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딩딩
우리 팀은 그런대로 잘 지내는 편이었다.
일이 거의 겹치지 않는 탓에 이렇다 할만한 갈등은 없었다.
의견이 엇갈릴 때면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항상 누군가는 한 수 접어주었다. 점심을 먹을 때면 소란했지만 평화로웠다. 그리고 단조롭던 시간을 깨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미팅은 점심 전이었다. 주 이사가 준 법인카드로 커피를 사 왔다. 미팅룸은 조금 서늘했고 옅은 커피 향이 풍겼다. 아침부터 바빠 죽겠다느니,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느니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각자 한 달 업무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나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발표는 여느 때처럼 감 대리, 샴 차장, 주 이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인턴이었기에 회의에 참여만 했다. 샴 차장의 발표가 끝난 직후, 감 대리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여기서 프랜 씨가 하는 일이 뭐예요?
찰나의 정적이 있었다. 감 대리는 늘 정하는 점심 메뉴를 물어보듯 자연스럽고 가볍게 물어봤지만 눈에는 상큼한 광기가 어려있었다. 뼈가 있는 질문이었다. 도대체 하는 일이 뭐야? 하고 비꼬는 듯한.
감대리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 메뉴를 물어봤을 뿐인데 왜 그래?라는 듯한 얄궂은 표정으로. 질문을 소화한 끝에 샴 차장이 대답했다.
프랜이 이런저런 일 많이 해. 여기 들어가는 디자인부터 여기도 다 프랜이가 한거야.
그 대답이 못마땅한 듯한 감 대리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샴 차장의 발표가 좋았던 탓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샴 차장은 보고할 내용도 알찼다. 그에 반해 감 대리의 브리핑 내용은 다소 부실했다. 신기하게도 브리핑 시간은 비슷했는데, 그건 감 대리가 잘 부풀린 탓이었다.
감대리는 어떤 이야기던 서론이 긴 편이었다. 자신을 부각하기 위한 설명들도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둘의 발표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하지만 누구도 대놓고 비교하진 않았다. 나만 속으로 과한 그의 단어 선택을 비웃을 뿐이었다.
못마땅한 건 그런 것이었으리라. 나를 끌고 들어간 건 '조력자가 없어 일을 더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비교는 본인이 한 셈이고, 만만한 나를 미끼 삼아 싸움을 건 것이다. 감 대리와 주 이사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각자 역량에 맞게 하면 되는 거라고. 그러니 같이 해보자고. 감 대리를 살살 굴려보려고 하는 주 이사였다. 하지만 감 대리는 그간 쌓아왔던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날 나는 감 대리의 만행보다 주 이사의 아량에 더 놀랐다.)
아 대화가 안 통하네.
감대리는 갑자기 그런 말을 하곤 의자에 털썩 눌러앉았다.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무례한 말이었지만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주 이사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말을 했고, 감 대리는 팔짱을 낀 채로 의자에 푹 눌러앉아 있었다. 샴 차장과 나는 망부석처럼 앉아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우리가 잘못한 것 마냥 죽상을 하고선. 그가 샴 차장에게 경쟁의식을 느낀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근데, 왜 나를 이 링 위에 미끼로 던지느냐는 것이다.
내 이름과 샴 차장의 이름이 몇 번 더 오가고, 누군가 미팅룸을 박차고 나가며 미팅이 끝났다. 이 날 점심은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그의 기행은 끝이 아니었다. 며칠 후, 돌연 주 이사에게 디자인 프로그램 결재를 올린 그였다. 회사 비용으로 매달 결제되는 그 프로그램들은 내가 디자인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도구들이었다.
더 이상의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주 이사는 순순히 허락했지만, 다소 충격적이었던 건 그가 프로그램들을 사용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일종의 화풀이였던 것이다.
감 대리는 그 이후로도 틈날 때마다 뼈 있는 말들을 했다. 그 대상은 나일 때도, 샴 차장일 때도 있었다. 그 뼈는 생선가시 같아서 큰 위협이 되진 않았지만 자잘하게 거슬렸다.
나와 샴 차장은 그저 무시하기를 택했다. 그를 이해할 순 없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