식적이라면 삼스카라는 무의식적이다. 과거의 기억과 달리 삼스카라는 미래를 결정한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지만 삼스카라는 성격과 운명으로 남는다.
삼스카라의 원리
1.5~1.11 마음작용은 다섯 가지이며 괴로움을 낳기도 하고 낳지 않기도 한다.
이 다섯 가지 마음작용이 반복될 때, 그 흔적이 바로 삼스카라로 남는다.
삼스카라에는 번뇌성 삼스카라와 비번뇌성 삼스카라가 있다. 번뇌성은 집착, 혐오, 무지 같은 번뇌와 연결된 것이고, 비번뇌성 삼스카라는 명상, 통찰, 자비, 지혜와 관계되어 있다. 비번뇌성 삼스카라가 강해질수록 상대적으로 번뇌성 삼스카라를 제어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수행을 통해 좋은 삼스카라를 계속 만들어내어 번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
1.18 대상 없는 삼매(아삼프라즈냐타, 무상삼매)는 오직 삼스카라만이 남은 상태이다.
모든 생각과 대상이 사라져도 과거 행위의 잠세력(삼스카라)은 남아 있다.
삼스카라는 무의식적 저장고이자 다음 생이자 마음의 씨앗과 같다.
삼스카라의 작동 방식
2.12 번뇌를 근원으로 한 업의 저장소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생에서 과보를 낳는다.
여기서 업의 저장소가 바로 삼스카라의 집합체이다. ‘번뇌 > 행위 > 삼스카라 > 미래경험’ 이 연결고리가 윤회의 메커니즘이다.
삼스카라의 소멸 = 해탈
4.30~4.34 모든 번뇌가 소멸되면 업의 씨앗도 소진되고 마음은 더 이상 작용할 이유를 잃는다.
모든 번뇌가 소멸되면(=아비디야(무지)의 작용이 소멸되면) 업의 씨앗도 소멸되고 마음은 더 이상 작용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것이 요가가 추구하는 마음작용을 멈추는 일에 해당하는 것. 무지의 작용이 소멸되어도 어떤 성향들은 좀 남게 되는데, 결국 이런 삼스카라들이 전부 없어졌을 때 비로소 완전한 ‘독존(Kaivalya, 해탈)’이 이루어진다.
어원: vas는 '거주하다', '향기가 배어들다'라는 뜻
잠재적 경향성 : 인간은 인간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고양이나 개에 따라 다른 삼스카라를 가진다. 이런 삼스카라가 쌓이고 쌓이면 인간, 개, 고양이 모두 저마다의 깊은 성향이 생긴다. 이런 성향들이 아주 층층이 깊게 형성된 것이 바로 바사나.
무의식적 끌림: 괜히 마음이 끌리는 보이지 않는 배후처럼 당장 인식되지 않아도 선택, 판단,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아직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다음 반응을 준비하고 있는 씨앗과 같다.
바사나의 배경
4.8 까르마로부터, 그 과보에 상응하는 바사나들만이 드러난다.
우리 안에는 수많은 경험이 쌓여 고양이, 개, 코끼리의 성향이 모두 있다. 하지만 이번 생에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인간의 바사나가 주로 발현된다. 이번 생에 모든 바사나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태어난 조건)에 맞는 것만 발현된다. 공격적인 바사나가 있어도 평화로운 환경에서는 잠복 상태일 수 있다.
바사나의 역할
4.9 출생, 장소, 시간으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과 삼스카라의 동일성으로 인해 바사나는 연속된다.
바사나는 다른 생, 다른 몸, 다른 시대에서도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윤회의 심리적 매개체 역할을 한다.
바사나의 특징
4.10 욕망의 영속성으로 인해, 바사나는 시작이 없다.
아비니베샤(Abhinivesa, 생존 욕구)처럼 계속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바사나를 유지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야마(Yama, 금계)’와 같이 살생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며 안 좋은 성향의 바사나가 늘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바사나의 소멸
4.30~4.34 번뇌의 소멸 - 업의 소진- 바사나의 기능상실 - 마음은 더 이상 푸루샤를 가리지 않는다.
바사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동하지 않게’ 된다.
2.10 미세한 번뇌들은 근원으로 되돌림으로써 제거된다.
이때 근원은 바로 쁘라끄리띠로의 환원이다.
수행에서 바사나가 어떻게 소멸되는지를 알려주는 구절. 상키하 철학과 연결된 ‘역전변’에 대한 이야기.
참고) 상키하 철학에서 말하는 역전변이란?
쉽게 말해 세상이 만들어진 순서를 거꾸로 되돌리는 과정이다. 우리가 엉킨 실타래를 풀 때 마지막에 매듭지어진 곳부터 거꾸로 풀어가듯, 수행 역시 가장 거친 물질세계에서 시작해 가장 미세한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
1. 전변(Pariṇāma): 밖으로 펼쳐지는 과정 (진화)
먼저 역전변을 이해하려면, 무엇이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평형 상태: 처음에는 사트바, 라자스, 타마스라는 세 가지 성질(구나)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균형의 붕괴: 이 균형이 깨지면서 지성(붓디), 자아의식(아항카라), 마음(마나스), 그리고 감각과 물질들이 쏟아져 나온다.
결과: 이 과정에서 우리는 '나(자아의식)'라는 강한 착각에 빠지고, 수많은 경험의 흔적인 삼스카라와 바사나를 만들어내며 물질세계에 매이게 된다.
