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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Nov 16. 2020

ADHD를 오해한 밤 가족에게 생긴 일

밤은 실패하고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용기를 내서 시도하기를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 반복했다. 그런데도 일말의 칭찬이나 보상이 없는 삶이라면 누구라도 우울하고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학교, 일터, 가정 모두가 자신을 오해하는 세상에서 늘 화가 나있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내 동생 밤, 그는 8살에 ADHD 진단을 받았다. 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3일 만에 엄마는 학교에 불려 갔다. 나보다 두 살 어린 그 애가 학교 생활, 가정생활, 친구 관계, 취미 생활, 개인 공부, 돈벌이 등 모든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곁에서 목격했다. 밤은 이른 나이에 진단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ADHD에 대한 이해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시절이다. 교육적 보조를 제공받기는 커녕 문제아 취급받았으며 주변의 이해나 배려도 없었다.


밤과 다르게 나는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규칙을 잘 따르고, 수업을 재밌어하고,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상을 받아오곤 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긍정적이고 체계적인 세계관을 순진하게 믿던 그 시절의 나는 밤을 안타까워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왜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왜 저렇게 공격적일까. 우리는 같은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랐는데 쟤는 왜 가족을 사랑하지 않을까. 나는 밤의 진단명을 스무 살이 넘어서 알게 됐다. 엄마는 딥 다크 시크릿을 토로하듯 속삭였다. 밤이 어릴 때 ADHD 있었어. 정신과 가서 진단받고 약도 먹었어.


우리는 친구였다. 각자의 사회생활이 생기기 전까지 우리는 늘 함께였다. 명절에 모르는 사람들이 잔뜩 모이는 큰집에 가도 밤이랑 얘기하면 되니까 괜찮았다. 우리 집은 전업주부가 없는 집이었다. 우리 단 둘이 노는 시간이 길었다. 밤과 나는 레고로 이런저런 것들을 같이 지었고, 슈퍼마리오 월드와 동키 콩을 협력 모드로 플레이했다. 만화영화를 같이 보고, 같이 웃었다.


밤은 사춘기에 언제나 기분 나쁜 표정을 하고 무뚝뚝해졌다. 웃는 걸 싫어했고, 긍정적인 말에는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나는 밤과 놀고 싶어서 그 애가 빠져있는 온라인 게임을 다운로드하고, 야, 쩔 좀 해 줘, 나 스킬 트리 좀 봐줘, 하며 말을 걸곤 했다. 그러면 밤과 화기애애하게 놀 수 있었다. 나는 때때로 잠자리에 누워서 책을 읽다가 다급한 목소리로 "밤아!!!! 빨리!!!" 하며 그 애를 유인하곤 했다. 밤이 내 방으로 오면, 불 좀 꺼 줘, 부탁을 하고 낄낄거렸다. 밤은, "뭐야, 짜증 나게. 자기가 알아서 꺼." 하며 구시렁거렸는데, 불은 꺼 주고 갔다. 10대 시절 우리는 주로 각자 방에서 자기 취미에 몰두했다. 우리는 엄마가 해놓으라는 설거지를 하지 않아 자주 혼났다. 나는 정말 진심 설거지를 해놓고 싶었다. 귀찮긴 해도 혼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단지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번번이 못했다. 밤도 비슷했을 것이다.


밤은 (나 역시 종종 그랬지만) 늦게까지 초집중으로 뭔가를 하다가 해가 뜨고 몸이 지치면 자곤 했다. 나는 20대 중반까지 잠자리에 누운 채로 짧으면 20분, 길면 2시간까지 잠들지 못했다. 불을 끈 방에 잠들지 못하고 지루하게 누워 있을 때, 밤의 방에서 새어 나와 내 방문 틈으로 들어오는 빛과 소리는 나를 안심시키곤 했다.




