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oung Apr 11. 2019

여전히 성장 중...

Gold (안녕...)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여자는 귀여운 막내딸이었습니다. 남자는 대가족의 장남이었습니다.

여자는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남자는 놀기 좋아하고 멋 부리기 좋아하는 한량이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여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는 집을 떠났습니다. 여자의 어머니는 혼자 남겨질 딸이 걱정스러워 시집을 보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장남이었기에 결혼을 서둘러야만 했습니다. 아직 책임감이 무엇인지도 그리고 변변한 직업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둘은 만나 서둘러 결혼을 하였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보호자가 되어줌에 안도했습니다. 남자는 순진하고 착한 여자가 맘에 들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여자는 남자의 안식처가 되어주기를 약속하며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은 많은 아이들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여자는 시부모님께 딸만 낳는다며 모진 시집살이를 당했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남자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침내 아들을 낳았을 때 여자와 남자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모가 되기에는 어린 나이들이었습니다. 지금 시대라면 한창 멋 부리고 놀러 다녀야 할 나이에 여자와 남자는 부모가 되었고 많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먹고 싶은 것도 참았으며 입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것도 참고 살았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잘 자라나기만을 바랬습니다. 힘든 가운데에서도 최선을 다했으며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기를 기도했습니다.

여자는 꽃을 좋아하고 동물을 좋아했지만 그 사소한 것들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가죽점퍼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지만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부모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여자와 남자의 행복이기도 했고 아픔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여자와 남자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은 잘 자라났으며 딱히 모자란 것 없이 어른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나둘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고 여자와 남자는 처음 가정을 이루었던 그때처럼 다시 둘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좋아하던 것도 해보고 싶었던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동물을 돌볼 힘도 남아있지 않았고 가죽점퍼도 이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제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바라는 것도 해주고 싶은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얼굴을 마주 보면 어느새 늙어버린 얼굴에 화가 나고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맘에 없는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가슴 아픈 말로 서로에게 생채기를 냅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식들은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각자의 바쁜 삶을 사느라 여자와 남자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세월은 흘러갑니다.

어느 날부터 남자는 쇠약해지고 자주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는 그저 아직은 아니라며 그렇게 모른척하고 살았습니다. 남자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약해져 갔습니다. 남자가 마침내 무너졌을 때 여자와 자식들은 다시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남자의 마지막을 준비하게 됩니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서로에게 한 번도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가정을 이루었을 때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겠다고, 안식처가 될 거라고 약속했던 그 마음을 잊어버리고 살았음을 후회했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좋아했던 것을, 하고 싶어 했던 것을 해주지 못함을 미안해했습니다. 자식들이 가장 큰 보물들이라 생각하며 살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밖에 없는 짝이었음을 여자와 남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자와 남자는 이별할 때가 되어서야 다시 진정한 부부가 되었습니다.

남자의 마지막은 여자와 함께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계속 같이 있었던 자식들이 마지막 순간에는 자리를 비켜주기라도 한 것처럼 그곳에 없었습니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여자는 이제 편해지라며 오랫동안 고생 많았다며 미소로 남자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은 진정한 부부였으며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어른 아이들이 남자와 여자로 만나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었습니다. 자식들 때문에 행복한 시절도 많았지만 힘든 시간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 수많은 세월 동안 미운 정 고은정이 들어 남자와 여자가 아닌 그저 가족으로 살며 미워하고 싸우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는 알고 있습니다. 그 수많았던 날들이 어느 누구의 삶보다도 빛났음을...  황금빛이 감도는 행복한 시간들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자와 남자는 웃으며 서로에게 안녕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그리고 그때가 되면 서로에게 진정한 울타리와 안식처가 되어줄 것을 다짐하며 그렇게 그들은 아름다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언제나 영원히 빛나는 찬란히 햇빛일 것입니다..

이전 13화 여전히 성장 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