2. 역전변(Pratiprasava): 안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 (환원)
역전변은 수행을 통해 이 펼쳐진 것들을 다시 거꾸로 근본 물질(프라크리티)로 되돌리는 것.
① 감각에서 마음으로 (물질 → 심리)
외부 세계에 쏠려 있던 오감(시각, 청각 등)과 행위 기관의 에너지를 거두어들여 마음(마나스)에 집중한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보다 "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먼저 보는 단계.
② 마음에서 자아의식으로 (심리 → 자아)
출렁이는 마음의 파도를 가라앉히면, 그 마음을 휘두르던 '자아의식(아항카라)'이 드러난다. "내가 한다", "내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이 뿌리 깊은 고집을 관찰하며, 이것 또한 프라크리티가 만들어낸 하나의 '도구'일뿐임을 알아차린다.
③ 자아의식에서 지성으로 (자아 → 지혜)
"나"라는 착각마저 내려놓으면, 가장 순수한 판단력인 '지성(붓디)'만 남는다. 이때 지성은 마치 투명한 유리처럼 맑아져서, '푸루샤(참나)'를 가장 깨끗하게 반영하기 시작한다.
④ 지성에서 근본 물질로 (지혜 → 근원)
마지막으로 이 지성조차도 세 가지 '성질(구나)'의 평형 상태로 되돌아간다. 모든 전개가 멈추고 프라크리티가 잠잠해지는 순간이다.
3. 바사나는 어떻게 소멸되는가?
여기서 "미세한 번뇌(바사나)의 제거"가 일어난다.
바사나의 거처: 바사나는 프라크리티가 전개되어 나온 '지성'과 '자아의식'이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들과 같다.
소멸의 원리: 역전변을 통해 지성과 자아의식이 근원으로 되돌아가 소멸(환원)되면, 그 위에 그려졌던 바사나 역시 발을 붙일 곳(캔버스)이 사라지게 된다.
결과: 모든 흔적이 근원인 프라크리티로 흡수되어 다시 평형 상태가 되면, 더 이상 푸루샤(참나)를 가리거나 방해할 기세(잠세력)가 남지 않는다.
4. 최종 상태: 독존(Kaivalya)
모든 것이 다시 근원으로 되돌아가 '역전변'이 완성되면, 수정(푸루샤)을 가리던 프라크리티의 작용이 사라진다. 주변의 물질로 푸루샤를 오해하다가, 푸루샤를 제대로 인식하는 순간, 푸루샤는 더 이상 물질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홀로 빛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상키하와 요가 철학이 말하는 해탈, 독존(Kaivalya)이다.
어원: '업(Karma)' + '머무는 곳(Āśaya)', 즉 '업의 창고'를 뜻한다.
행위의 결과들이 씨앗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는 '무의식의 데이터 베이스’이다.
이 저장소에 쌓인 업들이 다음 생의 태어남(종), 수명, 즐거움과 고통의 경험을 결정한다.
까르마의 특징
2.12 번뇌를 뿌리로 하는 까르마의 저장고는 현재 생 혹은 미래 생에서 경험될 결과를 낳는다.
번뇌가 있는 한, 행위는 반드시 씨앗을 남긴다. 이 씨앗이 모여 ‘나’라는 삶의 방향성을 만든다. 번뇌가 있는 한 행위는 반드시 씨앗을 남기고,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업보이다. 삼스카라와 바사나가 소프트웨어적인 '흐름'이라면, 까르마아사야는 그것들이 담기는 '공간'에 가깝다.
까르마아사야의 작동 방식
2.13 번뇌가 있는 한, 그 결과는 태어남, 수명, 경험으로 드러난다.
지금의 삶은 과거의 까르마아사야가 열매를 맺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해탈은 언제 오는가
2.10~2.11 미세한 번뇌는 반대 작용(수행)으로 제거된다.
4.7 수행자의 업은 흰 것도 아니고 검은 것도 아니며, 다른 이들의 업은 세 가지이다.
깨달은 자의 행위는 까르마아사야를 남기지 않는다. 행위는 있지만 ‘씨앗’이 남지 않는 것. 그 이유는 에고와 집착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삼스카라와 바사나, 그리고 까르마아사야라는 개념은 결국 '윤회'라는 거대한 흐름을 전제로 한다. 죽음이 완전한 소멸이라고 믿는다면 삶은 쾌락과 허무 사이에서 방황하기 쉽지만, 업의 연속성을 이해하는 자는 결코 현재를 함부로 살 수 없다. 죽음이 끝이 아니기에 자살은 고통의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는 이번 생에서 더 평화롭고 밝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윤회론이 현대인에게 주는 강력한 메시지다.
무의식은 명상이라는 도구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깊은 명상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흔적인 삼스카라를 타고 무의식을 만날 수 있으며, 때로는 낯설고 생경한 기억의 파편들과 마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전생의 기억이 실제인지 혹은 마음이 만들어낸 상상인지는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비로운 체험에만 매몰되는 것은 오히려 수행의 본질을 흐릴 위험이 있다.
결국 가장 명확한 단서는 '지금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에 있다. 현재 나의 생각, 선택, 그리고 반응은 내면에 쌓인 삼스카라와 바사나가 밖으로 투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전생을 궁금해하기보다 오늘 하루 내가 새기고 있는 삼스카라를 가만히 살펴보는 것, 그것이 업의 굴레를 이해하고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되는 수행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