밤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가족과 연을 끊기로 했다. 이제 나는 그 애 만나지 못한지 몇 년째인지 세지 않는. 내가 간혹 카톡을 보내면, 밤은 읽씹 한다. 읽어서 생사라도 확인하게 해 준다는 점을 고마워 하나. 내가 대학에 다니느라 가족과 떨어져 살 때, 엄마와 밤이 서로 심한 말을 하며 싸웠다고 한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엄마는 밤이 일이든 공부든 하다가 금세 때려치우고 다시 집에 처박히는 패턴을 굉장히 싫어했다. 당신이 엄격하지 않아서 그런 문제가 생겼다고 믿었으니, 어떤 갈등이 있었을지 상상은 된다. 엄마는 밤의 행동을 자발적이고 의도적인 것으로 여겼고, 밤은 도저히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밤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긴 문자를 보냈을 때, 밤은 답장에, "이제 내가 피해 주는 일은 없을" 거라고 썼다.



15년, 아니, 10년 전에라도 이런 지식을 알 수 있었다면, 다른 사람이 다 몰랐어도 내가 알았다면, 밤이 덜 외로웠으리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밤은 군대에 갔다가 타지에 직장을 얻어 이사갔고, 나는 대학 앞에서 자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떨어져 사는 동안 나는 그 애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됐다. 10대 후반에 처음으로 세상의 부조리와 우울감을 알았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겨울마다 외로움과 우울감이 몰려왔고, 입시는 실패였고, 원치 않았던 대학의 원치 않았던 과의 새내기가 되어 맞은 첫 학기에 학사경고를 받고 학교를 자퇴했다. 누워서 우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다. 4년짜리 긴 이야기를 줄이자면, 운이 좋게 환경을 바꿔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학에 재입학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학교에 가든 말든 신경 쓰는 사람이 없으니 학점 채우려고 듣는 수업과 오전 수업에 출석하는 일이 어려. 과제를 미리 시작하는 것도 힘들었고, 흑백 사고가 심해서 이미 틀려먹었다는 생각이 들면 의욕이 더 떨어졌다. 좋아하는 과목이 아침에 있을 때는 전날 밤마다 지각하지 않기를 다짐하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깨지 못하거나 몸이 무거워서 결석하는 일이 꽤 있었다. (어린아이일 때부터 밤과 나는 똑같이 아침잠이 이상할 정도로 많았고, 잠을 깊이 자서 알람이나 전화벨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런 날에는 인생이 다 틀려먹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침대에서 나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갖춰 입고, 학교까지 걸어갈 기운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그래도 F 학점을 받을 위기가 닥친 상황에는 힘을 낼 수 있었다. 하고 싶은데도 그걸 하지 못한 뒤의 기분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급하거나 재밌는 일은 잘할 수 있을 때 발견하는 비일관성이 얼마나 자기혐오를 부르는지 알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산더미 같은 과제를 외면하고 쓸데없이 인터넷서핑을 하던 어느 오후, 유튜브에서 ADHD에 대해 알려 주는 채널을 발견했다. 매우 빠른 속도로 모든 영상을 봐 버렸다. 문자 그대로 1.5배속으로 봤다. ADHD에 관한 잘못된 인식, 여자아이와 성인에게서 ADHD가 표현되는 경향을 배웠다. ADHD 지식을 집착적으로 섭렵하면서, 밤의 행동들을 종종 떠올렸고, 그 애의 행동을 이전과는 다르게 해석하게 됐다. 


나는 비교적 최근에 반복적인 우울감을 해결하고 싶어서 정신과에 찾아갔다가 의사의 권유로 ADHD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밤은 물론이고 이 세상 그 많은 사람들을 내가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슬펐다. 우리의 잠재력을 가로막는 비효율적인 획일성을 깨고 싶었다. 무엇보다 15년, 아니, 10년 전에라도 이런 지식을 알 수 있었다면, 다른 사람이 다 몰랐어도 내가 알았다면, 밤이 덜 외로웠으리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밤이 누구 한 명에게서라도 '반항 행동'이 아니라 '원치 않는데도 어쩔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를 받을 수 있었더라면.


엄마와 싸운 날로 집을 박차고 나간 밤의 방에는 그 애의 물건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밤이 아끼는 피규어들, 열심히 밑줄을 치며 읽던 책들. 몇 년 동안 방치해뒀던 것을 얼마 전에 정리했다. 밤에게 짐을 가지러 오라고 연락했더니, 답장이 왔다. "버려."


