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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요리 Feb 18. 2021

자매로 산다는건

나의 두 번째 엄마?

찰떡이가 딸이라는걸 알고 내심 "아 그럼 둘째는 무조건 낳아야겠다" 생각이 번뜩 들었다. 단 전제는 둘째도 딸이여야 한다, 자매가 되어야 하기에... 세상만사가 내 뜻대로 되겠냐만은!! 가족도 가족 나름이고 남보다 못한 형제자매도 많다고는 하지만 내가 경험한 내 인생만 보면 크게 공감은 할 수 없다.




나는 두살 터울의 언니가 있다. 나이는 두살 차이지만 내가 학교를 빨리 들어가서 한 학년 차이였다. 고작 한 학년 차이의 언니지만 학창시절의 언니는 나에게 친구보다는 엄마같은 존재였다. 다른 자매들에 비하면 많이 싸우지 않은 "사이좋은"자매지만, 워낙 성향이 달랐던 탓에 딱히 친구같은 사이는 아니였다.


중학교때부터 전교 1등을 도맡아한 언니와 달리 성실한 모범생이지만 딱히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았던 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중학교 입학 후에 "아 네가 xx 동생이구나?"라며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나를 알고 있었고, 아마도 그 선생님들은 속으로는 나와 언니를 비교했겠지만, 딱히 그런데서 열등감을 느끼거나 하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껏 가까운 사이로 지낼 수 있었던 건 언니와의 비교에서 딱히 주눅들지 않았던 내 성격탓도 있겠고, 공부나 기타 여러가지 것들로 우리를 절대 비교하지 않았던 부모님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언니 덕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언니는 본인과 너무 다른 동생을 보면서도 한번도 무시하고 상대를 해 주지 않는다거나, 내가 너보다 더 잘났어! 같은 내색을 하진 않았다. (물론 속으로는 한심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고....생각한다ㅎㅎ)


오히려 시험기간에 본인 공부를 못하더라도 내가 모르는걸 알려주느라 새벽까지 밤을 지새기도 했고, 미술 실기로 지점토로 동화속 인물 만들기를 하며 끙끙대는 나를 하루종일 도와주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생물을 밤새 가르쳤더니, 생물은 다 맞고 물상을 틀려온 그게 나였다. ㅋㅋㅋ) 다른 친구들은 똑똑한 언니랑 같은 학교다녀서 스트레스 받겠다고 나를 걱정했지만, 나는 그냥 공부를 잘하는 1등 언니가 자랑스럽고 좋았던 것 같다.


언니가 본인 브런치에도 썼는데, 우리 사이가 달라진 시점은 내가 유학하고 있던 곳으로 언니가 어학연수를 오면서 부터였다. 생각해보면 언니도 고작 21살이었는데, 이역만리 미국땅에 혼자 외롭게 살다가 가족이 함께 산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위안이 되고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언니는 그때도 내 보호자 자격으로 이런저런 학교행사에 참여해주고, 학교가는 라이드도 해주었다. 주말이면 같이 외식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장도보면서 찐한 시간을 보냈고, 졸업무렵에는 미국 서부여행과 멕시코 여행까지 용감하게 감행했다. 그렇게 언니와 1년을 함께 보내고 나니 우리 사이가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느껴졌다. 대학 입학과 함께 홀로 미국에 돌아와서 처음 엄청 외로워서 슬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는 이전보다는 훨씬 "친구같은 사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이런저런 의사결정에 언니의 의견을 물어보고 의지한다. 보통 언니가 하라는대로 하면  일이 괜찮게 풀리더라... ^^ 심지어 쇼핑을 할 때도 내가 마음에 들어한 옷들보다는 언니가 나와 잘 어울린다고 한 옷을 오래 입는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더 알게 되었다. 몇 차례의 전학과 유학으로 한국에는 친구가 많지 않지만, 한번도 친구가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든지 같이 가주고, 함께 해줬고 부모님께는 차마 말하기 어려운 일들도 언니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었다.


우리가 사이좋은 자매로 지낼 수 있는 건 어느 한 사람 덕분은 아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뭐든지 양보를 잘 해준 언니 덕이 크다고 생각한다. 엄청 까칠하고 예민하지만, 속은 엄청 여리고 유리멘탈인 언니, 언니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남편을 만난걸 보면 내가 언니를 엄청 좋아하긴 하나보다. ㅎㅎㅎ 육아에 허덕이는 언니를 보면 도와주고 싶고, 언니 아가들이 내 아가처럼 예쁜걸 보면 우리 관계가 조금은 친구같은 사이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각자 가정과 아이가 생기면서 서로 공통관심사가 점점 많아지고, 나이가 들면서 "역시 가족밖에 없구나"를 많이 느끼는 요즘은 이런 자매의 존재가 정말 소중하다. 나중에 나이들면 부모님, 언니가족과 같은 아파트에 모여사는게 꿈인데 잘 되겠죠?


 


(글과는 크게 관련 없지만) 요즘 장항준 감독을 보면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든다... 왜일까? 나를 아는 사람들은 격공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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