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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이야기 Jan 21. 2024

팔불출 아빠의 딸자랑

어제는 딸의 두 번째 피아노 콩쿨이 있는 날. 


동네 피아노 학원을 다닌 지 2년 정도 된 모양이다. 

어느 날, 피아노 콩쿨에 나간다고 통보해 왔다. 


콩쿨 연습 기간 중, 한 번은 집에 있는 피아노로 연습을 할 줄 알았는데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보면, "연습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하길래,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제는 대망의 피아노 콩쿨날, 딸은 세심히 엄마의 스케줄을 한 달 전부터 확인했다. 

다행히도 엄마의 스케줄이 없는 날이었다.


할머니, 아빠, 엄마 가족이 총출동했다. 

워낙 무심한(?) 아빠와 엄마라 꽃다발은 당연히 준비를 안 했다. 

딸은 그런 거에 섭섭해하거나 하는 아이가 아니다. 


그저 께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딸이 말했다. 

"아빠, 콩쿨이 내일모레인데 전혀 떨리지가 않아!"

"응, 지금은 누워 있기 때문에 안 떨리는 게 당연한 거야, 콩쿨 당일이 되면 좀 떨릴 수도 있을걸?" 

"그런가...?" 


콩쿨 당일이 되었다. 떨릴 법도 한데, 마치 누워서 이야기하던 모습 그대로다. 


자기 차례가 되니 말총머리를 총총거리면서 피아노 앞에 앉는다. 

이때부터 애엄마는 심장이 벌렁댄다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곤 무심하게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한 번도 틀리지 않고 기계처럼 연주하더니 또 말총머리를 흔들면서 총총걸음으로 내려왔다. 

묘한 기분이 들면서 참 대견했다. 

좀 오버지만, 호들갑 떨지 않고 자기 할 일을 잘 끝내는 모습에 안도감도 생겼다. 

콩쿨이 끝나고 나오더니 아직 출전하지 않은 같은 학원 언니들에게 뛰어가더니 썰을 푼다. 




어렸을 적부터 딸이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 보다 무언가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나는 여태 무언가를 잘해야 행복할 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런 마음 자세가 오히려 나를 불행하게 했다.  

나는 늦게 그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나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온 날이 더 많았지만, 딸은 그런 삶을 살지 않길 바랐다. 


무언가를 잘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많이 가지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것은 모두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원한다면 지금 이 순간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딸은 하루라도 빨리 알길 바랐다. 


그래서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잘하라는 말 보다 이왕 하는 거 재밌고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행복하고 재밌게 하다 보면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남들보다 잘한다고, 남들보다 많이 가진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랐다. 그런 것은 너의 행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너는 무언가를 가지고, 무언가를 얻음으로써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 당장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번 콩쿨에서 딸을 보면서 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딸이 나보다는 훨씬 똑똑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앞으로 딸이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딸의 더욱 행복한 삶을 살도록 나 또한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행복하게 살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행복하자. 지금 당장 바로 여기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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