밤의 책장에는 온갖 다채로운 분야의 교재와 자기 계발서와 노트가 꽂혀 있었다. 교재나 공책의 앞부분에 시간 관리하는 방법, 재테크하는 방법, 공부하는 방법을 쓴 글씨가 빼곡했다. 서랍 속에는 휴대하기 좋은 수첩들이 가득이었다. 대부분의 공책과 책은 앞부분만 손을 탔고, 나머지는 공장 출고 상태 그대로였다. 밤이 큰돈을 주고 샀을 것 같은 덕질용 책도 말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내팽개쳐진 것들, 손대고 싶었지만 손대지 못한 것들, 실패의 증거들을 밤이 가져가고 싶었을 리 없었다. 예전에는 그런 걸 놀려 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밤의 방을 정리하는 일은 감정적으로 지쳤다.


끝내지 못하고 열어둔 채 뒤로 한 것들의 무게라면 나 역시 잘 알았다. 그런 짐을 훨씬 더 어릴 때부터 더 많이 끌어안아야 했던 밤의 경험이 어땠을지 생각하기 힘들었다. 밤은 실패하고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용기를 내서 시도하기를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 반복했다. 그런데도 일말의 칭찬이나 보상이 없는 삶이라면 누구라도 우울하고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학교, 일터, 가정 모두가 자신을 오해하는 세상에서 늘 화가 나있는 것도 당연하다.



공교육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도 ADHD가 있는 아이들은 자신에게 적절하지 않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교육 받는다.


밤이 ADHD 어린이를 고려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의 자존감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밤은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는 몸을 가졌는데, 학교에서는 앉아 있지 못한다고 혼나기만 했다. 공교육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도 ADHD가 있는 아이들은 자신에게 적절하지 않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교육 받는다. 그래서 밤은 어릴 적부터 성공의 경험보다 실패의 경험을 훨씬 많이 했다. 밤이 누구 한 명에게서라도 '반항 행동'이 아니라 '원치 않는데도 어쩔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를 받을 수 있었더라면, 인간과 세상 전반을 향한 밤의 태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10대 시절, 분노의 형태로 표출되던 밤의 우울감을 나는 이제야 알아 본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밤은 입체적이고 고유한 사람이다. 내가 처음 만든 팬케이크 실패작을 먹어 준 동생이었다. 레드 제플린을 좋아했고, 기타 연습을 한 뒤에는 다섯 가지나 되는 세정제로 기타를 꼼꼼히 닦곤 했다. 밤은 요세미티의 울창한 나무들을 마음에 오래도록 품어두는 사람이고, 고양이에게 무뚝뚝하지만 밥은 잘 챙겨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일관적이고 정연한 글을 쓰기 위해 밤의 수많은 부분 중 ADHD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부분만을 선택적으로 언급한 점이 미안하다. 밤의 인생은 그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부하다. 밤이 나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깊은 세계가 있다는 걸 안다. 나는 밤의 고통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것이 조금 덜했더라면, 하고 바란다. 어릴 때 지켜 주지 못한 만큼 이제라도 험한 세상으로부터 밤을 지켜 주고 싶어 졌는데, 더 이상 그러지 못해 미안하고 안타깝다. 밤이 그립고, 그 아이가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며 지내기를 바란다. 나는 밤과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밤을 안타까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밤도 나도 자존심이 무척 세니까.


무엇보다 우리에게 연민은 필요가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올바른 이해와 다양성을 고려하는 환경이다.


ADHD는 정신과 질환 중에서도 예후가 좋은 편입니다. 적당한 환경적 도움과 약물, 운동, 전략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ADHD가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일은 더 어렵기도 하지만, 어떤 일은 훨씬 쉽기도 합니다. 낙인과 차별, 비난보다는 이해와 포용, 존중을 원합니다. ADHD를 가진 어린이와 성인들이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세요.

생각이 많아서 인생 살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렇다면 글이라도 많이 쓰려고요. 누구나 생각에 시간을 쏟아붓지는 않기 때문에, 저의 결과물들이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깨달음이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을 흥미롭게 보셨다면 구독하고 종종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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