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수트라] 크리야 요가와 번뇌 5가지

요가수트라 2장 1절 ~ 2장 9절

by 보리 Bori

duhkha - anusayi - dvesah

2장은 '사다나 파다' 즉, 수행에 관한 장이다.


크리야 요가의 정의

[2.1] tapah-svadhyaya-isvara-pranidhanani kriya-yogah 타파스 스와디야야 이슈와라 프라니디나니 크리야 요가

고행, 자기학습(성전 공부), 신에 대한 헌신이 크리야 요가이다.



크리야 요가를 하는 목적

[2.2] samadhi-bhavanarthah klesa-tanu-karanarthah ca 사마디-비와나르타하 클레샤-타누-카라나트타샤

삼매를 자라게 하고 번뇌를 약화시키기 위함이다.

번뇌를 완전히 없앤다기보다는 약화시킨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번뇌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는 뜻.



다섯 가지 번뇌

[2.3] avidya-asmita-raga-dvesa-abhinivesha klesah 아비디야-아스미타-라가-드베샤-아비니웨샤하 클레샤하

무지, 아집, 탐욕, 혐오, 생존집착이 번뇌이다.


[2.4] avidya ksetram uttaresam prasupta-tanu-vicchinna-udaranam 아비디야 크레트람 웃타레샴 프라숩타 타누 비친나 우다라남

무지는 나머지 번뇌들의 뿌리이며, 잠재/약화/중단/활성화된 모든 번뇌를 지탱한다.

아비디야(무지)는 나머지 네 가지 번뇌가 자라나는 토양이다. 번뇌는 잠재되어 있거나, 약화되어 있거나, 중단되었거나 활성화된 상태로 존재한다.


[2.5] anitya-asuci-duhkha-anatmasu nitya-suci-sukha-atma-khyatir-avidya 아니탸 아슈치 두카 아나트마수 니탸 슈치 수카 아트마 캬티르 아비디야

무상/부정/고/무아를 상/정/락/아로 잘못 인식하는 것이 무지이다.

여기서 무지는 지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인식의 오류이다. 다음 네 가지를 거꾸로 인식하는 것.

무상(無常)한 것을 영원하다고 믿는 것, 현상계에 드러난 건 모두 무상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것이 영원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언제나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인식은 괴로움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예: 비싼 물건의 값어치나 그것이 주는 만족감, 관계가 영원할 거라 믿음)

부정(不淨)한 것을 깨끗하다고 믿는 것,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이런 인식이 많다. 실질은 더럽고 추한 모습도 있지만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은 집착을 만든다.

고(苦, 고통)를 즐거움이라고 믿는 것, 즐거움을 만끽하고 나면 '변고'라고 하는 무너지는 고통이 반드시 따라온다. 즐거운 건 한 순간이고 그 이후로 생기는 괴로움이 많다.

무아(無我)를 나(자아)라고 믿는 것, 나의 바람도 나의 것이라고 보고 그것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거기서 생기는 마음이 혐오의 뿌리가 된다. (예: 내 것이 아닌 감정이나 소유물을 나라고 착각함)

모든 번뇌의 뿌리는 무지이다. 여기서 파생된 '나'라는 에고에의 착각, 좋은 것에 집착하는 마음, 싫은 것을 거부하는 마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우리를 괴롭게 만든다.


[2.6] drg-darshana-saktyor ekatnateva asmita 드리크 다르샤나 샤크티요르 에카르마테바 아스미타

보는 능력(푸르샤)와 보여주는 능력(지성)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스미타(아집)이다.

아집은 에고라도 한다. 무아인 것을 참자아라고 생각하는 것인 인지적인 측면의 밑바탕이라면, 아스미타는 좀 더 구체적이다. 보는 주체와 보여주는 도구를 동일시하는 것이 아스미타이다. '푸루샤(Purusha)'는 순수 의식이나 궁극적인 자아이다. 푸루샤에게 경험을 보여주는 도구인 지성은 '부띠(Buddhi)'라 한다. 그것들을 동일시할 때 아스미타, 즉 자기의식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상키하 철학에서 더 구체적으로 볼 것

ex) 시험 점수가 낮게 나왔을 때 "나는 실패자야"라고 생각하는 것. 시험 성적은 도구일 뿐인데, 그것을 자신의 존재 자체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

탐욕이나 혐오나 생존의 고통은 모두 아스미타에서 비롯된다. 아스미타만 없앨 수 있어도 우리가 많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아스미타(아집)는 결국 아비디야(무지)로부터 생겨난다. 따라서 잘못 인식하고 있던 것들을 바르게 인식하는 순간, 지혜가 생겨난다.


[2.7] Sukha anushayi ragah 수카 아누샤이 라가

쾌락에 집착하는 것이 탐욕이다.

과거에 경험했던 즐거운 기억을 잊지 못하고 그것을 다시 추구하고 집착하는 마음이다. 알코올이나 담배, 칭찬 등에 중독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ex) 인정받았던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쓴다.

즐거움을 반복하면 탐욕은 커지며, 탐욕은 언제든 바로 혐오로 돌아설 수 있다.


[2.8] duhkha anusayi dvesah 두카 아누샤이 드웨샤하

고통에 의해 생기는 혐오가 분노의 뿌리이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바탕으로, 유사한 상황이 왔을 때 회피하거나 분노를 일으키는 마음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기억들이 쌓여 상대방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가까운 사이(부부, 부모 자식)일수록 이 드베샤가 쌓이기 쉽다.

과거의 경험이 남아 있어 조금만 자극이 와도 혐오는 쉽게 반응한다. 밑바탕에 나의 생각이나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2.9] svarasavahi - vidusah - api - tatharudhah - abhinivesah 스와라사와히 비두쇼 아피 타타루다 아비니웨샤하

죽음 공포는 지혜로운 자에게도 남아 있는 생존 본능이다.

가장 뿌리 깊은 번뇌로, 지혜로운 현인조차도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생존 본능. 이는 윤회의 과정에서 쌓인 죽음의 경험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전 02화[요가수트라] 요가의 정의와 마음작용 5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