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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Dec 12. 2018

여전히 청춘靑春이어라

마흔이라니!

마흔이라니!
당치 않은 나이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내게 마흔이란 까치발을 들고 안간힘을 다해 손을 뻗어도 결코 닿지 않을 어떤 미지의 지점이었고, 몽환적인 세계였다.

살면서 ‘나이듦’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관심’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동년배들이 30대의 문 앞에서 울적해할 때도 의연했고, 주위에서 일상의 변화에 나이 탓을 할 때도 태연했다. 나이 먹는 건 서러운 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에 주어지는 훈장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40년 가깝게 사용한 육체는 내 마음과 다르다. 몸 이곳저곳에서 아우성치듯 노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깊게 패인 팔자주름이 선명하고, 눈가에는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얼굴 전체에 거뭇거뭇한 기미가 내려앉아 흡사 어둠의 자식 같다. 흰 머리는 불쑥불쑥 튀어나와 당황케 하기 일쑤고, 눈은 왠지 생기를 잃은 듯하고 피부는 확실히 탄력이 떨어졌다.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이건 내가 아니오. 나를 조금 닮은 타인이란 말이오’ 하며 강력하게 부인하고 싶어졌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김영일 작사, 김성근 작곡 <노래가락 차차차> 중

자주 피곤하고, 중요한 약속을 곧잘 잊는다. 체력이 예전만 못한 것이 가장 불편하다. 밤을 지새며 놀고 싶은데,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만남의 자리가 흥을 돋우며 이어져 자정을 넘길라치면 더 놀고 싶은 저 깊은 곳 열망과는 다르게 “어서 집으로 돌아가 두 다리 쪽 뻗고 폭신한 침대의 품에 안기라”고 더 강력한 목소리가 속삭인다. 속으로 어릴 적 들었던 가요를 읊조렸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그러니까, 늙어 못 놀 줄 알았으면 피 끓는 청춘일 때 마음껏, 원 없이 놀아둘 걸 그랬다. 후회가 막심하다.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어른 행세를 하려는 태도의 변화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는 구태의연한 문장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대화의 절반 이상이 “예전에”로 시작하는 과거 이야기다. 고작 마흔 줄에 입성하면서 꼰대가 되어 버렸다!   

어느 가을날 저녁 모임, 테라스에 앉아 바뀐 계절 풍경과 마주한다. 맹렬히 뜨거웠던 여름을 기억하며 무사히 건너온 지난 시간을 서로 격려하고 치하하는 자리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예전에는 좋았지” “체력이 예전만 못하네” “머리가 희끗희끗해져 검은 칠하기 바쁘네” 탁자 위에 한탄인지, 자조인지 모를 푸념들을 쏟아낸다. 우리에게 청춘은 다 지난 시절일까 서글퍼졌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민태원의〈청춘예찬〉중  

문득 시간이 흘러 늙어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순리이고, 인간은 거대한 법칙에 따를 뿐 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지난 청춘을 그리워하고 나이 탓 하면서 현재 모습에 절망하기엔 남은 생(生)이 너무 많았다. 오늘은 내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날이고, 오늘은 내 남은 날 중 가장 멋지고 예쁜 날이다.

그러나 오늘은 내 남은 날들 중에 가장 젊은 날입니다.
오늘은 내 남은 날들 중에 가장 멋지고 예쁜 날입니다.
송정림의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두 번째> 중

중요한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살아있는 모든 나날을 청춘의 마음으로 살아보기로 한다. 물리적 나이듦을 건강하게 받아들이며 운동으로 건강하게 몸을 가꾸고, 체력을 키워야겠다. 새로운 것에 겁먹기보다 호기심을 잃지 않고,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파악하고 싶다.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될 것인가’ 하는 숙제도 남는다. 나이든 사람뿐 아니라 어린 사람에게도 배울 게 있음을 인정하며 귀를 활짝 열고, 눈을 크게 뜰 것이다. 어른이지만 어른 같지 않은 어른, 진짜 청춘이 닮고 싶은 어른,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누군가의 조언을 들어 지갑을 기분 좋게 여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다. 건강한 청춘, 향기 나는 청춘을 그려본다. 살아있는 모든 날과 남은 모든 생(生)이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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